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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준 Apr 03. 2018

삶의 딜레마

기만과 위선, 역설과 모순

 많은 대학생들은 우파보다 좌파인 경우가 많다. 이는 투표에서 정의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이 20대로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그들이 처한 어려움 때문이다. 죽어라 벌어도 한 학기 등록금 만들기 어렵고 결국 대출을 택하는 고된 일상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위악이 있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아니 만들어진 것이다. 재소자들의 문신과 같이 말이다. 그 위악은 아니 문신은 조잡하다. 그들이 살아온 아니 그들이 살아갈 경제적 여건과 같이.

 근데 나는 그렇지 않다. 흔히 말하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보다 부유하게 살았다. 나는 저들과 같은 위악이나 문신이 없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나도 저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뜻을 함께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맞지 않지만 나는 그렇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아마 그저 이상향을 따라가는 젊은 시절의 공상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계속 이 이상향을 추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의 지인이 말한 마주 보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나는 이왕이면 조금 더 비싼 것을 좋아한다. 자판기 커피보단 스타벅스를, 지오다노보다는 라코스테를. 산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보고 너는 돈맛을 본 놈이니 좌파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조금은 비싼 것을 쓰며 이상향을 추구할 수 없는가? 답은 ‘할 수 있다.’이다. 근데 모순이 아닐 뿐이지 위선일 수 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남을 돕는다면 그것은 도움이 아닌 호혜로 비칠 수 있다. 나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이들과 다가갈 수 있나. 이런 생각조차 위선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혹자는 우리처럼 여유있는 사람만이 진보를 추구하지 않으면 세상이 퇴보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사회의 퇴보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엄청 이기적인 것이다.

 나의 관심이 호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나는 사람들의 옆보다는 마주 보게 될 것 같다. 이 상황이 늦게 오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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