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연히 현은이 게거품을 물며 반박할 거라 생각했다. 의외로 회관에 찾아온 건 침묵이다. 거리를 둔 채 앉은 사람들의 얼굴 위로 두려움이 드러난다. 심지어 현은의 얼굴에서도.
사실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거다. 임순희 어르신이 항상 말한 전염병과 연못의 관계. 다들 한 귀로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주 듣다 보니 머릿속에 박혔나. 아니면 두려움이 밀려오는 과정에서 하지 않았던 생각도 함께 쓸려왔나.
어르신은 항상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알려준 적은 없다. 전염병이 돌기 전에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어떤 경로로 전염되었는지, 병을 앓는 사람에게 어떤 특징이 나타났는지.
평소 사실이 아닐 거라고 여겼기에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나이 든 노인네를 잘 모셔야 한다는 식의 마음가짐으로 헛소리를 들어준 거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돈이 아무리 궁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다.
미윤은 크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연못이 갑자기 썩어버린 원인을 짐작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묘하게 속이 울렁거리는 건, 아무리 흘리고 흘려도 결국 머릿속에 박힐 정도로 들었던 어르신의 헛소리 때문이다.
만약 연못에 무슨 일이 생겨서 전염병이 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증상을 알아야 한다. 예전이나 의학 기술 발달도 덜 하고, 의사를 불러오기엔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드는 시골이라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차하면 이장인 희운을 닦달해서 의사를 모셔올 수도 있고, 환자를 시내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게 없다. 어르신에게 물어보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차라리 너무 길어서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좋았지, 지금 물어보면 비명만 지르거나 노인네 쓰러져서 죽는 꼴만 볼지도 모른다.
괜히 열 나는 거 같다. 평소보다 기운 없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몸이 쉽게 지친다. 가만히 생각하니 배도 아픈 듯하다. 이런 상태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을 거다. 솔직히 연못에서 풍기는 악취가 마을 내부에 진동하는데, 거기서 밥숟갈 들고 있기 싫다.
“속이 울렁거려. 머리도 아프고, 뭘 먹으면 토할 거 같고, 평소보다 숨쉬는 일도 답답하고 그래.”
석혁은 마치 미윤의 머릿속이라도 읽은 듯 비슷한 말을 쏟아낸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는 소리에 가깝지만, 회관에 모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칭얼거리는 소리 듣기 싫다는 티를 내지 않는다. 설마 이것도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돌아오는 반박이나 비난이 없으니 석혁은 어깨를 바르게 편다. 작은 것 하나에도 트집 잡던 현은까지 입 다물고 있으니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거, 나도 아쉽게 생각하기는 해. 나라고 이 마을 떠나고 싶겠어? 도로니 뭐니 할 때만 해도 그런 헛짓거리에 연못 마을을 떠나느니 도로 밑에 깔려 죽는 게 나은 거라고 믿었지. 근데 지금 연못에 문제가 생겼잖아.”
그 말에 영연은 지나치게 놀라 어깨를 떤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을 사람 모두가 드물게 석혁의 말에 집중하느라 그의 행동을 보지 못한다.
“잘 살았다고 할 수도 없는 인생이지만 적어도 아파 죽지는 않아야지... 갈 땐 편안해야지...”
그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머니에 꼬깃꼬깃하게 쑤셔 넣은 수건을 꺼내 한 손에 들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
그대로 나갈 줄 알았더니 비척거리며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는 소리가 들리고, 에이씨, 망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맥주도 없고... 우리 애들이 그러는데 지들 사는 데는 슈퍼가 가까워서 차 없이도 술 사러 갈 수 있다더만.”
널리고 널린 게 편의점이다. 얼마나 널렸으면 이런 시골 마을에서 갈 수 있는 유일한 시내에도 자리하고 있겠는가. 맥주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도 아쉬운지 냉장고 열고 닫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린다. 동시에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하늘이 연못을 버렸으니, 마을을 떠나야지... 돈이라도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