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by 이홍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늘에서 무슨 뜻이라도 내린 건가? 이제 연못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될 테니까 빨리 떠나라는 뜻?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신 같은 건 믿지도 않았지만, 만약 신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고 대단한 뜻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알려주나? 악취 없이 깔끔하게 알려주겠지.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회관으로 돌아가더라도 냄새가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속옷까지 연못 썩은내가 스며들겠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발이 들썩거린다.

그때 누군가 미윤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허둥지둥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현정이다. 평소보다 걸음이 빠른 건 곁에 모셔야 하는 임순희 어르신이 안 계시기 때문일 거다.

저렇게 가면 또 현은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텐데. 지금은 연못 꼴에 놀란 상태지만, 정신 차리면 “너는 어떻게 어르신을 그대로 두고 자기 좋을 대로 달아날 수가 있냐”고 소리 지를 거다. 벌써부터 그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듣기 싫다.

허둥지둥 떠나는 현정의 마음도 이해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잠시라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현정이 비위가 약했던가?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와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영연의 옆얼굴이 보인다.

눈빛이 좋지 않다. 금방이라도 멀어지는 뒷덜미를 잡아채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듯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둘이 싸웠나? 싸울 일이 뭐가 있지?

느릿하게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던 미윤은 문득 지난 새벽에 봤던 장면을 떠올린다.


어느 새벽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이른 시간에 잠들었다가 일찍 눈을 뜨는 바람에 계속 뒤척거리던 중이었다. 이리 누워도 불편하고 저리 누워도 불편했다. 여름용 얇은 이불이 왜 이렇게까지 숨 막히게 나를 누르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가슴이 갑갑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엉키는 이불을 걷어차고 그대로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그때 잡힌 담배곽이 꽉 차 있었는지, 조금은 비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밖은 한산했다. 아직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이라 그런가, 공기가 좋긴 좋다. 이 마을에 정이라곤 쌀 한 톨만큼도 남아 있지 않지만, 좋은 공기와 풍경을 만나면 너그러워지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매일 알록달록 색칠한 아파트만 보다가 멀리 펼쳐진 산을 보니, 세상에 저렇게 푸르를 수 있을까, 신기하다.

길이 텅 비어 있긴 하지만, 굳이 마을 입구까지 걸어갔다. 담배에 그냥 불을 붙여도 볼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단 생각에 초조하기보단 차라리 처음부터 멀리 가는 편이 나았다.

걸음을 빨리할 필욘 없었다. 누굴 만나더라도 산책 중이라고 하면 된다. 따라오거나 억지로 붙잡진 않겠지? 혹시 모르니까 잠이 깨지 않아서 일부러 걸어다니는 중이라고 말해야겠다. 아침에 전화가 오기로 했는데, 그 전에 미리 정신 차리는 거라고.

전화 따위가 올 일은 없지만, 그렇게 말해야 붙잡지 않겠지. 어디서 오는 전화냐고 물으면 대충 둘러대면 된다. 예전에 홈쇼핑으로 샀던 옷이 불량인 걸 늦게 확인해서 판매처랑 싸우고 있다고 하면 되나? 떠오르는 예시가 그것뿐이다.

일부러 느리게 걸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졌다.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어떤 핑계를 대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어쩌면 그게 나에겐 다행이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현정과 영연이 보였다. 미윤은 인상부터 찡그렸다. 하필 저기에 있을 게 뭐란 말인가. 마을이 큰 편은 아니지만, 대화를 나눌 곳이라면 널리고 널렸는데.

먼저 인사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아니 어렵다고 해도 저들이 있는 공간에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잔뜩 뒤척인 상황이었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고 해도 이불 속에 오래 머물면 개운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숨막힐 정도로 찌는 더움은 아니지만, 묘하게 찜찜했다.

인사 정도야 괜찮겠지만, 뜬금없이 잔소리 같은 걸 들으면 표정관리가 힘들 듯했다. 그리고 연못 마을 사람들은 지켜야 할 선이라는 걸 모른다.

일 분도 되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대로 돌아서려고 했다. 현정과 영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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