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y 이홍

성공했단다. 그것도 엄청나게. 미윤은 이제 사장이 된 전 동료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열고 싶다던 카페가 개인 카페 아니고 프랜차이즈였나? 이름을 날리는 브랜드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요즘 새로 생기는 아파트 근처엔 카페가 많다. 적당한 공간 골라서 브랜드 있는 걸로 카페 내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는 벌겠지. 제대로 아는 건 아니지만, 크게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남의 일이다. 자세하게 알아서 좋을 게 뭐 있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더 물어보지 않았고, 연락이 올 거란 생각도 못했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망할 줄 알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이 바닥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까? 다시 연락이 온다면 이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했다.

전 동료는 카페를 열겠다는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 내가 비웃는 반응을 보여서 솔직히 기분 상했다고 말했다. 미윤은 인상을 가볍게 찡그렸다가 웃었다.

“그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어. 처음엔 정말 장사가 어려웠거든. 네 반응이 제일 많이 생각나더라. 다른 카페는 문만 열어놓아도 손님이 줄줄 들어오는데 우리 가게만 너무 한산한 거야.”

미윤은 탕비실 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통화가 길게 늘어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다른 때였다면 미안한데 바빠서 나중에 통화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 다음 굳이 연락하지 않았을 거다. 하나씩 맞장구치는 것도 귀찮고, 정말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듣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잔뜩 들은 상황이었다. 일하기 싫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슴을 가득 채우고 머릿속도 가득 채웠다. 때마침 연락이 온 거다. 내가 먼저 일하기 싫은 마음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저쪽에서 때마침 연락한 거다.

사회머리, 일머리 기르지 못하던 시절에나 할 법한 합리화로 쿵쿵 뛰는 심장을 달랬다. 상사 잔소리 듣기 싫다고 도망쳐? 그래서 요즘 젊은 것들은 써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던 나의 과거는 잠시 접어두었다.

밖에서도 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괜히 무슨 똥물 튀길 줄 알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겠나. 목마르면 편의점에서 물을 사서 마시고 말지.

“정말 망할 줄 알았어. 나는 돈이 너무 아쉬웠다? 내가 카페 차리고 싶어서 알아보느라 든 비용부터 바리스타 자격증 따려고 애쓸 때 사 먹었던 초콜릿 값까지 아까운 거 있지? 사람이 쪼들리니까 그렇게 되더라. 안 그래도 나 여기 상가에 들어올 때 부동산에서 그랬거든. 이 근방으로 사람이 많이 다니기는 한데 잘 되는 가게가 있고, 아닌 가게가 있다. 카페 같은 거 너무 빨리 망하니까 차라리 다른 쪽 알아보는 거 어떠냐고.”

“어어.”

“참 미련하지, 그런 말을 부동산에서 들었으면 눈치껏 관두라는 신호를 준 걸 텐데. 아, 솔직히 그런 거 알아서 더 마음이 불타기도 했어. 알잖아, 나 하지 말라고 하면 끝까지 해서 이기고 싶어 하는 거. 반골기질 있잖아.”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원래 사람이 자기 좋은 부분만 확대해서 기억한다고 하더니. 회사 다닐 땐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이 있으면 죽어도 안 해서 얼마나 짜증났는데. 주변 사람들 바빠서 죽어가는데도 신경 안 쓰고. 가서 하나라도 거들 수 있으면서.

애초에 업무하는데 하지 말라는 소릴 들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결국 그걸 달래서 하게 시키는 건 내 몫이었다. 이전 상사는 동료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정말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서로 대화하는 걸 피했다.

그 때문에 힘든 건 나였다. 그래도 미윤 씨가 가서 잘 달래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무슨 지들 시다바리인지, 뭔지... 아니 그냥 사이에 껴서 등 터졌다는 게 제일 어울리는 표현이겠다. 그래놓고 뭐? 하지 말라고 하면 끝까지 해서 이기고 싶어?

그건 하지 말란 말에 승부욕이 불탄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카페를 생각하고 거기에 투자한 돈을 생각하니까 아쉬워서 남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거지. 반골기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러다가 어떤 유튜버가 왔는데, 나는 그 사람이 유튜버인지도 몰랐다? 자기 말로는 팔로워가 십 만이 넘는다나? 요즘 다 그러니? 내가 유튜브를 잘 안 봐서. 어쨌거나 그 사람이 우리 가게에 와서 진열된 쿠키를 같이 주문했다? 그런데 또 손님이 잘 안 오니까 와준 사람한테 고맙고 감사하고 그래서 서비스로 몇 개 더 줬어. 쿠키는 남으면 버리니까.”

“그렇구나.”

“근데 그 사람이 쿠키 하나 먹어보더니 나한테 와서 촬영해도 괜찮겠냐는 거야. 나는 상관 없었지. 손님이 있었으면 손님 불편해하셔서 어렵다고 했을 텐데...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다 신이 도운 거 같아.”

“너 종교 있어?”

“아니. 그런 거 말고, 저기 왜, 뭐가 너무 안 되면 사람이 아무거나 빌게 되잖아. 그럴 때 말하는 신 말이야. 내가 종교가 어디 있니.”

그 말이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꺄르륵 웃은 그는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대충 요약해보니 우연히 가게에 들어온 유튜버의 입에 맞았던 쿠키 덕분에 구독자들이 찾아오고, SNS에서도 유명세를 타서 손님이 매일 줄을 선다, 그때 카페 말고 다른 거 해보라고 했던 부동산 쪽에서 자기 말 들어서 가게 안 열었으면 큰일 날 뻔 했겠네요, 어쩌고 저쩌고. 퇴근해서 힘들어도 꼭 베이킹 수업 다니고 그랬는데 너무 기쁘다, 쫑알쫑알.

미윤은 귓불에 스마트폰을 대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프랜차이즈가 아닌데 성공했다고?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럴 때가 있지. 유튜버가 와서 인기 끌 거였으면 그 전에 진작 끌었겠지. 그 유튜버의 십 만이라는 팔로워가 하나씩 다 오고 나면 끝일 텐데.

하루 매출이 얼마나 나간다는 자세한 정보도 아니고 유튜버 얘기하면서 좋아하는 걸 듣자니 기분이 애매모호해졌다. 유튜버가 와서 좋아졌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엔? 손님이 손님을 부르는 법이다. 지금은 다른 손님들이 줄 선 걸 보고 궁금해서 기웃거리는 사람이 조금 있을 뿐이다. 아주 잠깐, 반짝하게 인기를 끄는 것도 좋아서 이렇게 들떠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손님 금방 떨어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관뒀다. 질투한다고 혼자 콧방귀를 낄 게 뻔했다. 같은 말도 귀신같이 꼬아 듣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회사 다닐 때 아침마다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긴 했다. 처음엔 어제 잠 못 잤냐,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는 얼버무리면서 말하기를 피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피곤하다고, 피곤하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출근하는 직장인이 다 피곤하지, 안 피곤한 게 어디 있어.

유난 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퇴근하고 뭐, 자격증이네 뭐네 그런 거 학원 다녀서 그랬구나? 별 것도 아닌데 왜 숨겼지. 혼자서 또 그러는 스스로를 얼마나 칭찬했을 거야?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았다. 출근한 게 두 시간 전인데 체감상으론 지금 퇴근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출근한 지 두 시간 지난 게 아니라 이십 시간 지난 거 같은 피로감은 뭘까.

스마트폰은 금방 뜨거워졌다. 요즘은 기계를 오래 쓰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자주 바꾸라고 만들어서 이거 얼마 사용 안 했는데 자꾸 달아오른다. 문자를 조금만 주고 받아도 손바닥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귓불 밑에서 뜨거운 목소리가 열을 뿜었다. 귀에 대고 입김을 뿜는 듯했다. 어우, 짜증나. 그게 아니어도 엉덩이가 충분히 들썩거렸다. 평생 여기서 안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게 엊그제인데, 이젠 이 분도 못 넘기겠다.

오래 자리 비워두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서 자리에 없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상사한테 잔소리 좀 들었다고 탕비실에 눌러 앉아있는 건 뭣 모르는 신입도 안 하는 짓이다.

적당히 둘러대고 전화를 끊을 생각이었다.

“어머!”

미윤은 귓불에 대고 있던 스마트폰을 위로 올렸다가 곧바로 떼어냈다. 누군가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양인데 그걸 전화에 대고 외쳤으니. 가까이 대고 있었으면 한동안 귀가 아팠을 거다.

“뭐야?”

“어? 어머, 미안해 미윤아. 내가 너무 반가워서 소리를 질렀네. 어쨌든 놀러오라고 연락했어. 카페 주소는 톡으로 남겨줄게. 너 보면 너무 반가울 거 같고 그래. 사람 없는 시간대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와. 넌 언제든 환영이니까. 그럼 끊을게!”

“어어, 알았어.”

전화가 뚝 끊어지자 기운이 쭉 빠졌다. 차라리 일하는 게 속 편하겠다. 일 초라도 더 앉아 있으면 속이 콱 막힐 듯해서 얼른 탕비실을 빠져나왔다.


양손에 텀블러를 들고 나와서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와 앞자리에서 힐끔 눈치 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러고 보니 커피랑 물을 가져오겠다고 들어가서 그냥 쓸데없는 소리만 듣다가 나왔네.

짜증이 두 배로 났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앉아서 일하는 게 전부지. 다시 들어갔다 오기엔 싫고 안 봐도 될 눈치가 보였다.

사무실은 또 왜 이렇게 건조한지, 목이 갈라질 듯 말라붙었다. 손톱으로 목 주위를 벅벅 긁고 싶은 충동을 막아준 건 뒤에서 들어오던 후배였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오늘은 점심 지나서 온다고 하더니? 물어보고 싶었지만, 미윤은 그냥 웃고 말았다. 고개를 까딱하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고개를 숙여보니 책상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있었다.

플라스틱 컵 표면에 물이 맺혔다. 앞에 보이는 휴지를 뽑아 대충 슥슥 닦은 다음 커피를 쭈욱 빨았다. 얼음이 적당하게 녹으면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커피가 몸으로 들어오자 그나마 짜증이 가시는 듯했다.

“오늘은 점심 지나서 온다고 하더니?”

“아, 그럴 줄 알았는데요. 예상보다 빨리 끝나서요. 거기 거래처에 직원 바꾼다고 하더니 정말 후다닥이던데요?”

“맞아, 거긴 너무 늦어.”

“그러니까요. 전 거기 가서 몇 시간은 버리겠구나... 생각했죠. 그러니까 좀 억울한 거 있잖아요. 늦은 건 그쪽인데, 매번 나만 야근하고. 화나서 그냥 다른 일거리도 가져갔거든요? 어차피 시간 밀릴 거 그냥 보내지 말고 일이라도 하자, 그럼 퇴근도 일찍 할 수 있으니까?”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지잉 울렸다. 입으로는 커피 마시고, 귀로는 들어온 후배의 말을 들으며 눈으로는 밝게 불이 들어온 액정을 확인했다.

무뚝뚝하게 이름 세 글자. 전 동료가 보낸 톡. 정말로 보냈네? 빈 말인 줄 알았더니. 또 안 가려면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저쪽도 이 바닥에서 일했으니까 상황 잘 알 텐데, 바쁘다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힐 거고...

미윤은 받은 톡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지웠다. 출근한 지 막 두 시간 오 분이 지날 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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