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5일(화) 맑음
코스 : 증산역~ 봉산~ 구파발역(9.1km)~ 북한산생태공원(5.9)~ 불광역(1.0)
서울둘레길 걷기도 이제 종반에 이르렀다. 오늘 걷고 나면 앞으로 2번만 더 걸으면 21개 코스, 157km를 완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걸은 구간은 16코스(봉산.앵봉산, 증산역~구파발역)와 17코스(북한산 은평, 구파발역~ 북한산생태공원)다. 그런데, 끝나는 구간이 북한산생태공원이기 때문에 귀가하려면 불광역까지 1km쯤 더 걸어야 끝난다. 다음에 걸을 때도 역시 1km 걸어가야 18코스가 시작된다.
오늘 출발지인 증산역까지 가려면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공덕역까지 간 다음 6호선으로 갈아타고 9개 역을 더 가야 했다. 아무튼, 증산역 3번 출구로 나와 5분쯤 가면 16코스 시작점인 증산역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오늘 둘레길 걷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10분쯤 걸어 올라가면 증산체육공원 앞에 설치된 오늘 첫번째 스탬프함이 나온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체육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동네주민인 듯한 노인네가 공원주위를 걷고 있긴 했다. 아무렴 나는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여기엔 ‘은평둘레길’이 있다. 안내문을 보니, 총 5개 코스로 증산역에서 출발해 앵봉산과 구파발역,진관사입구,북한산생태공원, 녹번역,응암시장 등을 지나 다시 증산역으로 돌아오도록 돼있는데, 전체거리는 24km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길을 걸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서울둘레길이나 북한산둘레길과 일부 겹치는 구간이 있긴 하다.
아직은 푸른 나뭇잎이 많은데도, 계절이 가을인지라 등산로에는 노란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하긴 어제 일기예보로는 어제보다 오늘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고 했었는데, 걷고 있어서 그런지 춥다는 걸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제 11월로 접어들었으니 절기상으론 완연히 가을이어야 할 텐데, 아직도 무더웠던 여름을 전부 보내진 못했는지, 낙엽마저 늦게 떨어지는 것 같다.
등산로 주변에는 유명한 시(詩)를 적어놓은 패널들이 여럿 세워져 있는데, 그중에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도 있었다. 시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몰랐었는데, 이참에 인터넷에서 원문까지 찾아봤다.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어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봤습니다.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중략)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뭐, 어쩌겠는가! 인생이 선택의 연속일 것을! 그중엔 잘된 선택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선택도 하게 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다시 태어나면 어쩔 거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그때도 올바른 선택만 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런 질문 자체가 부질없는 것이다. 그저 지금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그나마 신중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달리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인가!
아직도 ‘봉산 무장애 숲길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오래 전에 왔을 때도 공사중이었는데, 꽤 오래 걸리나 보다. 하긴 지금이 5단계라고 했으니 오래 걸릴 만도 하겠다. 안내문을 보니, 5단계는 내년 1월말 끝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럼 6단계가 또 있나? 하긴, 이 시설물도 내가 이용할 일은 없을 것 같다.
8시52분, 봉산(烽山)에 도착했다. 이곳엔 봉수대 2개와 봉산정이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봉수대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봉산은 일명 봉령산 (鳳嶺山)으로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는 207.8m다. 봉령산은 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봉황이 날개를 펴고 앉아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번에는 서오릉고개 녹지연결로에 있는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 1856~1939)의 시 <이 떠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를 봤다. 그런데, ‘이 또한 지나가기라’란 말을 여러 번 들어봤지만, 이것이 시 제목인지는 오늘 처음 알게 됐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장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기라.’
WHEN SOME GREAT SORROW , like a mighty river,
Flows through your life with peace-destroying power,
And dearest things are swept from sight forever,
Say to your heart each trying hour:
‘This, too, shall pass away.’ (중략)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When earnest labor brings you fame and glory,
And all earth's noblest ones upon you smile,
Remember that life's longest, grandest story
Fills but a moment in earth's little while:
‘This, too, shall pass away.’”
9시34분, 16코스 이름 중 하나인 앵봉산을 지난다. 하지만 이곳은 앞서 지나온 봉산과 달리 봉우리랄 것도 없다. 그저 산스장 옆에 안내문이 있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아무튼, “앵봉산(鶯峰山)은 높이 230m로, 꾀꼬리가 많이 살기 붙여진 이름이다.”
앵봉산입구에 설치된 두번째 스탬프를 찍고 큰길로 나와 신호를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 구파발역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이어진 둘레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전에는 대부분 구파발역에서 일단 걷기를 멈추고 다름 코스를 이어갔는데, 이번엔 어쩌다 보니 구파발역을 지나치게 됐다.
여기서 둘레길은 구파발천을 따라 걷다 선림사(禪林寺)로 이어진다. 그런데, 선림사 못 미처 세번째 스탬프함이 있지만 오늘따라 단체로 온 듯한 여자들이 스탬프함 주위에 몰려있어 선림사를 먼저 구경하기로 한다. 그런데 사찰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사찰에 대한 안내문도 없어 그 연혁도 잘 모르겠다. 궁금해서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거기에도 별다른 정보가 없다.
선림사를 구경하고 세번째 스탬프를 찍은 後 둘레길을 계속 걸어간다. 이곳은 북한산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라 이정표마다 서울둘레길과 나란히 북한산둘레길이 표시돼있다. 그리고 이곳은 이름도 정겨운 ‘구름정원길’ 구간이다.
11시쯤 목적지를 2km쯤 남겨둔 지점, 정자 앞에 있는 야외테이블에 앉아 어제 사다 놓은 햄버거와 오늘아침 끓여온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걸을 땐 꽤 더운 것 같았는데, 한동안 앉아있으니 잠시 한기가 느껴진다.
점심을 먹고 가다 공원에 심어져 있는 계수나무가 있길래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혹시 월계수와 같은 건가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전혀 다른 나무였다. 계수나무는 원산지가 중국과 일본으로, 윤극영(尹克榮 1903~1988)의 동요 <반달>에서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에 나오는 그 나무다. 반면, 월계수나무는 지중해 부근에서 자라는 나무로, 고대 올림픽 때 우승한 선수에게 씌워주던 관(冠)을 월계수 잎으로 만들었다.
구름정원길이 끝나는 구간에서 네번째 스탬프를 찍고 조금 더 걸어 오늘 목적지인 북한산생태공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귀가하려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불광역까지 1km쯤 더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컨디션이 좋아 그 정도 걸어가는 건 문제될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