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윤은 세 번째로 연못 앞을 떠난다. 누군가 붙잡고 시비를 걸 줄 알았는데, 다들 충격이 큰 탓인지 조용하다. 그런 틈이 생겼음에 감사하며 자리를 피한다.
처음엔 어느 누구도 알아선 안된다는 듯 살금살금 걷는다. 그러나 회관 앞에서 닫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헐떡거리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혈관이 펄떡펄떡 뛰는 느낌. 내겐 그 자리에서 도망칠 이유가 없다. 숨을 몰아쉬느라 명치가 뻐근해질 정도가 될 이유가 전혀 없단 말이다.
어떤 사실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죄가 되곤 한다. 현정과 영연의 짓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 이상, 입 다물고 있는 나도 공범인 걸까?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현정도 영연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도 당연히 모른다. 차분하게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엉켜버린 실타래가 머릿속에 들어앉은 듯하다. 가위로 잘라내야만 끝을 찾을 수 있는 실타래 사이로 빠져나오려던 생각이 뭉치고 구겨진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연못을 저렇게 만든 게 현정과 영연이라는 사실을 안다. 현정도, 영연도, 마을 사람들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입 다물고 있기엔 양심에 찔리냐고? 그럴 리가. 나는 알고 있다. 아니 나만 알고 있다. 그 말은 즉, 나만 무시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미윤은 입 다물기를 택한다. 말해봤자 좋을 건 없다. 서울에서 지내다가 이 마을로 오면서 그나마 편안한 점을 억지로 찾아보자면 사람이 적어서 조용하다는 점인데, 연못을 저렇게 만든 사람이 마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거다. 눈을 씻어가며 찾은 장점까지 없어져 버리는 거다.
일단 회관 안으로 들어가 물 한 잔 마셨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냉수를 따라 마셔도 시원한 감이 전혀 없다. 미적지근한 것도 짜증나는데, 방금 새까맣게 변한 연못을 봐서 그런지 입안이 미끌거리는 듯하고 맛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물 마실 때마다 찝찝하겠네. 시내에 나가서 사오면 좋은데, 여기까지 가져올 방법이 없다.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교통이 좋은 것도 아니다. 택시 기사들은 마을 이름만 들으면 질색하면서 손을 휘젓는다.
무엇보다도 물을 사오려면 그 양과 무게가 문제다. 어찌저찌 시간 맞춰서 버스 타고 다녀온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회관으로 옮기겠는가. 게다가 그런 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보면 시끄럽게 굴 게 뻔하다. 연못이 저렇게 됐다고 해서 이 마을에 식수가 없는 줄 아냐고.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자기들도 내심 불안해서 핑계 대가며 시내 나가서 식수를 받아올 거다. 벌써 발악하는 임순희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고, 아이고! 결국엔 이 사달이 났구나! 오래 살다 보니 별 꼴을 다 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를 왜 이렇게 오래 살게 만드셨습니까! 제가 보고 싶지도 않으신가요? 일찍 데려가서 이생에 못 다한 사랑 주며 곱게 품에 안을 수도 있는 것을... 이 마을은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
미윤은 고개를 돌린다. 회관 안으로 들어올 때 분명히 문을 닫았는데, 어르신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다 들린다. 그것도 또박또박. 발음이 거의 아나운서 수준이다. 저렇게 말할 수 있는 노인이었나?
누군가 마이크를 쥐어줬다고 해도 믿을 듯했다. 마을이 쩌렁쩌렁 울린다. 지금이 조용한 상태임을 알지만, 저건 커도 너무 크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는 노인네가 바로 귀 옆에서 떠드는 듯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가능한가?
사람이 어떤 순간에 내몰리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단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게 웃긴다. 연못이 새까맣게 변하고, 살던 물고기가 죽었다는 게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을 만큼 내몰릴 일이라는 건가?
임순희 어르신도 세상 참 편하게 살았구나. 하긴,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먹는 나이 하나로 이 마을에서 얼마나 으스대며 지냈는지 나 또한 잘 알았다. 아직 내 부모가 살아있던 시절, 내가 여기서 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임순희 어르신은 나이가 많았다.
멀리서 머리카락 하나라도 보이면 반드시 인사해야 한다고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어쩌다가 안 하면 집까지 찾아와서 내 부모를 혼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없이 고작 나이 하나 먹었다고 유세 떤다 생각했는데, 지금이라고 안 그런다는 보장은 없다.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았을 거다.
얼굴만 보면 알아서 어르신, 어르신 해가며 고개 꾸벅꾸벅 숙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잔뜩이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옆에 붙어 살아야 하는 현정이 온갖 수발 다 들고, 좋은 물건 생기면 어르신께 나누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이 어르신 집 창고를 서너 개는 채웠을 거다.
젊었을 때 고생해도, 저만한 나이까지 편안하게 살았으면 예전 고생은 다 잊는 법이다. 언제까지 연못 앞에서 신세타령하려나. 듣기 싫어.
미윤은 가방에 귀마개가 있는지 보기 위해 마시던 물잔을 싱크대 안으로 탁 내려두었다. 그러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둔탁한 소리가 난다.
뭐야? 가방을 향해 부엌을 나가려던 나는 싱크대 안을 살핀다. 컵 표면에 새겨진 이름이 벗겨질 정도로 오래 사용한 머그잔 아래에 금이 가고, 담겨 있던 물이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