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17일(화)
사가정역 ~ 깔딱고개 쉼터(1.6) ~ 광나루역(4.6) ~ 명일공원 입구(9.3)
오늘은 추석(秋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큰형님이 거동이 불편해, 벌초하면서 성묘(省墓)를 함께 하기 때문에 차례(茶禮)를 따로 지내진 않는다. 게다가 아내는 처남 간병을 위해 청주에 내려가있고, 딸은 친구와 함께 대만으로 여행 갔기 때문에 혼자만 집에 있게 됐다. 하긴 어제 아들네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긴 했으니, 그걸로 추석을 갈음한 셈이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추석 – 명칭은 변했더라고 – 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풍습이지만, 집집마다 지내는 차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먼저, 유교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법이 있는데, 이는 갓을 쓰는 성인식인 관례(冠禮), 결혼식으로 올리는 혼례(婚禮), 장례를 치르는 상례 (喪例),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 등을 일컬으며, 여기에 ‘차례’는 없다.
다른 자료를 보니, 차례는 불교에서 온 것 같다. 중국 선종(禪宗)의 의식과 규율을 정한 <백장청규(百丈淸規)>란 책에서 차례를 ‘한 솥에 끓인 차(茶)를 부처님께 바치고 공양 드리는 자가 같이 마심으로써 부처와 중생이 하나 되는 의례’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차례’는 유교와 불교풍습이 섞여 언제부턴가 집안에서 치르는 의식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오래됐으니 ‘전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전통도 시간과 사정에 따라 변할 수 있으니 전통이라고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또 하나,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있다. 이는 <화엄경(華嚴經)>의 중심사상으로,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냄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란 뜻이다. 즉,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당나라 때 승려 실차난타(實叉亂陀)가 번역한 <신역(新譯) 화엄경>(80권)의 보살설게품(菩薩設揭品)에 “만일 어떤 사람이 산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란 게송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 대단한 게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바쁜 일상에 일년에 몇 번쯤 일가친척을 만다 즐겁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도 모르는 ‘차례’를 위해 억지로 시간을 만드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오늘은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가족들도 모두 제 할 일을 위해 흩어졌으니 나는 서울둘레길 걷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추석이니 산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가롭게 걸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함께.
출발은 지난주에 끝냈던 사가정역이다. 4번 출구 쪽으로 가니 ‘서울둘레길 가는 길’ 지도가 벽면에 붙어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니 이번엔 바닥에도 표지판을 설치해놨다. 10분쯤 걸어 사가정공원에 이르렀는데, 거기부터 계단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사가정역에서 서울둘레길 5코스 시작점인 깔딱고개 쉼터까지 1.6km 중 1km 넘게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15분쯤 걸어 7시38분, 깔딱고개 쉼터에 도착해 ‘손목닥터9988’ 이벤트를 위한 인증을 받고, 곧바로 570계단이 설치된 깔딱고개를 오른다. 지난 4월에 참가했던 롯데월드타워 수직마라톤(2,917계단)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8월과 비슷한 기온의 9월 중순에 오르려니 땀이 비오듯 한다. 그래도 아직은 초반이니 다리가 아프진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왼쪽을 보니 지난 2015년 완공된 한강의 31번째 다리 구리암사대교와, 올해 말 33번째 다리로 개통예정인 다리가 보인다. 그런데, 사장교로 건설중인 33번째 다리는 서울시강동구(고덕대교)와 경기도 구리시(구리대교)의 충돌로 아직 다리이름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국가지명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데, 어느 이름으로 하든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나는 구리시민도 강동구민도 아니니까.
8분 동안 깔딱고개를 다 오르고 나니, “수명은 35분쯤 늘었으며, 90kcal를 소비했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이는 천천히 30분 걸은 것과 같은 열량소모량이라고 한다.
오늘 걷는 용마산(龍馬山)과 아차산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구축물인 보루(堡壘)를 설치했던 터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중 용마산5보루 안내문을 지난다. 용마산 능선에 설치된 7개 보루 중 하나라고 한다. 해발 316m에 위치해 있고, 둘레는 132m로 추정된다고 한다.
7시55분, 용마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 왔다. 가끔은 용마산으로 향할 때도 있지만 오늘은 아차산으로 향하는 왼쪽 내리막길을 택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는데 이정표를 보니, 깔딱고개 쉼터에서 겨우 700m 거리다. 하긴 사가정역에서 걷기 시작했으니 2.3km쯤 걸은 셈이긴 하다. 오늘 첫번째 기점인 광나루역까지는 3.9km 남았다.
용마산줄기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 다시 아차산을 오르는 계단을 만났다. 계단을 다 오르니 왼쪽으로 아차산 4보루 가는 길이 나오지만, 오늘은 이곳도 들르지 않고 오른쪽길을 따라 계속 아차산 쪽으로 간다.
그리고 아차산 3보루를 지나 아차산 정상(295.7m)에 이르렀다. 하긴, 정상표지판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던 곳이다. 그만큼 정상이 능선을 따라 평지에 위치해 있다. 설명문을 보니, “아차산은 주변의 용마봉과 망우현(忘憂峴)을 함께 부르는 표현이었지만, 요즘은 주변산지와 구분해 아차산용마산망우산으로 나눠 부리기도 해서 아차산 3보루 지점을 ‘아차산 정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맞이 탑과 고구려정(高句麗亭)을 지나 8시50분쯤 아차산공원관리소 앞에 설치된 스탬프함에서 5코스 스탬프를 찍고, 손목닥터9988 이벤트도 인증해 500포인트를 받았다.
광나루역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니 산기슭에 ‘아차산의 한자(漢子) 표기’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아차산성의 한자표기는 보통 ‘峨嵯山城’으로 한다. 이에 대한 가장 앞선 기록인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414)에는 아단성(阿旦城)으로 돼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아차성 (阿且城)으로 표기했다. 고려후기부터 ‘峨嵯山城’으로 쓰였지만, 문화재청은 1973년 아차산성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할 때 <삼국사기>를 근거로 ‘阿且山城’으로 표기하면서 문화재 안내문에는 이를 따르고 있다.” 좀 복잡하다. 결국 아직은 하나로 통일해서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광나루역을 지나 광진교(廣津橋)로 향한다. ‘광(廣)나루’는 강폭이 넓은 곳에 있는 나루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너븐나루’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광진’은 광나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광진교는 1936년 준공된, 한강을 건너는 두번째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첫번째는 한강대교(1917)다.
한강을 바라보며 광진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내려가,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나있는 한강변 길을 따라 걷는다. 길 오른쪽엔 여러 스포츠시설들이 설치돼있어 휴식을 취하면서 운동할 수 있게 해놓았다.
30분쯤 걸은 후에 오른쪽으로 난 굴다리를 지나 암사동유적지 입구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계속 걸어간다. 지금이 9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여전히 무덥다. 언제까지 이 더위가 계속될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오전에 비가 올 거란 예보가 있어 우산까지 챙겨왔는데, 비는커녕 구름도 거의 없다(비는 저녁에 잠시 내렸다).
오늘 걷는 서울둘레길 6코스 명칭은 ‘고덕산’ 코스다. 하지만 이 길을 여러 번 걸으면서도 고덕산이 어딘지 몰랐다. 그런데 비로소 오늘 고덕산 정상 이정표는 봤지만, 코스를 벗어나 있는데다가 별다른 흥미거리도 없는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고덕산(高德山) 유래’ 안내문이 설치돼있는 걸 봤는데, “낮은 야산으로 원래 이름 없는 산이었다. 고려 이양중(李養中)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떠나 이곳 산자락에 살았는데, 후일 인근 사람들이 고덕산이라고 불렀다. ‘고덕’이란 고매(高邁)한 인격과 덕성 (德性)을 뜻한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지나는데도 바람 한점 없고 여전히 무덥다. 다만, 그늘져서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고덕동 고인돌’을 만났다. 그런데, 여느 고인돌과는 달리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안내문이 없다면 도저히 고인돌이라고 볼 수 없는 모양새다. “청동기시대(서기전 10세기경) 조성된 무덤으로 2004년 세종대박물관 조사과정에서 발견됐다.” 그러니까 틀림없는 고인돌인 거다.
11시36분,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명일공원 입구’까지 와서 6코스 걷기를 마쳤다. 그리고 스탬프까지 찍었는데, 손목닥터9988 이벤트는 인증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아직 코스가 남은 건가? 그럴 리가! 그러는 사이 고덕역으로 향하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어 일단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역을 향했다. 인증은 다음에 다시 한번 시도해보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