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by 이홍

얼핏 소름 돋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미윤이 듣기엔 그렇지 못하다. 어차피 영연은 연못 마을을 떠나고 싶어 했다.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간절한 욕망은 겉으로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허락만 됐다면, 하루종일 마을 길 가운데 앉아서 모두 이 마을을 떠나자는 일인 시위라도 하고 싶었을 심정일 거다.

아니지. 허락이 됐어도 못 했겠다. 판을 깔아줘도 못 봤다는 듯 피하기 급한 사람이다. 직접 말할 용기도 없고, 속은 타고, 그런 와중에 남편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연못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할 수가 있냐며 화를 있는 대로 내고 따로 보상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봤다는데.

나름대로 속 터질 상황이 맞긴 하다. 현정은 영연의 꽉 막힌 길에 물꼬를 터준 사람이고,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백번 천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겠지. 그래서 토하는 김에 절도 하나.

잘한 일이라고 계속 중얼거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겁을 먹었기 때문일 거다. 스스로를 달래는 거겠지. 아무도 달래주지 않으니까. 연못이 그렇게 된 상황에 대해 아는 건 현정과 자신뿐인데, 현정에게 넘실거리는 불안을 달래주길 바랄 수나 있을까? 저번에 보니까 자기 뜻에 따라야 한다고 윽박지르느라 바쁘던데.

그가 하는 혼잣말을 처음 들었을 땐 별 생각 없었는데, 이 상황을 곱씹다보니 점점 소름끼친다. 분명 더운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히는 느낌.

어쨌거나 미윤은 한시라도 이 자리에서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을 안을 가득 덮은 악취에 비하면 영연이 쏟아낸 토사물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별 거 아니다. 하지만 그 둘이 합해진다면?

말 그대로 돌아버릴 듯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는 게 딱 이런 상황인가.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면 이런 느낌일 거다. 가끔 악취 때문에 쓰러진 사람이 있단 뉴스를 봤는데, 그깟 냄새가 심해봤자 얼마나 심하겠냐고 무시했었다.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도 있는 법이다.

썩은 연못의 매캐함에 눈이 매워도 숨은 쉬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앓는 소리가 난다.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두리번거리며 소리 나는 방향을 찾지 않아도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다 회관에 모여 있다. 밖에 나와 있는 나와 영연, 그리고 임순희 어르신만 빼면.

우는 듯하기도 하고, 앓는 듯하기도 하고... 하여간 딱 들어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빨리 가봐야 하는 건 알겠는데, 혼자는 싫다. 말했다시피 나는 누군가 죽음에 가까워진 상황이 된다면 그 옆에 혼자 남은 사람이고 싶지 않다.

미윤은 잔뜩 몸을 뒤로 뺀 채 발을 뻗어 엎어진 영연을 툭툭 쳤다. 어쩔 수 없다. 이 사람이라도 데리고 가야 한다. 하지만 걱정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따라오고 있는 걸 몰라서 놀라면 어떡하지? 그대로 쓰러져 버리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어차피 난 퇴사할 때부터 잘 다듬어진 도로 옆으로 빠져나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인생이다. 설상가상 타고 있는 차는 푹 퍼져버렸다.

완전히 무너지리라는 법은 없는지, 내 처지를 도와줄 수 있는 고급 차를 발견했다. 이제 다 될 줄 알았더니... 이 더운 여름에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더러운 냄새나 맡고 있다니.

순간 미윤은 치미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힘주어 영연을 발로 민다. 그의 상체가 휘청거린다. 엄청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거나 옆에 누가 있단 생각 못했다가 놀라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를 줄 알았더니...

정신을 어디에 빼두고 있는진 몰라도, 자신을 툭툭 친 상대를 보는 대신 아무 일 없다는 듯 임순희 어르신 댁으로 걸어간다. 마치 머릿속에 명령어를 입력해두면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꼭 명령을 행하는 로봇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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