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by 이홍

연못을 버린 건 하늘이 아니라, 이 마을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떠나겠다는 사람만의 욕심일까? 미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힘을 합쳐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 생겼을 때, 어떠한 분쟁 없이 의견을 통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생각은 전부 같을 수 없고, 다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랬을 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소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과연 이 마을에 도로가 생기는 대신 보상금을 받고 여기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소수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수는 이 마을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늙은이들이 똘똘 뭉쳐서 마을 떠나겠다는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윽박지르고, 말이라도 꺼내려고 하면 “저런 것들이 마을 망친다, 니들이 그러고도 연못 마을 사람이냐”며 난리가 난다.

대화해야만 풀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유지하기 원하는 노인네들은 귀부터 꽉꽉 막고 아예 무시하기 바쁘니, 당연히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연못에 뭘 뿌렸는지 몰라도, 그건 현정과 영연 나름의 대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들도 나이라면 어디서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먹었으나 연못 마을 안에선 찬물 한 잔도 대접받지 못하는 신세다.

무시도 엄청나게 당했을 거다. 서울 여자들 왔을 때도 무시하던데, 평소엔 어땠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한시라도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다른 일 때문에 기분 나빠도 눈에 보이면 갈구고, 화내고, 성질 부렸을 게 뻔하다.

마을 없애고 도로 만드는 데 의견을 보태?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연히 무시됐을 거다. 애초에 말 한번 꺼내볼 기회도 없었겠지. 있었다고 해도, 그건 의견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무조건 나이 많은 내가 맞고, 나이 어린 네가 틀린 거란 확신이 있고,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말하는 걸 들어주는 척하는 거다.

이런 상황을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니까 애써 말하고 싶단 생각도 들지 않았을 거다. 솔직히 한 마디라도 들어줬으면 연못이 썩어나갈 짓을 했을까? 미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일은 현정과 영연이 나름대로 고민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내본 거다.

의견을 냈다기엔 행동이 과하지 않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말을 들어주지 않은 마을 노인네들의 고집 때문이다. 들어주기는커녕 입술 벙끗도 못 하게 하는데,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알려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미윤은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걸 느낀다. 사실 연못이 저렇게 된 이유가 현정과 영연의 탓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영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생각의 방향을 바꾸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건 현정과 영연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이 말할 수 없도록 입을 막은 늙은이들의 잘못이다. 그러니 그들이 연못에 무슨 짓을 했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석혁은 맥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계속 냉장고 문을 여닫는다. 평소였다면 회관에 앉아있던 사람 중 누구라도 전기세 나오니까 그만 하라고 말하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희운은 자신이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아무리 그래도... 마을을 떠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다른 곳도 아니고 연못 마을이라고요. 이대로 떠나면 다 서울에서 오는 그 사람들 좋은 일만 하는 건데...”

맥없는 말을 누군가 이어주기를 바라는 듯 모여 앉은 사람들을 훑어본다. 이쯤이면 현은이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장의 말에 맞장구를 쳐야 한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슬쩍 쳐다보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고민이 많은 표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현은이 뭐라고 말할 줄 알았는지 가만히 있는 그를 힐끔거리기 바쁘다.

보아하니 자기도 뭐라고 얘기해야 할 듯한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할 말을 찾은 듯 입을 여는데 조용한 공간을 가르는 건 의외의 소리다.

집에 홀로 남은 임순희 어르신이 비명을 지르셨다. 긴 한탄이 아닌 짧고 굵은 비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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