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서 나와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려는 사람은 별로 없고, 밖으로 나가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정거장 뒤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택시 기사들은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제 곧 점심시간이다. 터미널에 사람이 가장 없을 시간. 여긴 그랬다. 서울에서 여기로 오는 버스의 간격을 따지면, 다음 버스는 오후 두 시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시내라고 하지만 사는 인구도 적고, 시내 앞 공간도 작고, 마을 버스만 타도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다. 시내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택시를 탈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내에서 택시 하고 사는 사람들은 좋은 집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연못 마을에서 살 때 맞은편 집에 살던 아저씨가 택시 운전을 하셨던 거 같은데, 그 사람은 혀가 마르도록 말했다. 집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 있고, 거기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사실 자기는 농사하기 싫어서 택시 한다고.
미윤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먼 길 오는 사람치곤 가방이 상당히 가벼웠다. 여기 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오래 머물 생각 따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 정류장 맨 앞에 서 있는 택시로 다가가자, 정류장 뒤에서 담배 피우고 있던 남자 하나가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쿡 찔렀다.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적당히 모르는 척 하려는 눈치였는지 느닷없이 팔뚝이 찔린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입술 사이로 하얀 연기가 무겁게 퍼져나갔다.
“내가 늘 말했지, 자네는 그 눈치가 문제야. 눈치가.”
“뭐가?”
“아이, 됐어, 됐어. 나는 저 나가는 김에 해장국이나 먹고 올 테니까, 자네들은 요 앞에 가서 양념 불고기 정식 먹어. 그거 진짜로 맛있다니까.”
미윤이 서 있는 방향으로 오는 걸음걸이부터 벌써 짜증이 가득했다. 그는 어디 갈 거냐고 물었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얗게 백태가 낀 혓바닥과 누렇게 변색된 치아가 보였다.
“시내 돌아다닐 거면 요쪽, 요 앞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버스 정류장 보이니까 거기로 가시지...”
“연못 마을에 가려고 하는데요.”
“연못 마을? 연못 마을이 어디야.”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리던 남자는 드디어 떠올랐다는 듯 질색했다.
“아이, 거기는 너무 멀어. 거기도 가는 버스 있는데...”
“배차 간격이 길어서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아니,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좀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툭하면 빠른 것만 찾아서 문제야...”
택시 기사는 미윤을 힐끔거렸다. “요즘 사람은 아닌 거 같지만...” 덧붙이는 말에 울컥 화가 차올랐으나 여기서 성질을 내면 불리한 건 나였다.
시내에서 연못 마을을 향해 가는 배차 간격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그렇다고 걸어가기엔 멀기도 하고, 길 자체가 험하기도 했다. 오로지 차가 다니는 도로만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치어 죽기 딱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서 가버리겠지?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는 택시 기사의 표정. 연못 마을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뱃속에서 울컥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누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잠시만 방심하면 그대로 소리 질러버릴까봐 입술을 앙 다물었다. 말로 하는 대신 검지와 중지를 펼쳐 숫자 이를 만들었다.
미윤은 택시 기사 얼굴에 순간 빛이 스쳐가는 걸 봤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는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택시 앞을 빙 돌아 운전석으로 향했다. 뒷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었지만, 기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예 손님을 받지 않고 점심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지 택시엔 시동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쨍쨍 내리쬐는 해가 차 안을 얼마나 뜨겁게 만들어 놨는지, 가죽 의자 위에 손이 닿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야 했다.
택시 기사는 끝까지 궁시렁거렸다. 값을 두 배로 치르겠다고 했으면 그만 조용히 할 법도 한데, 계속 중얼중얼.
이래서 오기 싫었다. 여기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자기보다 조금이라고 어려보이거나 만만하게 보이면 곧바로 숨겼던 배를 드러내며 잘난 척을 한다.
안 그래도 성질나는데 뜨끈뜨끈한 차 열기 때문에 정수리까지 부글부글 끓었다. 누구는 돈이 넘쳐서 값을 두 배로 부른 줄 아나. 나도 돈 받는 문제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안 왔다고.
택시 기사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어후, 왜 이렇게 더워.” 중얼거리며 시동을 켰다. 곧바로 에어컨을 틀었지만 뜨뜻미적지근한 바람만 푹푹 불어올 뿐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던가.
결국 가게를 접고 남은 건 빚뿐인 상황에서 미윤은 그나마 돈이 되는 물건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뭐하나, 잘 안 들고 다니던 가방 하나라도 팔아서 보태야지.
장롱 안쪽까지 상체를 집어넣은 채 여기저기 뒤적거리고 있으니 눈물이 날 듯했다. 회사 다니면서 처음으로 월급이 올랐을 때 큰 마음 먹고 샀던 정장, 승진 후 기특한 나에게 스스로 선물했던 가방, 여름 휴가 가는 김에 샀던 명품 선글라스... 하나 하나 다 나의 노력이고, 나의 행복이었다.
물론 오래전 구매한 정장은 촌스러웠고, 가방 디자인은 낡았으며, 선글라스엔 생활 기스가 많이 나 있지만.
끙끙거리며 물건을 꺼내다가 장롱 밖으로 고개를 뺐다. 여기저기 널려진 물건들을 허망한 기분으로 바라보는데, 멀리서 벨소리가 들렸다.
한 통의 전화가 나의 삶을 망친 듯 또 다른 한 통의 전화는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무슨 회사라고 했다. 회사 이름을 들으면 잘 모르겠는데, 전화 건 사람은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그 회사에서 맡아서 한 작업 몇 개를 알려주었다. 대부분 수도권에서 지방을 이어주는 굵직한 도로였다.
“그런데요. 왜 전화하셨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슬프고 힘들었다. 장롱에서 꺼낸 물건은 머리로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별로였다. 디자인도 재질도 다 촌스러웠다. 이런 거 팔면 누가 사가긴 할까? 그래도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은 물건인데 팔지 말까? 그렇다면 돈은 어디서 구해야 하지?
당장 떠오르는 고민만 해도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고,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내가 불쌍해서 눈물이 날 듯했다.
그러나 그건 네 사정이지 나의 사정은 아니라는 듯, 전화 너머의 사람은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박미윤 씨 맞으시죠?”
“왜 전화하셨냐고요.”
“일단 박미윤 씨 맞는지 확인해야 해서요.”
아, 짜증이 날라니까 별 게 다 꼬인다. 미윤은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집주소를 물어보면서 뒤에 짧게 덧붙였다. 소유하고 계신 집주소를 말해달라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거 없으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치려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머릿속 구석에서 무언가 슬그머니 떠올랐다. 아, 연못 마을에...
까맣게 잊고 살았다. 거기는 이제 내게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팔리는 매물도 아니었다. 도대체 시내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마을에 몇십 년이나 된, 다 허물어져가는 집을 누가 산단 말인가?
거기는 오래된 나머지 팔리는 값보다 수리하는 비용이 더 들 정도였다. 거기서 지냈던 학생 시절에도 겨울이 되면 벽과 벽 사이에서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곤 했는데, 지금은 가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무너졌거나, 벌레가 먹어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거나.
“저희가 그 집과 땅을 사려고 하는데요.”
그 말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음성처럼 맑고 황홀했으며 가슴이 뛰었다. 정말로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을 듯한 그늘 아래에서 썩어 죽어가기만을 기다리는 나에게 기적적으로 하늘이 갈라지는 순간이었다.
거기에 도로를 놓을 거라고 했다. 서울에서 지방을 가는 길은 많지만, 지방과 지방을 이어주는 도로는 거의 없다며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미윤은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는 말에 맞장구치려고 애썼다. 그냥 다른 거 다 생략하고 거기를 팔면 얼마나 줄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지방과 지방을 이어주는 도로라곤 하지만 그 끝은 서울이었다. 그래도 그 도로가 생기면 이용하는 차가 있겠지. 설마 그 정도의 계산도 하지 않은 채 회사에서 큰돈을 투자했겠어?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롱에서 꺼낸 물건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다시 입고 다니거나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촌스럽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다. 함부로 팔면 아깝지, 아무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전화로 말할 땐 당장 지금이라도 돈을 줄 듯 당당하더니, 시간을 넉넉히 두고도 돈을 갚지 못해서 압박을 받을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그 도로를 놓겠다는 회사에 전화했다. 뭔지 모를 땐 본사에 직접 얘기하는 게 최고다. 하지만 미윤은 담당자에게 연결하는 건 어렵고, 다만 내부 사정으로 인해 공사 확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답만 받았다.
도대체 무슨 내부 사정? 일을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면서 집과 땅을 사네 마네 했어야지, 폐에 바람만 잔뜩 불어넣고 이제와서 모르는 척?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회사로 찾아가 언제 처리해 줄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해결되는 게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미윤이 잘 알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 내부 사정이라는 게 뭔지 알 듯했다. 연못 마을이 있는 자리에 도로를 놓는다는 건 연못 마을의 상징인 연못이 사라진다는 뜻과 같다.
머릿속에 곧바로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똘똘 뭉쳐서 절대 반대를 외칠 사람들. 그 허름한 동네도 고향이라고 절대 떠날 생각이 없다며 드러누울 사람들. 이런 저런 핑계를 대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과 싸우기 싫어서 은근슬쩍 도로 건설 반대측에 묻어가는 사람들.
징글징글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직접 연못 마을로 가야 했지만, 미윤은 이미 구십 퍼센트 넘게 확신하고 있었다. 안 된다며 한여름 길바닥에 등 깔고 누울 얼굴들이 마치 어제 만난 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스마트폰에서 버스 시간표를 찾았다. 가장 빠른 걸로. 장롱을 연 김에 사놓고 전혀 쓴 적 없는 백팩을 꺼냈다. 속옷 몇 개와 갈아입을 티셔츠, 바지를 접어 넣고 버스 좌석을 예약했다. 통장엔 십만 원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틀 뒤 오전 출발이 정해지자 미윤은 잠시 넋을 놨다가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은행에 전화하기 시작한 게 그때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