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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제3일(세번째 완주), 한성대입구역~남산

by 이흥재

2024년 8월23일(금), 흐림


작업할 물건이 없어서 하루 쉬게 되어 한양도성길을 완주하기로 했다. 다른 때는 2일째 완주했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조금씩만 걷다 보니 처음으로 3일째 완주하게 됐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긴 했지만, 다행히 새벽녘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오늘 출발지점은 한성대입구역 4번출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세 정거장 더 가서 내리면 된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비가 약간 내리는 것 같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우산을 갖고 왔을 텐데, 아침부터 그친다고 해서 우산도 챙기지 않았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다행히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다. 그나마 조금 후에 그쳤다. 휴우!


길건너 보이는 혜화문 사진을 찍고 계단을 올란 낙산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몇몇 산책하고 있다. 개와 함께 나온 사람도 있고, 커플도 보인다. 하지만 나처럼 작정하고 걷는 것 같지는 않고 가볍게 산책하는 것 같다. 아니면 가까운 거리를 이동 중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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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세워놓은 ‘한양도성’ 설명문을 보니,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漢城府)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1396년(태조5) 백악(白岳•북악산)•낙타(酪駝•낙산)•목멱(木覓•남산)•인왕 (仁王) 등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했다. 전체길이는 18.6km이며, 현존하는 세계도성 중 가장 오랜 기간(1396~1910) 도성기능을 수행했다. 개•보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벽은 성돌에 새겨진 글자(刻字城石)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 모양을 통해 축성시기와 축성기술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성벽을 쌓은 성돌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쌓았고, 세종 때(1422)는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했다. 그리고 숙종 때(1704)는 40~45cm 방형으로 규격화했고, 100년쯤 후인 순조 때는 60cm 정방형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았다고 한다. 그런데, 성벽을 보면서 더욱 놀라운 것은, 성돌끼리 서로 아귀가 맞지 않을 때는 큰 돌을 조금씩 각지게 깎아서 쌓았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 섬세함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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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걷다 보니 성 아래 있는 ‘삼선동 369 성곽마을’에 대한 안내문이 보인다. 내용을 보니, ‘삼선 재개발 6구역’의 첫소리를 따서 ‘369 마을’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조금 억지스럽긴 해도 재미있는 이름이다. 또한 마을을 알리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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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을 지나 언덕을 올라 낙산 정상에 도착했는데, 마을주민들이 여럿 모여서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오늘의 첫번째 인증사진 찍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혼자서 찍으려니 각도가 잘 맞질 않는다. 뒤에 보이는 ‘낙산공원’ 글자가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부탁해서 무사히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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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를 보니 다음 경유지인 흥인지문까지 1.2km다. 언덕을 내려가야 하니 힘들진 않지만, 경사가 급해서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좁은 길에 차까지 다니고 있으니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기온도 조금 내려간 것 같아 무덥진 않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 흥인지문 앞에서 세번째 걷는 한양도성길의 마지막 네번째 스탬프를 받았다. 이제 남산에 올라 봉수대 앞에서 인증사진 한장만 더 찍으면 한양도성길을 완주하고 완주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흥인지문 앞에 있는 설명문을 보니, “1398년(태조7) 처음 세웠고, 지금 문은 1869년(고종6) 다시 지은 것이다. 문 앞에 적을 막기 위한 반달모양 옹성 (甕城)을 둘렀는데, 서울성문 가운데 유일하다.” 흥인지문은 전에 보물 1호였었는데, 2011년 11월 문화재보호법(2023년8월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로 바뀜)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지정번호가 없어져 지금은 보물로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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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있는 이간수문(二間水門)을 보러 갔다. 이곳은 조선 초부터 남산개울물을 도성 밖으로 흘려 보냈던 시설로, 2칸의 반원형 문으로 이뤄져 있어 이간수문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2009년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을 추진하면서 발굴 복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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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경유지는 광희문(光熙門)이다. 그런데 신호가 맞질 않아 계속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라 무단횡단 할 수도 없다. 급한 건 없으니 안전이 제일이다. 광희문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한양도성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으로 불렸다. 1975년 본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곳에 고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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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광희문 안내문 옆에 처음 보는 안내문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교황청승인 국제순례지, 천주교서울순례길 코스’다. 명동대성당에서 시작해 삼성산 성지로 이어지는 길인데, 이곳은 여섯번째 광희문성지라고 한다. 천주교 박해 때 순교자들 시신이 이 문을 통해 내보내졌기 때문이라는데 좀 억지스럽긴 하다. 이곳이 시구문이었으니, 모든 시신은 이 문을 통해 내보내졌을 텐데 순교자만 특별하다고 할 수 있나! 순교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건 모르겠지만.


신라호텔 외곽을 따라 축성된 성곽을 따라 올라가 반얀트리 호텔과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으로 향한다. 잠시 포장도로를 걷다가 가파를 나무계단을 만났는데, 이름이 붙여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깔딱고개’다. 처음부터 세어보진 않았지만 가파른 몇 백 개 계단을 오르고, 잠시 내려갔다가 이번에는 다시 급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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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9시30분 드디어 남산 정상에 올랐다. 자주 오던 길이라 대부분 낯이 익은데, 남산타워 앞에 커다란 벨리곰 인형이 버티고 앉아있다. 평일이어서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남산타워로 가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번씩 인증사진을 찍고 간다. 나는 인형사진만 한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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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구경하다가 오늘의 마지막 미션장소인 봉화대로 간다. 그런데 이번에도 혼자 찍기가 너무 어렵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또 부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성스럽게 찍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면 너무 대충 찍어줘서 맘에 드는 사진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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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양도성길 걷기를 마쳤으니 완주인증서를 신청할 차례다. 봉수대 아래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신청을 마치고, 가파른 계단을 이번엔 내려갈 차례다. 이곳 계단은 가파르기도 하지만 계단높이와 계단참 크기가 일정치 않아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하긴 올라오는 사람들 표정을 보니 그나마 내려가는 건 편한 것 같긴 하다.


오전 10시 조금 전에 완주인증서를 발급해주는 한양도성유적전시관 안내센터에 도착했는데, 밖에 나와있던 직원이 발급은 10시부터 가능하다면서도 곧바로 사무실로 안내해준다. 그런데, 인증사진 중 북악산이나 청운대에서 찍은 게 없어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사고로 인해 출입이 통제된 구간이라 갈 수 없다고 했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찍은 사진으로 인정해줬다. 그렇게 세번째 한양도성길 걷기를 마쳤다. 이제 한번만 더 완주하면 메탈배지를 받을 수 있는데, 확인해보니 내년 1사분기(1월~3월)에 걸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올해는 한양도성길 걷기는 마무리해야 한다.


서울과학관 남산분관 옆에 난 계단을 내려가 찻길을 건너고 길가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회현역으로 갔다. 전에는 빙 둘러 올라가야 했던 길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냉방 중이다. 짧은 탑승시간이었지만 잠시 더위를 식힐 수 있어 그 또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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