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by 이홍

누군가의 돌잔치라고 써진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여자 두 명은 때깔이 달랐다. 아무리 잘 봐줘도 여기 사는 사람 같진 않았다.

커피를 받았다는 건 일단 손님 취급은 해주겠단 뜻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베풀어주지 않는다. 그게 연못 마을 사람들의 특징이다. 마을에 살지 않는 외부인이 오면 친절하게 대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말하는 마음 약한 누군가도 없다. 눈치를 보며 앉으면 일어나라고 지적하지 않지만, 마치 이 마을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들어앉은 사람들 틈에서 반기는 이 하나 없는데 엉덩이 붙이고 앉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연못 마을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든 노인뿐이다.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저 여자들이 싫은 거였다.

대놓고 티내기엔 너무 유치한 듯하고, 마음을 숨기고 친절하게 대하기엔 속이 뒤집히니까 적당히 손님 대접하는 척 믹스 커피 한 잔 타서 건네주고 계속 서 있거나 말거나 모르는 척하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나서면 괜히 눈초리나 받고, 한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눈치도 없다며 괴롭힘을 받을 테니 신경 끄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윤의 목적은 연못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게 잘 보이는 게 아니었다.

딱 봐도 서울에서 온 듯한 티가 나는 아가씨. 출근 시간이 되면 지나가는 버스 안으로 가장 자주 보이는 옷차림이다. 주차 라인이 없는데도 거기에 선이 그려진 듯 반듯하게 주차해놨을 사람도 이 아가씨가 분명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별로 반갑지 않은 현은과 대충 인사하고,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 노인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중 몇몇은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눈치였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목적은 그들이 아니니까.

“혹시 서울에서 오셨어요?”

이미 그렇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미윤은 아닌 척하며 안경 쓴 아담한 여자 근처에서 기웃거렸다.

“아, 네. 맞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꼭 이렇다니까. 저는 저기, 박미윤이라고 해요. 여기 연못 마을에 집이 있는데 여기서 왼쪽 산에 가장 가까운 집 있죠? 거기 살았어요, 예전에.”

“아... 아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여자는 다급하게 커피가 든 잔을 내려놓았다. “아휴, 저 뜨거운 잔을 그냥 바닥에 내려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장판 다 우그러지게...” 누군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여자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허겁지겁 명함 지갑을 꺼냈다.

명함을 내미는 손이 참 작았다. 명함 지갑 자체가 그의 손을 다 먹어버릴 수 있을 듯했다. 미윤은 가방에 명함이 있지만, 없다고 거짓말했다. 어차피 망한 가게 사장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걸 보여줘야 할 이유도 없고, 솔직히 보여주기도 민망했다.

여자는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작거나 또박또박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내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리 박지연. 그리고 그 옆에 너무 도드라지 않게, 세련된 글씨로 써진 회사 이름. 도로를 놓겠다는 그 회사의 이름이다.

“안 그래도 따로 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어요. 오늘 저희가, 아, 이쪽은 저희 차장님이십니다.”

“신아은입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 때문에 키가 커 보이는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똑같은 디자인에 이름과 직함만 다른 명함을 받아 들며 그를 훑었다.

평균의 키를 가지고 있는 그는 얼굴이 작아보일 정도로 이목구비가 큼직했다. 특히 마주하고 있는 눈은 얼마나 큰지. 속된 말로 뒤통수를 치면 눈알이 데구르르 굴러 나올 듯했다. 사회적인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얼굴 가득 스며든 피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니 피곤하다기 보단 어딘가 아파보였다. 슬쩍 쳐다보는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차멀미가 있어서요...” 중얼거렸다.

나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차멀미 있으신데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셨겠다는 말을 예의상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미윤에겐 그것보다도 급한 게 있다.

“근데 그 공사 있잖아요. 내가 연락 받은 지가 한참 됐는데 이러네 저러네 하는 말도 없고, 아주 그냥 답답해가지고...”

“그게 저희도 난감한 상태라서요. 주변 마을엔 이미 보상금까지 다 드렸는데...”

지연이라는 여자는 말을 하다가 멈춘다. 미윤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귀한 고향이니, 우리의 삶이라느니 하며 떠드는 주민들의 반대로 고생한다는 뜻이었다.

몇몇 노인은 눈을 세모꼴로 치켜뜨고 노려봤지만, 그런 시선은 익숙하다는 듯 서울 여자 두 명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하여간에 내가 저것들 여기로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도 왜 말을 안 들어?”

소파에 앉은 노인이 소리쳤다. 아주 나이가 많이 든 노인.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어르신인 듯했는데, 누구지?

앉아 있으면서도 지팡이를 자기 몸처럼 들고 휘두르는 모습을 보던 미윤은 눈을 크게 떴다.

“순희 어르신?”

“왜!”

“아니 어르신... 정정하시네요.”

아직도 살아계셨어요? 말이 혓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 그런 말 자체가 실례이기도 하지만, 미윤의 기억 속 임순희 어르신은 꼬장꼬장하기가 비할 데 없는 사람이다. 하나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물고 늘어지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가 보이지 않은 곳에선 사냥개 송곳니도 어르신 꼬장함엔 한 수 접고 들어갈 거라며 속닥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맞는 말이다. 표정도 생김새도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 꼽으라면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얇아져 치켜뜬 눈꺼풀 위까지 주름이 자글자글하다는 정도?

아직도 살아계시냐는 말 대신 정정하시단 말을 하면서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딱 말꼬리 잡기 좋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내가 정정하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냐? 아직 듣지 않았음에도 귀에 날아와 꽂히는 듯한 목소리.

다행인 건 앞에 서울 여자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르신은 늘 외부인을 싫어하고 경계하셨는데, 마을에 살다가 떠난 미윤도 그에겐 외부인이나 다름없었다. 태어나서 나고 자란 고향을 벗어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데, 뻔뻔스럽게 다시 돌아온 것도 아주 불만족스러울 거다.

하지만 양손으로 저울질 해봤을 때, 아무래도 더 얄미운 쪽은 서울 여자들일 거다. 미윤은 어쨌거나 이 연못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서울 여자들은 지금 이 마을을 없애겠다는 마음으로 온 게 분명하니까.

기운만 있었다면 화장실에서 변기물을 퍼다가 부어버렸을 텐데, 얼핏 보기에도 그는 빈 양동이를 들어 옮길 힘조차 없어 보였다.

“이 마을은 안 돼!”

“어르신, 그러지 마시고 저희 얘기를...”

“아이, 어른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알지, 뭐 이렇게 말이 많아!”

어르신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탁 쳤다. 옆에 붙어서 그의 팔을 주물거리고 있던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퍼드득 손을 치워냈다. 나이가 쉰이 넘었음에도 어릴 적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저 사람은 아마도 현정 언니겠지.

뻔했다. 연못 마을 주민들이 은근히 눈치를 주며 임순희 어르신을 보살피라고 떠민 거다. 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는 토박이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이 현정 언니일 테니까.

“아이, 어르신. 진정하세요. 자꾸 화내시면 몸에 안 좋아요.”

슬그머니 다가와서 달래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저 사람은 박석혁이구나. 미윤은 석혁이 너무 싫었다. 매일 술 냄새가 났고,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데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콕 집어서 어디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린 마음에도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술 냄새 때문이 아니라 묘하게 탁한 눈 때문이었다. 꼭 죽은 생선의 눈 같았다. 생기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는 이상했다.

마치 길바닥에 생기를 버리는 듯했다. 학교 갈 때쯤 마주치면 너무 멀쩡해서 어색했다. 아주 깊은 잠에 들어 편안하게 지내다가 오랜만에 눈 뜬 사람처럼 맑고 상쾌해 보였다. 그러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침에 본 생기는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술 냄새와 죽은 물고기 같은 탁한 눈동자만 남아 있었다.

원래 사람이 변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저 정도로 똑같은 사람을 보면 변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듯해서 소름이 끼쳤다.

어쨌거나 석혁에겐 술 냄새가 났다. 임순희 어르신은 “에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르신은 석혁에게 늘 약했다. 그가 무슨 말 한 마디만 하면 목소리 높여 화내다가도 멈췄다.

그는 봤냐는 듯 턱을 치켜들며 서울 여자들을 바라본다. 미윤은 그 꼴을 보기가 싫어서 일부러 멀리 떨어져 앉았다.

지연이라는 여자는 별로 흘러내리지도 않은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기다렸다면 기다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더 좋은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암시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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