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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27 금요일, 뒷부분 추가.

by 이홍

뚜벅뚜벅 걷는 속도가 빨라서 따라가기 버겁다. 갑자기 임순희 어르신의 안부가 걱정된 나머지 엉덩이에 불붙은 사람처럼 후다닥거리는 모습이 그저 웃기다. 뒤늦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겠나.

우리가 발견한 어르신은 의식이 없으셨다. 아마도 회관에 오기 전 현정이 곱게 덮어줬을 이불은 가슴까지만 올라와 있었다. 입으신 옷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늘어난 여름용 내복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시고, 최근 연못 일도 그렇지만, 도로를 짓는단 얘기가 나올 때부터 현정이 어르신 곁을 하루종일 지킬 수 없었기에 침대 대신 바닥에 두터운 이불을 깔고 누워 계셨다. 오래 사용해서 푹 꺼진 침대 매트리스 위엔 온갖 물건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구겨진 채 마른 어르신의 양말이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구급대원과 경찰은 회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어르신 댁으로 불러 모은다. 쓰러진 사람을 이렇게 보여줘도 되나?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는다. 구급대원과 경찰도 마찬가지다. 임순희 어르신은 정확한 나이를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사셨다. 어제 저녁에 자겠다며 눈 감아서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

어르신이 크게 비명 지르는 걸 듣고 갔다 말했지만, 다들 그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다. 혼자 일어서다가 넘어졌다고 하기엔 움직인 흔적도 없고 넘어진 흔적도 없다. 누워있는 자리 그대로라는 건 어르신을 매일 돌본 현정의 말보다 현정에게 부탁 받은 물건이 있어서 시내 나갔다 오는 김에 사왔다고 전달해 준 영연의 말을 더 믿는 표정이다. 하지만 현정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어쩌면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구급대원과 경찰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연못이 썩었다는 소식이 밖으로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못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한 말은 어르신의 안부가 아닌 이 악취의 원인이었다.

이제 시내까지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다. 어르신이 평소 연못을 얼마나 아꼈는지, 연못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전염병에 대해 얼마나 떠들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악취만 맡아도 어르신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셨을지 알 수 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사가 탄 차가 연못 마을 안쪽으로 들어온다. 우선 쓰러진 환자를 발견하면 병원으로 옮기는 게 우선이지만, 어르신의 경우는 다르다. 일단 시내 병원까지 가는 길이 좋지 않다. 워낙 고령인 환자는 함부로 이동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서울처럼 큰 병원이 많은 경우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지만, 여긴 그런 게 없다. 찾는 환자 적고 서로 얼굴을 다 알아서 주민등록증 확인도 안 하고, 대리처방도 해주는 시내 병원 하나가 전부다.

의사가 퇴근할 시간은 아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아직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의사에게선 막걸리 냄새가 난다.

“또 술 드셨어요? 그러다가 몸 상하신다니까.”

“놔둬. 어차피 이제 죽을 일밖에 안 남았어.”

의사에게 술 마셨냐고 묻는 사람은 경찰이다. 의사는 자기가 한 행동엔 한 치의 잘못도 없다는 듯 행동한다. 어르신 댁 앞에 대충 세워둔 의사의 차는 바퀴가 한껏 비뚤어져 있다.


혹시 모른다. 어르신이 비명을 지르자마자 마을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였다면, 그는 아직도 살아있을 거다, 아닌가, 그때였어도 늦었으려나.

미윤은 영연이 바닥에 엎어져 현정의 집을 향해 고개 숙이는 동안 어르신 댁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막걸리 냄새가 나도록 취한 의사가 직접 차를 몰고 와서 쓰러진 어르신을 돌보는 동안 소방대원과 경찰은 연못이 어쩌다 저렇게 됐느냐에 대해 이장인 희운에게 물었다.

그들은 한참 그런 대화를 나눴다. 어느 순간 어르신을 보던 의사도 일어나서 그 대화에 꼈다. 어르신의 상태는 괜찮다고 했다. 짧은 순간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잠시 쓰러진 거라고.

그게 괜찮은 건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다. 술 마셨어도 의사는 의사고, 의사의 말을 들은 소방대원과 경찰도 괜찮다고 했으니 믿을 수밖에.

문제는 쓰러진 어르신을 누가 돌보느냐 였다. 어르신이 무사하시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현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회관에서 한바탕 소리 지르고 신세 한탄 줄줄 했는데, 어르신이랑 함께 있으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미윤은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 또한 각자 생각하는 바가 있는 눈치였다. 영연은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지금 누군가를 돌볼 상황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될 상황이었다.

마을 남자들은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 관심도 주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자기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환자 돌보고 그러는 거 여자가 해야지, 남자는 꼼꼼하지 못해서 안 하느니만 못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서 있는 자리에서 펄쩍 뛴 현은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당장 내가 쓰러져 죽겠는데 누가 누굴 돌보냐.

연못 때문에 놀라긴 했어도 그나마 혈색이 가장 나은 그는 어르신 돌보는 일을 할 수 없다며 펄쩍 뛰었다. 누구보다도 임순희 어르신을 아끼는 척하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엔 외면하는 게 이 마을 사람들 특징이던가.

남은 건 나 하나였고, 그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환자 돌보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렇지만 직접 시키기는 싫어서 눈치만 보는데, 그 꼴에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돌보겠다고 말했더니 다들 혼자서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그게 끝이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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