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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제5일, 수서역~수서역 18.3km

by 이흥재

2024년 10월8일(화) 맑음


™ 코스 : 수서역~ 매헌시민의숲(10.7km)~ 사당역(7.6)


오늘은 예전 4코스(대모•우면산)에 해당하는 9코스(대모•구룡산코스)와 10코스(우면산코스)를 걷는다. 서울둘레길이 8개 코스에서 21개 코스로 바뀌면서 코스이름도 함께 변경됐다. 예를 들어, 예전 1코스(수락•불암산)는 3개 코스로 나눠지면서 1코스는 수락산코스, 2코스는 덕릉고개코스, 3코스는 불암산코스가 됐다.


아무튼, 오늘 출발지점은 수서역이다. 집에서 수서역까지 거리가 3km 조금 넘기 때문에 걸어가면 50분쯤 걸리고, 지하철을 타면 한번 갈아타더라도 25분 정도면 되기 때문에 가깝더라도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개롱역에서 한 정거장 지나 오금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수서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갔는데도 아직 7시가 안 됐다.


그런데 등산로입구가 막혀있다. ‘대모산 등산로입구 정비공사’를 한다면서 펜스를 쳐놓고 등산로입구를 50m쯤 더 간 위치인 SRT 수서역 맞은편에 임시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안내판을 보니 공사는 지난 9월30일 시작해서 11월20일 끝나는 것으로 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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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이라 당연히 오르막이 있긴 해도 조금 오르고 나니 숲길에 바닥이 흙이라서 걷기엔 좋다. 등산로 옆에 벤치도 드문드문 설치돼있지만, 아직은 쉬지 않아도 되니 그저 무심코 지나친다. 이른 시간인데도 산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맨발이다. 하긴 건강은 차치하고라도 이런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그러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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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보니 ‘명품강남둘레길’ 이정표도 자주 보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명품강남둘레길은 4개 코스 27.1km로 구성돼있다. 1코스(명품하천길)은 매봉역에서 수서역까지 7.7km, 2코스(생태하천길)는 수서역에서 헌릉IC까지 6.3km, 3코스(정상숲길)는 헌릉IC에서 도곡역까지 5.4km, 마지막으로 4코스 (둘레숲길)는 수서역에서 매봉역까지 7.7k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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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9코스 구간에는 약수터들이 유독 많다. 그런데 하나 같이 ‘음용불가’다. 이유는 대장균이 검출됐기 때문이란다. 이런 숲속에 흐르는 물에 왜 대장균이 생겼지? 특별히 오염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런데도 약수터는 지붕을 씌워 보호되고 파이프에서는 시원한 물줄기가 계속 흐르고 있다. 더운 여름날이었으면 그저 한모금 마셔보고 싶을 정도다.


곳곳에 도토리나 밤 등 임산물을 가져가지 말고 야생동물에게 양보하란 프랑카드가 설치돼있지만, 알밤을 주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발각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아내를 위해 길가에서 보이는 알밤을 몇 개 줍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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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7월, 백년만의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많은 사상자를 냈던 대모산과 우면산에는 계곡마다 튼튼한 사방공사가 이뤄졌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산사태가 인재(人災)라고 했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릴지 누가 알고 또 그 비로 산사태가 날줄 누가 알았겠나! 아무튼, 그 일로 인해 두번 다시 같은 피해가 없도록 사후방비를 잘 해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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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36분, ‘돌탑전망대’에 올랐다. 오른쪽에 돌탑 몇 개가 보이고 저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흐릿하게 보인다. 저 정도면 미세먼지가 아주 심한 것 같다. 여기 있는 돌탑은 임형모(任亨模)란 사람이 지난 1995년부터 2014년까지 20년간 대모산에서 돌탑을 쌓았는데, 그 일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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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쯤 더 걸어 ‘사랑나무 연리목(連理木)’을 지난다. 다른 연리목들은 대개 가지가 뻗어 다른 나무와 연결돼있는데 반해, 이 연리목은 아예 줄기가 합쳐진 상태다. 물론 이 나무도 신기하긴 하지만,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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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 도착했다. 여기도 약수터가 있는데, 역시 대장균이 검출돼서 음용불가다. 이곳 불국사는, 고려 공민왕 때 진정국사가 약사절로 창건했는데, 아랫마을 농부가 밭을 갈다 돌부처가 나와 마을 뒷산에 모시다가 국사가 절을 지으면서 약사부처님을 모시게 돼 약사절이라고 불렸다. 그 後 조선 고종 때 대모산 남쪽 헌인릉(獻仁陵, 태종과 원경왕후 능인 헌릉, 순조와 순원왕후 능인 인릉이 있다)에 물이 나와 당시 주지스님께 방지책을 물으니 대모산 동쪽 수맥을 차단해서 물이 나오지 않게 했다. 이에 고종은 불국정토(佛國淨土)를 이루란 뜻에서 불국사란 사명(寺名)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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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54분, 몇몇 사람들이 등산로를 보수하고 있다. 그 모습이 새로워서 사진을 찍었더니 그중 한 사람이 “왜 사진을 찍느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아마도 뭔가 좋지 않은 목적으로 찍는 것 아닌가, 하는 말투 같다. 나는 그저 호기심에 찍은 것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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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자락을 내려와 헌릉로를 건너려는데 전에 있는 육교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 옆으로 건널목이 만들어졌다. 마침 신호등이 바뀌어 곧바로 건너긴 했지만, 왜 육교를 없앴는지 모르겠다. 하긴 이곳을 지날 때마다 육교를 건너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긴 했다. 그리고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고 보기에도 별로 좋지 않으니 철거한 것 같다. 잠시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건너가는 게 여러모로 좋은 것 같긴 하다.


여의천을 따라 잠시 걷다 위령탑과 충혼탑을 지나고, 드디어 9코스 종점인 시민의숲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바뀌어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2022년 10월부터 매헌시민의숲으로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지하철역 이름은 여전히 양재시민의숲역이다. 매헌은 윤봉길의 호이고, 주변에는 매헌교와 매헌초등학교, 매헌로 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숲의 이름은 설문조사를 거쳐 국가지명위원회의 고시로 변경된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김구나 안중근•윤봉길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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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 찍는 곳에 도착했는데,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는다. 코스를 잘못 온 건가? 표시를 따라 열심히 걸어왔는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조금 허탈하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다시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숲에도 ‘지식서재’가 있다. 그리고 작은 서고 안에는 빛바랜 책들이 여러 권 꽂혀있지만 누군가 꺼내 읽은 흔적은 없는 것 같다. 숲속에 이런 걸 만들어놓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어쩌다 한두 명이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가성비를 따져보면 형편없는 일을 한 것 같다.


숲을 빠져 나와 10코스를 따라 간다. 큰 길을 건너야 하는데, 신호등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그나마 좁은 차도는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가 넓은 차도의 초록 신호등 때 길을 건너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대모산 구간을 지나 우면산 자락을 따라 걷고 있지만 숲 모양은 비슷하다. 대성사 안내문이 보이는데, 정작 절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도 조금 바뀌어 있다. 안내문에 있는 내용은 조금 황당해 보인다.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 인도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한산(漢山)에 오자 궁 안에 머물게 했다. 마라난타는 풍토병으로 고생했는데, 우면산 물을 마시고 완쾌돼 대성초당 (大聖草堂)을 짓게 되는데, 대성사 전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근대에 이른다. 그러니까 1,500년 이상 공백상태다. 그저 끼워 맞춘 느낌이다.


11시 조금 지나 ‘우면산 무장해숲길 조성사업’ 현장에 도착했다. 보행약자를 위한 시설을 건설하는 중이란다. 그런데, 산책 나온 한 노인이 불만이 무척 많다. “이곳에 고속도로를 만드냐? 돈 쓸 곳이 그렇게 없냐?” 그러면서 공사안내판을 지팡이도 탕탕 치면서 내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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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10분, 10코스 종점인 사당역을 3.2km 남겨둔 지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등산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준비해간 햄버거와 샤인머스켓 그리고 커피도 꺼내놨다. 햄버거 속의 닭고기가 식어서 조금 딱딱해지긴 했어도 샤인머스켓과 함께 먹으니 먹을 만하다. 햄버거를 다 먹고 난 후에 커피도 한잔 마시고 다시 사당역을 향해 걸어간다.


12시 조금 지나 드디어 10코스 스탬프 찍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파른 마을길을 내려가 사당역에 도착해 간단하게 씻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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