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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제11일, 화계역 ~ 도봉산역 15.4km

by 이흥재

2024년 11월19일(화) 맑음


코스 : 화계역~ 화계사(1.0km) ~ 솔밭공원~ 북한산우이역(7.1km)~ 연산군묘 ~ 무수골~ 도봉산역(7.3km)


오늘은 서울둘레길 157km를 열하루 동안 걸어 완주하는 날이다. 서울둘레길로는 20코스(화계사일주문~ 북한산우이역)와 21코스(북한산우이역~ 도봉산역)고, 겹쳐서 걷게 되는 북한산둘레길로는 흰구름길(3구간)부터 도봉옛길(18구간)까지 걸어야 한다.


출발지점은 우이신설선 화계역. 20코스는 화계사 일주문에서 시작되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면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2번(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성신여대입구역) 갈아타고 화계역에서 내린 後 일주문까지 1km쯤 걸어가야 한다.


화계역에서 일주문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오늘도 역시 지하철 타려는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다. 오늘아침 최저기온이 2도라고 했는데, 역시 쌀쌀하다. 다른 날보다 재킷을 하나 더 입고 와서 몸은 춥지 않은데, 노출된 손이 시리다. 배낭에 장갑이 있긴 해도 귀찮아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기로 한다.


일주문을 지나 화계사 해우소(解憂所)부터 들렀다. 화계역에서는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서다. 화계사 입구 오른쪽에 보륜당(宝輪堂)이 있고, 그 건물 1층에 ‘해우소’란 간판이 보인다. 이른 아침이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얼른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걷기 위해 다시 일주문으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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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계단 오르기부터 시작한다. 별로 높지도 않고, 이제 막 걷기시작했으니 어려울 건 없다. 그리고 잠시 後 ‘멧돼지 출현주의’ 경고판이 붙어있는 울타리를 만났다. 예전에 멧돼지가 마을로 들어와 휘젓고 다닌 적이 있다는 뉴스를 본적 있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코스에는 울타리를 치고 쇠창살 문을 달아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물론, 사람이 통행하는데 제한을 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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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53분, 갈림길을 만났다. 오른쪽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은 사유지이니 500m쯤 우회해서 가란 안내문이 세워져 있지만, 그냥 오른쪽으로 간다. 길을 막아놓은 것도 아니고 사람 사는 곳을 지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방해될 일도 없을 것 같아서다. 다만, 사유지를 공식적인 루트로 만드는 게 곤란하기 때문에 안내판을 세워놓을 거라고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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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소나무 연리지(連理枝)를 지난다. 그런데 바닥에 거의 붙어있으니 연리근(連理根)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긴 뿌리는 아닌 것 같다. 그 옆에 ‘연지리’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내용이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후한말 문인 채옹(蔡邕)은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다 돌아가시자 시묘 (侍墓) 살이를 했다. 그 후 채옹 방 앞에 두 그루 나무가 자라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마침내 한그루가 됐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과 어머니가 한 몸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연리지는 모자(母子)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는데 사용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는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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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후에 이 말은 부부간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바뀌어 쓰였는데, 이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당나라 현종(玄宗) 과 양귀비(楊貴妃)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를 지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장한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길 원하고 (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원하네(在地願爲連理枝).”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뿐이어서 암수가 결합돼야만 날 수 있는 새로,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국립통일교육원을 지나면서 순례길(북한산둘레길 2코스)이 시작된다. 이 길 주변에는 이준과 손병희를 비롯한 이른바 독립지사들의 묘역들이 있다. 그런데, 당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게 과장된 면이 많은 것 같다. 차라리 ‘항일’운동이라면 또 모를까! 꽤 크게 묘역이 조성돼있는 이준의 경우에도 헤이그밀사로 가서 할복자살 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었지만 이는 가짜뉴스였다. 그의 사인은 병사(病死)로 밝혀졌다. 길가에는 독립지사들의 어록(語錄) 적어놓은 것도 많은데,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당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과 민주통일당 총재를 지낸 양일동(梁一東)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사람인데, “교육은 민족의 영속적 발전의 원동력이고 문화는 그 아름다운 꽃이요 열매다.”란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하물며 이를 실행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네덜란드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Tomas a Kempis 1379~1471) 말했다는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라. 그로써 다른 이들에게도 평화를 줄 수 있다(First keep the peace within yourself, then you can also bring peace to others)”란 문구가 마음에 더 와 닿는다.


8시43분, 오랜만에 보광사(普光寺)에 들렀다. 이 사찰은 1788년 금강산에서 수도한 원담스님이 신원사로 창건해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80년 보광사로 이름을 바꾸고 여러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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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묘지를 지나 솔밭공원부터 소나무숲길(1구간)이 시작된다. 서울둘레길 20코스 종점인 북한산우이역까지는 2.8km 남았다. 화계사 일주문에서 4.3km 걸어온 셈이다. 이곳에도 ‘숲속문고’가 설치돼있지만, 서가(書架)의 3분의1만 채워져 있고 그나마 언제 열어봤는지 모를 정도로 먼지만 쌓여있다. 참, 누구의 발상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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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20코스 종점은 북한산우이역인데, 스탬프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여러 번 다녔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혹시 코스가 세분화되면서 추가설치 했나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계속 걸었다. 결국 전부터 있던 자리인 왕실묘역길(북한산둘레길 20코스)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늘 첫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거기부터 서울둘레길 마지막 코스인 7.3km 21코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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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묘 재실(燕山君墓 齋室)과 원당샘(元堂泉)을 지나 연산군묘에 올라가 봤다. 이곳에는 연산군 부부는 물론 딸인 휘순공주 부부와 태종의 후궁인 의정궁주 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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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중 군(君)은 셋이 있었는데, 노산군과 연산군 그리고 광해군이 그들이다. 그런데 노산군은 숙종 때 단종(端宗)으로 복위됐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은 ‘군’으로 남았다. 연산군의 경우 반정을 일으켰던 중종과 함께 성종의 아들이었지만, 연산군은 두번째 왕비였다가 폐비된 윤씨 소생이고, 중종은 세번째 왕비 소생이라 서로 불편한 관계였던 것 같긴 하다.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 묘를 지나 무수골로 향한다. 사천목씨(泗川睦氏) 선영을 지나면 방학동길(북한산둘레길 19구간)이 시작된다. 이곳에도 멧돼지를 막기 위한 철망과 철문이 설치돼있다.


낙엽 쌓인 산길을 지나 쌍둥이 전망대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내려오도록 해놓은 구조다. 정상에서는 멀리 롯데월드타워는 물론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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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내려와 벤치에 앉아 조금 이른 점심을 먹는다. 다른 때는 햄버거를 갖고 왔었지만, 어제는 햄버거집이 문을 닫아서 꼬마김밥을 대신 싸왔는데, 샤인머스켓과 함께 먹으니 괜찮다. 다 먹고 난 다음 커피도 한잔 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수골부터 도봉옛길(북한산둘레길 18구간)이 시작된다. 무수(無愁)골은 성종 때 세종의 아홉번째 아들 영해군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됐다고 한다. 세종이 아들 묘를 찾아왔다가 약수터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 없는 곳”이라고 했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종 때면 세종은 물론 문종부터 예종까지 다 죽은 후인데, 세종이 다녀갔다니 말이 되나? 도봉구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인데 뭔가 잘못 기록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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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봉사(道峰寺)에 올라가봤다. 입구에서 빨간 단풍나무가 반겨준다. 낙엽이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아직 색깔이 진하다. 대웅전(大雄殿)까지 올라가는 동안 본 단풍나무들 줄기가 모두 이상하게 생겼다. 가지가 엉켜서 구멍이 난 것들이 많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생겼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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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사는 고려 때 해거스님이 창건했고, 천년 역사 동안 전쟁과 종교분쟁, 화재로 여러 번 소실됐던 것을 1961년 벽암스님이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능원사(能園寺)를 지나 도봉탐방지원센터 옆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배낭까지 산 後, 12시10분 서울둘레길 안내센터가 있는 창포원에 도착했는데, 완주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안내센터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이라 문이 닫혀있다. 귀가했다가 여길 다시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이 1시간 기다려야만 한다.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1시 조금 전에 안내센터로 가니 벌써 사람들 몇 명이 먼저 와있다. 차례를 기다려 완주인증서를 발급받았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해 일곱번째 받은 완주증명서다. 1년에 한번 정도씩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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