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y 이홍

도로를 놓는다느니 집과 땅을 사겠다느니 하는 말로 희망에 부풀게 만들었던 회사에서 전혀 소식이 없는 동안 은행에선 내 상황을 두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좋은 말로 감싸서 얘기했지만 결국 요약해보면 이랬다. 이리저리 살펴본 결과, 당신은 돈을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택시 기사는 드디어 투덜거림을 멈췄다. 어차피 손님을 태웠고, 시내 밖으로 나가는 길도 탔으니 기왕 가야 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가자는 생각이 드디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윤에게 말 걸진 않았다. 아마 궁금하겠지. 시내 어딘가를 돌아다닌다고 하면 몰라도 연못 마을에 간다니. 그런 시골 마을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아는 척하고 싶어 미치겠지.

한때 연못 마을의 연못은 가뭄이 지속되어 농사를 다 망치게 생긴 상황에서도 절대 마르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저 잘 마르지 않는 못이었는데, 소문이 어디서부터 삐딱하게 났는지. 가끔 연못 마을을 찾아와 신성한 물이다, 이걸 마시면 걸린 병도 싹 나아진다 말하며 물을 떠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그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찾아오는 길이 험하기도 하지만, 연못 물을 마실 물로 이용하기엔 악취가 고약했다. 쓰레기가 썩어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물이 오래 고여있으면서 습해진 땅 위로 이끼가 자라나고 거기서 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도 험하니 찾아오는 사람도 금방 줄어들고, ‘신성한 연못’이란 소문도 금방 사라졌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됐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그땐 아는 사람만 알았다. 대부분은 여기에 마을이 있단 사실도 모르고, 연못을 신성하다고 소개하며 다른 사람을 불러들이기엔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심했다.

아주 짧게 퍼졌던 소문은 아는 사람만 아는 상태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자꾸만 룸미러를 힐끔거리는 택시 기사는 그 소문을 아는 모양이었다.

말 걸고 싶어서 몇 번이나 입술을 움찔거리는데, 내가 끝까지 모르는 척을 하자 그는 이내 포기하고 노래를 틀었다. 정식으로 등록된 음원이 아니라 휴게소에서 여러 음악을 마구 섞은 다음, 빠르기를 높인 뽕짝이었다.

어느새 시원해진 차는 쿵짝거렸다. 미윤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버스를 타고 지나올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이 빠르게 뭉개지고 있다.


연못 마을 입구에 내려준 택시 기사에게 원래 나온 값의 두 배를 지불하고 나니, 통장에 오 만원도 남지 않았다.

안 그래도 답답한데 내리쬐는 햇볕은 강했다. 명치가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백팩을 맨 어깨에 벌써부터 땀이 차는 느낌이다.

그나마 주변에 산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덜 덥다는 걸 안다. 게다가 지금은 덥네 마네 따질 때가 아니었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다곤 하지만 터미널로 돌아갈 땐 버스를 타야 했다. 택시를 부르기도 어렵고, 불러도 택시비를 내면 고속버스 예매를 할 수 없었다. 카드 쓰는 건 최대한 줄이면서 현금으로만 살아보려는데 그게 또 이렇게 힘들다.

독하게 마음 먹고 카드를 잘게 잘라 버렸지만, 요즘 시대엔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된다. 지갑에 든 카드를 자르면 뭐하나. 스마트폰을 열면 그 안에 다 들어있는데.

그만큼 미윤의 다짐이 허물어지기 쉽다는 뜻이기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스마트폰에 연결된 카드를 지우지 않았지만, 그것이 핑계라는 건 미윤 스스로가 더 잘 알았다.


연못 마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주 보고 오는 소형차 두 대가 겨우 스치지 않고 지나갈 정도의 너비였다.

중간마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세 개 중 두 개는 조명 달린 부분이 박살난 채였다. 그래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원래 이 마을은 다른 곳보다 빠르게 어둠이 찾아온다. 에전엔 서울로 대학 가겠다고 불 켜놓고 밤새 공부하는 학생이라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마 없지 않을까.

거리는 한산했다. 아니 한산함을 넘어 지나치게 조용했다. 새 우는 소리도, 매미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버려진 유령 도시처럼...

미윤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연못 마을 입구를 표시한 비석이 점점 멀어졌는데, 이상하게도 거기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익숙하고 잘 아는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그래선 안 될 느낌이 걸음을 멈칫하게 만든다.

다시 앞을 봤을 때, 멀지 않은 곳에 마을회관이 보였다. 그 앞엔 없는 주차 라인이 보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갈하게 세워진 소형차가 한 대 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온 고향 마을인데 한 바퀴 돌까?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그냥 회관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문은 닫혀 있는데 안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진다. 원래 마을 회관에 사람이 있으면 여기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문을 열어두곤 했는데, 주변을 둘러싼 곳이 전부 산이라서 한여름에도 크게 덥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모양이었다. 회관 앞엔 못 보던 실외기가 하나 놓여 있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것이 더운 바람을 마구 뿜어댄다. 미윤은 손을 휘저으며 닫힌 마을 회관의 문을 열었다.

회관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갑자기 문이 열리니까 나누던 수다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얼굴들은 대부분 아는 얼굴이다.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나이가 들고, 주름이 자글거렸지만 분명 아는 얼굴.

들어가려는 미윤을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 틈에서 어머! 하고 큰 소리가 났다.

“혹시 미윤이니? 박미윤?”

“아, 네.”

“어머, 어머 어머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야? 응?”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사람은 현은이었다. 박현은. 연못 마을에 살면서 박 씨 성을 가졌다고, 우리는 친척 같은 관계라며 늘 친한 척을 하던 사람.

그는 결혼했다가 자신이 친하게 지내는 직장동료와 자신의 남편이 바람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이혼한 상태였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같이 그 남편과 직장동료를 욕하면서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 된 여자를 감싸겠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남편이 바람나면 그건 다 아내의 탓이었다. 여자가 얼마나 독하게 굴었으면 결혼까지 한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겠느냐 라는 식의 생각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먹고 살지 않고, 여자가 직접 나가서 돈을 버니까 남편 입장에선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했겠느냐는 말도 많았다. 자고로 결혼했으면 여자는 집안일에 몰두하고, 남자는 바깥일 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하던 그때, 현은은 이혼하고 연못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맞이하며 말했다. “딱 봐도 남자가 얼굴 값하게 생겨서 자기 마누라 속 썩일 상이었다”며 위로했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잠시 연못 마을에 머물러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흔쾌히 머물 곳을 마련해준 게 현은의 부모였다. 그들의 입버릇도 그랬다. 박 씨 성을 가졌으니 우리는 친척이나 다름없다고.

미윤은 마을 사람들이 현은을 따스하게 맞이한 이유를 안다. 현은의 집은 연못 마을에서 꽤나 힘을 쓰는 집이었다. 당연히 나이 많은 어르신을 최고로 모시고 산다고 하지만 어느 세대나 돈이 가장 중요했다.

현은의 집은 돈이 많았다. 마을 내에서도 가장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았다. 굳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 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건 현은의 부모가 조용하고 사람 없는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엔 보기 힘든 고급 자동차도 있었다. 미윤은 그것의 이름을 모르지만, 마을에 사는 남자들은 꼭 하루에 두세 번씩 현은의 집 앞에서 차를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서 어슬렁거렸다.

그 집은 땅도 많았다. 연못 마을에 땅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다고 하던데, 거기에 아파트가 들어왔다고 했다. 무언가 세울 수 있는 빈 땅이 있으면 무조건 아파트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땅을 말도 못 할 액수를 주고 팔았다는 소식은 항상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현은의 집은 돈도 많고,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면서도 마을을 사랑하고, 마을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개인 돈을 써서라도 해결해주었다. 그런 집에서 귀하게 자란 외동딸이 이혼하고 돌아왔으니 그 문제에 대해 쉽게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현은의 부모가 “결혼했으면 더 이상 이 집의 사람이 아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을 잘 보살펴야 하는 게 네 일”이라며 받아주지 않았다면, 모였을 때 속닥거리는 정돈 했을 텐데, 현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며 난리가 났다. 감히 귀한 내 딸을 데리고 가서 바람을 피웠다고?

그는 당장 차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이틀 뒤에 돌아왔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이혼한 남편과 배신한 직장동료가 함께 왔다.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현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싹싹 빈 다음에야 연못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을 데려온 현은의 아버지는 차를 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짜고짜 회사부터 뒤집어 놨다고 했다. 웨딩 사진을 들고 가서 이 남자가 내 딸을 두고 내 딸의 동료와 바람 피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현은의 전 남편 회사는 물론이고, 그 주위 회사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그 사이 현은의 어머니는 현은이 다니던 회사로 찾아가 바람 났다는 상대에게 구정물을 퍼부어주면서 어떻게 니가 내 딸의 남편이랑 바람을 피울 수가 있냐고 방방 뛰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어느 누가 현은의 탓을 할 수 있을까. 가끔 멸치똥 따러 모인 아줌마 두세 명이 속닥거리는 일 빼고는 현은을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 뒤로 그는 연못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가끔 남자를 만나는 일은 있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다시 결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은의 부모는 죽었지만, 그들의 그림자는 여전히 자신들의 외동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미윤은 현은이 이끄는 대로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내 이름을 들은 어르신들은 하나 둘 다가와서 아는 척을 했다.

솔직히 얼굴은 대충 알겠어도 이름은 기억 안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미윤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기억 속에 연못 마을이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했다.

그런 기분을 티내지 않으려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동그란 안경을 쓴 그는 ‘작다’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아담했다.

그가 다가오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미윤에게 말 걸 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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