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4일(목)
조금씩 코 고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비교적 조용한 밤을 보냈다. 5시 반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곧바로 짐을 챙겨 알베르게를 나섰는데, 벌써 순례를 시작한 사람들이 꽤 있다. 단체로 온 학생들도 아직은 어둑한 광장에 모여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 출발점에 세워진 거리표지석에는 67.137km로 돼있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가로등이 없어지는 지점부터 헤드랜턴 불을 켰다. 그냥 걷기엔 너무 어두운 시간이다. 헤드랜턴 불빛으로 순례길 화살표와 거리표지석을 찾을 수 있어, 헤드랜턴이 출발할 때 필수품이 된 듯하다.
1시간 채 못 걸은 지점에서 바르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주문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참 만에야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토르티야가 너무 크고 곁들여 나온 빵도 크다. 그래서 그런지 커피까지 포함해서 8유로가 넘었다. 다른 곳에서는 3~4유로 정도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이곳에선 2배나 든 셈이다. 토르티야는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빵은 싸 갖고 나왔다. 주인이 토르티야도 포장해 가겠냐고 물었지만, 한끼 양으로 먹기엔 애매해서 괜찮다고 했다.
갈리시아지방에 들어서면서 걷는 길 풍경이 비슷하다. 자동차도로를 벗어나 숲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그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키고 크다. 길바닥이 좀 거친 곳도 있지만 대체로 걷기 좋은 길이다. 앞서가는 순례자들이 보이지만 이내 따라잡고 내가 앞서 걸었다.
요즘 날씨패턴은 아침에 출발할 때 구름이 많이 끼어있거나 안개가 자욱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맑아지고 햇볕이 뜨거워진다. 흐린 날에는 언제 비가 올지 몰라 걱정하다가도 해가 나면 너무 뜨거워지니까 이 또란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런 날씨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나마 많은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걷는 동안 비오는 날이 며칠 있긴 해도 그 양이 많지 않아 걷기 불편할 정도를 나이었다. 2년전 북쪽길을 걸을 때는 소나기까지 만나서 비옷을 입었는데도 속옷은 물론 신발에 물이 가득 차서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전 7시18분 카사노바(Casanova) 마을을 지나는데, 그 표지판 위에는 Concello de Palas de Rei라고 써있다. 스페인의 행정구역 단위를 보면 단계별로 17개 자치지방(comunidad autónoma)과 50개 주(provincia)가 있고, 그 아래로 코마르카(comarca)와 무니시피오(municipio)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팔라스 데 레이는 최소 지방자치단체(municipio)로, 갈리시아 자치지방(Comunidad Autónoma de Galicia) 루고 주(Provincia de Lugo) 우요아 코마르카(Comarca de Ulloa)에 속한다. 그런데, 콘세요(Concello)는 뭐지? 인터넷을 검색해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는데, 라 코루냐 시청(Ayuntamiento de La Coruña)을 찾아보니 갈리시아로 콘세요 다 코루냐(Concello da Coruña)라고 표기돼있다. 즉, 콘세요는 자치단체 관청(시청군청 등)을 나타내는 말 같다.
카사노바를 지나 오 코토(O Coto)부터 루고 주에서 라 코루냐 주(Provincia de La Coruña)로 바뀐다. 그리고, 8시쯤 어느 마을의 바르에 들러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화장실에 바깥에 있기도 했고 아직은 맥주를 마실 만큼 덥진 않았기 때문이다.
9시쯤 푸렐로스(Furelos) 마을 초입에 있는 바르를 그냥 지나쳤더니 한동안 다른 바르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20여분 더 걸은 다음 멜리데(Melide)의 바르에서 맥주를 한잔 마실 수 있었다. 멜리데는 문어요리로 유명한 곳이어서 길 양옆으로 문어요리 파는 가게들이 많았지만 6년전과 마찬가지로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한국인 순례자를 만났더니, 그곳 문어요리가 너무 맛있었다면서, 어떻게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느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멜리데를 벗어나면서 이정표를 보니 멜리데까지 0.5km, 아르수아 (Arzúa)까지 14km로 표시돼있다. 오늘은 아르수아 전 마을인 리바디소 (Ribadiso de Baixo)까지 가지만, 그 사이가 3.1km이니 아직은 10km 이상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순례길 주위풍경을 구경하면서 작은 마을을 여럿 지나 11시 반쯤 멀리 리바디소 마을이 보이는 언덕까지 왔다. 전에 왔던 기억으로는 이 마을에 알베르게와 바르만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언덕 위로 집들이 몇 채 보인다. 내일 아침부터 넘어가야 할 언덕이다. 그리고 알베르게도 몇 개 더 생긴 것 같다.
11시38분, 드디어 리바디소 공립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Ribadiso de Baixo)에 도착했는데, 오픈시간(오후1시)까지 아직 많이 남았다. 알베르게 앞을 흐르는 이소강(Río Iso)에는 먼저 온 순례자들과 마을 아이들이 물놀이 하면서 장난치고 있었다.
오픈시간까지 계속 기다릴 수 없어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늘도 순례자메뉴를 시켰는데, 에피타이저로 나온 믹스 샐러드는 자르지도 않은 상추와 토마토 슬라이스 몇 개, 계란 하나, 그리고 참치살이 전부다. 참치살은 좋아하지 않아서 덜어내고, 커다란 상추를 먹느라고 입 주위에 다 묻혀야 했다. 메인은 로스트 비프였는데, 맛은 괜찮지만 너무 퍽퍽해서 먹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음식은 뭔가 조화를 이뤄 먹을 때도 편안한 것 같은데, 유럽에서 먹는 요리는 코스랍시고 따로 주다 보니 퍽퍽한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이 있다. 너무 저렴한 음식만 먹어서 그러나? 후식은 요구르트였다. 가격은 15유로.
이 마을에는 마트가 없다. 결국 저녁도 식당에서 해결해야 한다. 조금 과다지출 일 수도 있지만, 이제 며칠 남지 않았으니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좀 나은 걸 먹어도 될 듯하다. 그래도 내일은 마트를 찾아봐야지!
저녁에도 결국 점심 먹었던 식당을 찾아 비슷한 메뉴를 주문했다. 에피타이저로 렌틸콩 수프를, 음료는 생수 대신 레드와인으로 바꾸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