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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구했다니까.”
“그런데 정말...”
“정말, 뭐? 또 괜찮냐고 물어볼 셈이야?”
“아니요...”
하지만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영연의 대답은 누가 들어도 시원찮았다. 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인 현정은 인상을 찡그린 채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말하려고 해봤자 의견 차이로 싸움나거나 짜증내거나 둘 중 하나임을 아는 거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서너 번 이상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들으면 안 될 얘기를 하나? 어쩐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미윤은 몸 숨길 곳을 찾았다.
하늘 높게 솟은 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만 따로 보면 줄기도 굵고 단단해 보였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무들 사이에선 영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비실비실하게 보였다. 어깨를 최대한 움츠리면 내 몸이 다 가려질까? 하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큰 길을 건너야 했다.
그때 현정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급한대로 기대고 있던 벽에 몸을 가까이 붙였다. 다행히 그 앞에 대충 꺾어놓은 나뭇가지가 쌓여있었다.
여름이 되면 온갖 생물이 푸릇푸릇하게 자라나기 마련이었다. 나무는 길게 가지를 뻗고, 길가에 널린 풀은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아마도 청소 담당이었을 마을 사람이 쌓아둔 거겠지.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듯 쌓인 나무와 풀은 적었지만, 내 몸 하나 숨길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 물이 아주 새까맣게 변하는 건 물론이고, 더럽혀진 물에서 살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하니까 우리는 그냥 이걸 연못에 부어버리기만 하면 돼.”
현정의 손에 들린 건 검은 봉투였다. 안에 들어있는 물건의 모양에 맞게 돌돌 감싼 걸로 추측해보면 오백 리터 크기의 생수통 같았다. 그의 앞에 선 영연은 그 물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마치 잘린 메두사의 머리를 보면 온몸이 돌처럼 굳는다는 듯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저는... 좀...”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입술을 씹어먹듯 우물거리던 영연은 제법 용기 낸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애써 꺼낸 말이 끝을 맺기 전, 벼락같은 현정의 목소리가 내리쳤다.
“좀, 뭐? 물건까지 다 구한 마당에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내 의견에 동의한다며?”
“동의하죠. 하지만...”
“뭘 하지만이야? 저번에도 말이야, 이미 정해진 거 가지고 얘기하다가 들킬 뻔한 거 잊었어? 안개 꼈으니까 밖으로 나올 사람도 없다고 하더니... 박미윤 걔는 왜 다시 온 거야?”
“뻔한 거 아니겠어요? 지 부모 그렇게 죽고, 그 뒤로 집 팔아보겠다고 한 거 누가 몰라요? 안 그래도 교통 불편하지, 몇 없는 마을 주민들은 일거수일투족 다 알려고 하지, 게다가 사람 죽어서 오래 방치된 집을 누가 사겠어요? 마침 도로 깔린다고 하니까, 지도 한몫 챙기려고 온 거죠.”
“어쨌거나 나쁜 일은 아니야. 우리 편이 하나 더 늘어나긴 한 거잖아. 그래도 이 얘기는 절대 하면 안 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을 떠나서 오래 지낸 사람은 믿을 게 못 되니까.”
현정의 말을 듣자마자 터지는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급하게 양손으로 입을 막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 들켜버릴 뻔했다.
외부인 타령하는 걸 보면 저 여자도 어쩔 수 없이 연못 마을 사람이다. 영연은 현정의 말을 듣고 드디어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표정에서 단단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현정은 그런 영연이 마음에 차지 않는지, 여러 번 강조했다. 흔들리지 마라, 이게 다 우리를 위한 거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보상금을 챙겨 마을 밖으로 나갈 생각하는 중인 무리를 말하는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상황이었다. 미윤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느낀다. 미친 거 아닌가? 보상금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연못을 더럽혔단 말인가?
두 사람의 짓이라는 확신이 들자 갑자기 엄동설한에 여름 옷차림으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몸이 덜덜 떨린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할 짓이 있고, 못 할 짓이 있는 법인데. 검은 봉투로 돌돌 감은 유리병인지 패트병인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으로 확신할 수 있는 건 연못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을 다 죽일 수 있단 말이 사실이라는 거다.
미친 여자다. 아니 미친 여자들이다. 연못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잘 살고 있던 물고기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나무와 풀은 무슨 죄란 말인가. 지나치게 무서운 상황을 마주하고 나니, 진실을 알고 있는 입술까지 벌벌 떨린다. 혀가 얼어붙고, 목에선 말 대신 바람 새는 소리만 연달아 이어진다.
아마 마을 사람들은 내가 연못 상태에 충격받았다고 생각하겠지. 굳이 따지면 연못의 상태보다 저들이 작정하고 연못을 더럽힌 것에 더 충격받았다. 그만큼 연못을 사랑해서? 웃기는 소리.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살아 있는 생물을 거침없이 죽였다는 게...
미윤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나도 모르게 현정과 영연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들의 짓이라고 말할 듯해서 일부러 주먹도 꽉 쥔다.
침착하게 잘 생각해보자. 만약 저들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연못 속 물고기들은 살았을까? 서울 여자들이 도로를 덮기 전, 아량을 베풀어서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줄까?
당연히 아니다. 이 마을을 없애고 도로를 깔겠다는 이유가 뭔가. 바로 돈을 벌기 위해서다. 물고기를 옮기는 일에도 돈이 든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고 싶어 하는 회사 입장에선 물고기를 살린다 같은 생각을 할 리가 없다. 누군가 용기 내서 그런 의견을 내더라도, 그런 거 하나씩 신경 쓰다가 회사 말아먹을 일 있냐고 욕이나 먹을 게 뻔하다.
연못 마을을 없애고 도로를 만들겠다는 의견에 찬성한 순간부터 나는 이미 물고기의 생명 따윈 관심 없는 사람이 된 거다. 실제로 죽은 물고기를 보기 전까지 생각한 적도 없었고.
현정의 말이 맞다. 나는 그와 영연처럼 이 마을에 도로가 생기길 바라고,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이건 내게 도움 되는 일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