2024년 5월31일(금)
어제 밤 11시가 조금 지나서 잠을 잤는데, 새벽 4시 반쯤 화장실에 다녀온 후부터 잠이 잘 오질 않아 5시쯤 일어났다. 나이가 들어서 잠이 줄어든 건지, 여행으로 인한 시차 때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새벽 4시부터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역시 불이 훤하고 각종 빵과 음료·커피·요구르트 등이 준비돼있었다. 전형적인 유럽식 아침식사다. 바게트와 크루아상, 각종 잼과 사과주스로 아침식사를 한 후 커피로 마무리했다.
이제 숙소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더니 로비에는 단체로 온 듯한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날씨가 흐리고 곧 비가 올 것 같다.
어제 숙소직원이 아침에 30분마다 드골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온다고 해서 승강장에서 기다렸다가 6시 반에 도착한 셔틀버스를 공항으로 갔다. 버스기사가 무슨 앱인가를 깔면 무료로 탈 수 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번 쓰기 위해 앱을 깔기도 애매해서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10유로란다. 그래도 엊저녁 택시비에 비해 절반가격이니 다행이다 싶었다.
비아리츠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T2B 터미널에서 내려 예매했던 이지젯(www.easyjet.com) 카운터로 가서 발권하려고 했더니 항공노선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운터 끝에 있는 직원에게 가서 환불에 대해 알아보라고 해서 그리로 갔더니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전화를 걸어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 수 없다고 했더니 이지젯 앱을 깔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결국 환불신청을 하지 못했다. 분명히 자기네들 잘못인데도 미안해 하기는커녕 해결조차 도와주지 못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한국에서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제 바욘(Bayonne)이로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 봐야 고속철도(TGV)를 타고 가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예매하려고 해도 잘 되질 않는다. 게다가 출발시간이 임박해서 예매하려니 가격도 엄청 비싸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표를 구매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몽파르나스역(Gare de Paris-Montparnasse)으로 갔다.
발권하는 곳을 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묻다가 간신히 발권하는 곳을 찾았는데, 사람이 있는 창구가 아니라 모니터만 달랑 있다. 프랑스어로 된 화면을 영어로 바꿔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곳곳에 유니폼을 입은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있지만 불러도 본체만체 한다. 한참 기다렸다가 흑인 남자직원이 도와줘서 간신히 발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낮게 가는 것은 모두 매진이라 밤 12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발권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이왕에 예매했던 것들은 환불 받기가 쉽지 않아 더 그렇다. 우선 드골공항에서 비아리츠 공항으로 가는 항공권을 10만원 넘게 주고 예매했었다. 또한 드골공항에서 몽파르나스역까지 오는 전철비용도 11유로나 추가됐다. 그뿐 아니라, 파리에서 바욘까지 가는 기차요금이 192유로인데다, 미리 예매해놨던 바욘에서 생장까지 가는 기차표(11.1유로)도 일정이 맞지 않아 못 쓰게 됐다. 인터넷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황당한 경험담을 읽을 적이 있었는데,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낮 기온이 15도로 꽤 춥고 흐린데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기도 힘들 것 같다, 기차역 구석에 있는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고 유튜브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낮 12시가 되어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이곳은 무료와이파이가 되는 곳이라 유튜브를 맘껏 볼 수 있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 사왔는지 김밥을 먹기도 하고 종이용기에 담긴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나는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간 터였다.
그런데 바람도 꽤 불고 기온도 낮아서 으슬으슬하다. 배낭에 패딩점퍼가 들어있긴 하지만 꺼내기 귀찮아서 조금 참기로 했다. 골목에서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입구에 그림으로 붙여놓은 음식이 맛도 괜찮을 것 같고 가격도 적당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상호는 PHO20. 그러고 보니 베트남 음식이었나 보다. 그림만 보고 주문했는데도 맛은 좋았지만 고수가 들어가 있어서 조금 역겹긴 했다. 그래도 고수를 최대한 치워놓고 먹으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다시 좀전에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와 동영상을 보다가 예매해놓은 기차표를 확인해보니 출발시간이 저녁 8시다. 표를 예매할 때는 밤 12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착시간이 12시였다. 바욘에서 생장피에드포르로 가는 오전 8시 기차표를 예매했기 때문에 급하게 바욘의 숙소를 예약했다. 바욘역(Gare de Bayonne)에서 가까운 곳(Hostel 20 Bayonne)인데, 도미토리 룸의 침대 하나 가격이 36유로나 됐다. 이래저래 항공편 하나가 취소되는 바람에 돈과 시간을 계속 소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8시간이나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욘으로 가는 고속철도 탑승시간이 가까워져서 플랫폼 쪽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전광판을 보니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같은 플랫폼에 배차돼있었다. 그럼 어떤 기차를 타야 하는 건가? 기차를 타기 위해 줄지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기차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시차 때문인지 저녁이라서 그런지 타자마자 잠이 와서 자고 있는데, 1시간쯤 지나 검표원이 와서 잠을 깨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검표원이 표를 검사하더니 기차를 잘못 탔으니 다음 역(Bordeaux-Saint-Jean)에서 갈아타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나는 엉데(Hendaye)행 기차를 타고 하다 바욘에서 내려야 했던 건데,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는 툴루즈(Toulouse-Matabiau)행 기차를 탄 거였다.
그런데 걱정이 앞섰다. 같은 시간에 출발했던 엉데행 기차를 다음 역에서 만날 순 있는 건가? 그러다가 기차가 없어서 예정에도 없던 보르도 생장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야 하나?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보르도 생장역에 도착해보니 내가 타고 왔던 기차 바로 앞에 엉데행 기차가 서있었다. 그럼 나란히 달려오다가 앞에 서 있는 건가? 아무튼, 부지런히 달려가서 엉데행 기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2시간쯤 더 달려 목적지인 바욘역에서 내렸다.
이제 예약해놓은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방향을 잘 모르겠다. 다행히 밤 12시가 지난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거리에 많이 있어서 몇 번 물어본 후에 숙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주인도 그 시간까지 청소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 하는데 아침식사를 할 거냐고 물었다. 기본이 3.5유로고, 뭔가를 더 추가하면 6유로라고 하길래 기본으로 주문한 후 5유로를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돈을 더 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예약한 숙박비에 세금을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5.65유로를 더 내고 도미토리 침대 하나를 배정받았다. 오늘은 너무 늦었고 피곤하기도 하니 씻지 않고 그냥 자리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