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by 이홍

솔직히 말하면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이 거의 없어서 퇴근을 일찍 하는 날에도 전 동료의 카페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만일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었다.

성공했다는 말은 허세라고 믿었는데 사실이면 어떡하지? 남이 성공하는 건 참 좋은 일이고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그건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좋은 거였다. 예전 직장 동료가 가게를 차려서 잘된 일이 내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게도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에 대해 도와주지 않았다. 모처럼 주말인데 집에서 뒹굴기만 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거리라도 나가야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게 문제였다.

해가 쨍쨍했지만 아주 뜨거운 날씨는 아니었다. 미윤은 손날을 눈썹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떠 있는 구름이 너무나 그림 같아서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느릿느릿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얼음컵 하나에 헤이즐넛 커피를 담은 다음 밖으로 나왔다. 해가 내리쬐는 방향 때문인지 편의점 앞 의자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게다가 맞은편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담배 냄새가 술술 불어오는 중이었다.

내가 피우지 않을 때 담배 냄새를 맡는 일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 공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횡단보도 하나 건너서 골목을 돌면 바로 공원이 나왔다.

미윤이 이 지역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공원이다. 주변 아파트가 세워졌을 때 함께 지은 거라면, 지금 이 공원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아이들보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의 나이가 훨씬 더 많은 거다.

기왕 나왔으니까 거기에 잠시 앉아 있을까? 굵고 튼튼한 나무는 울창하게 자라서 여름에도 그늘보다 해가 비추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클락션을 빵빵 울리는 차가 한 대 섰다. 뭐야? 눈을 흘기며 쳐다보는데 운전석 문이 벌컥 열렸다. 전 동료였다.

차의 주인이 그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마시던 커피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이름만 대면 알아준다는 외제차를 몰고 나타난 그는 손벽을 짝짝 치며 반가워했다.

“어머, 이게 얼마만이야!”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그가 끌고 온 외제차의 존재가 더 신경 쓰였다. 미윤은 플라스틱으로 된 얼음컵을 조물조물 만지면서 은근히 등 뒤로 숨겼다. 하지만 입에서 나는 헤이즐넛 커피 특유의 단 냄새까진 숨길 수 없었다.

“얘는. 내가 우리 가게 와보라고 말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안 와봐? 바빴어?”

“그렇지, 뭘.”

하나도 바쁘지 않았지만, 주말이 끝나고 출근해서도 바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도 기분 나쁘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상사와 사이 좋지 않다는 티를 내느라 내 등쌀을 터지게 만들었던 그 여자가 아닌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얼굴이 핀 상태였다. 피로에 찌든 눈 주위가 어둡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는데, 지금은 물 뿌려서 다리미로 쫙쫙 밀어놓은 듯 빳빳했다. 뻑뻑한 눈을 자주 비벼대서 관자놀이 방향으로 자글자글하게 잡힌 주름도 이젠 늘 미소를 짓고 다니던 사람이 가진 세월 같았다.


미윤은 물을 마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계속 그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바쁘다는 핑계를 댔으면 그걸 잘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전 동료가 카페를 차린 곳은 새로 지어진 아파트 앞 상가나 당 떨어진 직장인이 귀신처럼 와서 급하게 찾는 디저트를 내놓을 수 있도록 회사 근처에 차린 것도 아니었다.

무려 요즘 젊은 애들이 찾는다는 핫플레이스, 평일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장사가 잘 되는 가게는 오전에 문 열어서 그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는다는 거기.

외제차는 달릴 때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부드럽게 나가면 앞뒤에 있는 차들이 간격을 유지하며 달렸다. 끼어들기도 수월했다. 그렇게 방해물 없이 도착한 카페엔 사람이 잔뜩 줄 서 있었다.

안엔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줬다. 이미 솔드 아웃 되었다는 종이가 붙은 진열장엔 쿠키 모형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테이블마다 사람이 가득했다. 테이블을 이용하려면 꼭 일 인당 음료 하나 이상과 디저트를 함께 주문해야 한다는 안내가 붙어있음에도 그랬다.

그날 그 풍경을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게 안으로 들어간 동료는 여러가지 맛의 쿠키를 챙겨 내 손에 쥐어주었다.

“커피는 이미 마신 거 같아서 준비 안 했는데, 포장이라도 해줄까?” 그 말에 기분이 확 상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쿠키를 내팽개쳤다. 먹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멀쩡하게 생긴 먹을 걸 버리면 아까우니까 회사에 가져가야겠다.

주말이 끝나고 내 자리로 모여든 직원들은 마치 말을 맞춘 듯 똑같이 물었다. 여기 엄청 유명한 곳인데 어떻게 사오셨어요? 오픈런해도 못 살 때가 많다던데. 너무 맛있다, 이래서 인기가 많은가보다. 다음에 가봐야겠다. 등등.

나는 그 모든 말들이 나의 자존심을 툭툭 건드리는 말로 들렸다. 외제차, 거기에서 내리던 환한 얼굴의 전 동료, 끝이 보이지 않도록 길게 늘어선 줄, 솔드 아웃이 붙어 있는 진열대. 그리고 마시다 만 헤이즐넛 커피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나.

지금 생각하면 그런 삶은 흔하지 않으니 너는 네 할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신이 보여준 걸지도 모른다. 다른 생각이라면 하지 말아라, 사람마다 각자 길이 다른 법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신의 뜻이 어떤 것인지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정년퇴직하겠다는 내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할 거다. 어찌됐든 말아먹은 건 당신이 아니냐고. 미윤은 분통이 터졌다. 그 말에 반박하고 싶은데, 무어라 반박해야 할지 아직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 여기서 장사하면 잘 될 거라고 했다. 자리로 보면 안 될 수가 없는 자리라며 확신하는 사람도 많았다.

새로 생긴 아파트에 입주가 늦어진 점이나 바로 근처에 대형 프랜차이즈와 저가 커피 가게가 들어온다는 건 차마 예상하지도 못한 변수였다.

미분양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건설사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데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적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 거라고 자신한다.

자신하기만 하면 뭐하나, 결국 적자만 봤는데. 통장을 아무리 긁어도 돈 나올 구석이 없었다. 가게 문을 열고 있으면 열고 있을수록 손해였다. 하루종일 커피 한 번 내리지 못하고 기계를 정리하는 일도 잦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게 화가 나고, 이런 선택을 한 나에게 화가 났다. 그 화는 곧 장사를 잘하고 있는 전 동료에게 향했다.

매일 SNS를 보며 전 동료 가게에 대한 안 좋은 리뷰만 찾아보았다. 어차피 우리 가게는 찾는 손님도 없어서 폰만 만져도 될 정도였다. 거꾸로 생각해도 그랬다. 대형 프랜차이즈 아니면 저가 커피 브랜드를 이용하지, 맛도 보장되지 않고 손님도 없는 개인 카페를 누가 이용하겠는가.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온단 말도 있는데 이대로 포기하긴 아까웠다. 나는 버텼다.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끌어 모아 매달 버티고 버텼다. 미윤은 결국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쥐구멍이 아니라 틈도 보이지 않게 빽빽하게 자란 공원의 나무 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눈앞이 저절로 캄캄해졌다. 더 이상 손 벌릴 데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사방에 남겨둔 빚만 보였다. 물론 미윤을 좋게 보는 누군가는 돌려 받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자니 무슨 조건이 이렇게 많은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마지막으로 주거래 은행에 희망을 걸었지만 대출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돌아온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명치를 쾅쾅 쳤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숨통까지 꽉 막히는 느낌.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받은 뒤였다.

버스 기사가 소리친 이후, 침묵만이 가득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등을 뒤로 확 기대는데 앞으로 잘 가던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옆으로 꺾었다.

미윤은 창밖을 힐끔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푸른 나무만 휙휙 지나갔었다. 어느 순간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게 보이고, 대형 마트가 보였다. 처음 보는 곳이었다.

지어진 지 오래된 티가 나는 간판 아래로 검은색 스피커가 매달려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반복해서 부르는 과일 값은 서울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저렴했다.

미윤은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분명 익숙한 길인데, 처음 보는 가게도 많았다. 학생도 많고, 아이들도 많았다. 터미널에 가까워질수록 사람 수는 더 많아졌다.

예전엔 그저 차 지나가는 길이었던 공간에 장이 크게 열려 있었다. 서울에서도 자주 먹는 길거리 음식을 든 아줌마들이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양쪽 어깨 위에 박스를 올린 남자는 지나가겠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시장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정말 맞나? 혹시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어린 시절, 매니큐어는 어른만 바르는 거라서 너는 안 된다고, 저리 가라고 야박하게 쫓아내던 화장품 가게 사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릴 때도 봤던 문 위에 달린 종이 달랑달랑거렸다.

아직도 소리가 날까? 속도는 줄였지만, 사람이 걸어가는 것보다 빠른 버스는 대부분의 풍경을 휙휙 지나가게 했다.

다시는 이 지역에 오지 않으리라, 이 방향으론 실수라도 오줌 한 방울 튀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에 와 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매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남들과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인사로 나를 맞이해주는 상황이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악착같이 공부해서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조그맣고 별 볼 일 없는 마을도 시내 인근이라며 기숙사 신청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괜히 새벽까지 코피 흘리고, 밤잠 줄여가며 공부한 게 아니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샤워해도 시골 촌뜨기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싫었다.

서울로 대학을 갈 수 있게 되면서 미윤은 주먹을 꽉 쥐고 다짐했다. 이쪽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사람 사는 일이 다 뜻대로 되는 게 아니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곤 하지만 설마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기, 연못 마을 근처 시내에 오게 된다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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