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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제2일, 당고개역 ~ 사가정역 16.7km

by 이흥재

2024년 9월11일(수) 맑음, 최고기온 35℃


™ 당고개역~ 상계나들이 철쭉동산(0.5km) ~ 화랑대역(6.9) ~ 깔딱고개 쉼터(7.7) ~ 사가정역(1.6)


서울둘레길이 8개 코스에서 21개 코스로 세분화되면서 하루에 걷는 코스선택 폭은 커졌지만, 선택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코스가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애당초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코스를 나눠놨던 건데, 당분간은 좀 혼란스러울 것 같긴 하다.


오늘도 그랬다. 지난번에 당초의 1코스 종점인 화랑대역까지 걸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당고개역까지만 걷다 보니 오늘 걸을 구간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세분화된 2개 코스만 걷자니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사가정역까지 1.6km로 너무 멀고, 그렇다고 1개 코스를 더 걷자니 그 또한 4.6km나 돼서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오늘 걷기를 어디서 끝낼 것인지는 걸으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일단, 오늘 출발지점은 3코스 시작점인 상계나들이 철쭉동산인데, 당고개역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당고개역 1번 출구로 나가 시내를 잠시 걷다가 계단을 올라 출발지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침 7시43분 출발지점에 도착해 ‘손목닥터 9988’ 앱을 열어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전에는 도봉산역에서 시작해 이곳을 한낮에 지나쳤었기 때문에 조금 피곤했었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시작하니 힘차게 출발했다. 이정표를 보니 3코스 도착지점인 화랑대역까지는 6.9km다. 산길을 걷는 것이니 2시간은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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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는데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다. 기온은 아직도 한여름 무더위인데 나무는 가을인 걸 알고 있나! 하긴 대부분의 나무들은 아직 푸르른 빛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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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수록 힘이 들어 가능한 한 계단을 피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계단 옆에 난 조그만 경사로도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 계단을 오를 때는 발을 높이 들어야 해서 불편하고, 내려갈 때는 울림이 심해 혹시라도 관절에 무리가 갈 것 같다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니 어디서든 계단을 만나는 게 반가울 리가 없다. 그래도 계단을 안 만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꾀를 내본다.


<불암산(佛岩山)이여!> 기념비를 지난다. 이름 때문에 방송인 최불암 (崔佛岩)이 불암산 명예산주(名譽山主)로 이름이 올라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의 본명은 최영한(崔英漢)이었다. 예명 잘 지은 덕분에 뜻하지 않은 명예를 얻은 것 같다. 그런데 자료를 더 찾아보니 그는 세례까지 받은 천주교도였다. 산정상 큰 바위가 부처님 모습을 닮아 불암산이라고 부르게 됐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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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불암산 전망파빌리온 이미지네이션 서클’이란 이름이 붙은 전망대(높이 10m)를 처음 올랐다. 이름이 꽤 어렵게 지어졌는데, 2021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공간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곳이다. 가운데 엘리베이터(15인승)가 있고, 양 옆에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설치돼있다. 주위에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조금 미안한 것 같아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지만 대단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줌인 해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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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특이하게 생긴 바위를 만났다. ‘공룡바위’란다.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육식공룡 머리부분과 흡사한 느낌을 준다”는데, 나는 공룡을 연상하진 못하겠다. 이어지는 설명에는 “불암산 화강암층은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됐다”고 했는데, 화석이 아닐 바에야 바위모양이 공룡을 닮은들 무슨 연관이 있나! 하물며 닮은 구석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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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가다 보니 여자의 음부(陰部)를 연상시키는 바위도 있다. 전에는 그 옆에 설명문이 세워져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치웠나? 전에도 없었던 걸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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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13분, 공릉산백세문(孔陵山百歲門)을 지난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었는데, 오늘은 오가는 차들이 많아 차도로 들어갈 수 없어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하긴 필요하면 전에 찍어놓은 것 중에서 고르면 될 일이다.


마침내, 당고개역을 출발한지 1시간50분만에 7.4km를 걸어 3코스 도착지점인 화랑대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손목닥터’ 앱을 여니 500포인트가 올라간다. 그리고, 오늘 8천보 이상 걸었으니 200포인트도 함께 적립됐다. 이 포인트를 언제 어떻게 쓸 것인지 정한 바는 없지만, 일단 모아두면 쓸 일이 있겠지!


이곳에서 스탬프도 찍고, 다시 ‘손목닥터’에서 500포인트를 받기 위한 4코스 출발승인도 받은 후에 묵동천으로 내려간다. 이정표에는 4코스 도착지점인 깔딱고개 쉼터까지 7.7km로 돼있다. 이제 전반전을 걸은 셈인데, 햇볕이 점점 따가워지고 땀도 많이 나서 걷는 게 쉽지 않다.


묵동천을 지나 찻길로 올라서니, 곧바로 왼쪽 숲길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곳에 오늘 두번째 스탬프함이 있다. 전에는 없던 곳인데, 최근에 코스를 세분화하면서 새로 설치했나 보다. 아무튼, 스탬프북을 꺼내 해당 위치에 스탬프를 찍고 계속 걷는다.


짧은 숲길을 지나 다시 차도를 만났는데, 길 건너에 편의점이 보인다. 원래 코스대로라면 조금 더 가서 차도를 건너야 되지만 조금 더 빨리 건넌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신호를 기다려 차도를 건넌 後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셨다. 시원하긴 한데, 더위를 가실 정도를 아니다. 오늘 날씨가 그만큼 무덥다. 한여름이랄 수 있는 8월에도 느껴보지 못한 더위 같다.


경춘선과 지하철 6호선이 만나는 신내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걷다 보니 특이하게 생긴 건축물 양원성당이 있다. 스페인에서 순례길을 걸으면서 봤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뭐랄까, 스페인의 성당이 중세식이라면 이곳 성당은 현대식으로 아주 세련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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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은 경의중앙선 양원역을 지나고 중랑캠핑숲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숲이 우거진 산길을 지나는데, 그늘에 가려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데도 무덥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더 땀이 많이 나는 것 같다. 지난주에 날씨 주간예보를 봤을 때는 흐리다고 했었는데, 하루하루가 다르다.


10시30분쯤 망우역사공원 초입에 들어섰다. 옛날, ‘망우리 공동묘지’라고 불리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숲이 우거져 분묘들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2023년 1월31일자로 망우리공원 내 모든 분묘 사용기간이 만료돼 연장신청을 하지 않으면 무연고 처리가 된다는 프랑카드가 걸려있는 걸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분묘가 줄어들 것 같긴 하다.


45분 정도 망우리공원을 걷고 조금 더 가서 11시17분,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깔딱고개 쉼터에 도착했다. 먼저 스탬프를 찍은 다음 500포인트도 받고 쉼터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햄버거와 파르리카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옆 벤치에 앉은 사람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듣고 있다. 귀에 거슬려 혼자만 들으라고 하려다가 점심을 빨리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꾹 참으며 먹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둘레길을 계속 걸으면 다음 목적지인 광나루역까지 4.6km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사가정역으로 가려면 1.6km다. 하긴 걸으면서 어느 정도 여기서 끝내기로 결정하긴 했었다. 광나루역까지 가려면 용마산과 아차산을 넘어야 하는데, 사가정역으로 간다면 내리막만 내려가면 된다. 그래서 결국 사가정역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것도 쉽진 않다. 이번에도 계단 옆에 있는 경사로를 이용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내려가다 잠시 길이 헷갈려 정자에서 쉬고 있는 주민들한테 물어가며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차도로 들어서서도 예상보다 지하철역이 멀다.


뜨거운 햇볕을 맞아 땀을 뻘뻘 흘리며 사가정역에 도착해 티셔츠만 갈아입고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가족들과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그러다가 환승역인 군자역을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역에서 내려 다시 갈아타고 귀가했다.


그런데, 여기서 불만사항이 하나 있다. 서울시내 지하철역에 설치된 화장실에 가보면 거의 모든 역에 화변기(和便器)가 하나 이상씩 설치돼있다. 오늘 이용한 화장실에도 변기가 2개뿐인데, 그중 하나가 화변기였다. 그런데 이 변기는 누가 이용하지? 쪼그리고 앉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고, 조금만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려올 텐데, 이용하는 사람이 있긴 한 건가? 기회가 된다면 지하철공사에 건의문을 올려볼 참이다. 이용하지도 않는 시설 때문에 정작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그만큼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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