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by 이홍

하늘은 나를 이렇게 도와주실 모양이었나보다. 조급한 마음에 닦달한 걸 사과드린다. 아니 사과드리고 싶진 않다.

결국 하늘이 나를 꼬셔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거 아닌가? 타이밍 좋게 전 동료의 연락을 받게 하고, 만나게 하는 바람에 나는 잘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치게 만들고, 모은 돈을 잃었다. 하늘은 당연히 나에게 이 정도의 보상은 해야 한다.

미윤은 회관 창문 밖으로 반짝이며 빛나는 하늘을 힐끔거렸다.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꾸만 입술 끝이 움찔거리는 걸 참을 수가 없다. 기침하는 척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입술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보상금을 더 얹어주겠다니. 지연의 말이 끝나자 회관은 침묵으로 변했다. 물론 그 침묵에 담긴 각자의 뜻은 전부 달랐다. 하나 하나 표정을 읽어낼 시간도 없었고, 솔직히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남들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돈. 돈이 들어온다는데. 그것도 멀쩡한 집에 금싸라기 땅이면 아쉬운 마음이라도 들지, 돈을 얹어주고 사가라고 빌어도 쳐다볼 사람 하나 없는 폐가인데 저렇게 비싼 값에?

혀 아래로 고이는 침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오래 입 가리고 있으면 웃고 있는 게 티날까봐 조심스럽게 표정 관리하며 손을 내렸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임순희 어르신의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이미 입 안 한가득 잔소리를 담은 눈치였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듣는 척조차 안 해줄 듯하니 말하지 않는 눈치였다.

서울에서 온 여자들은 분위기를 살폈다. 그러다가 제법 얼굴이 펴는 걸 보니 자기들이 생각한 반응이 바로 이것인 듯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 각자 생각에 깊게 빠져서 누군가 쳐다보거나 말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아휴, 식사라도 하고 가지.”

“아,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밀린 일이 있어서 회사에 가봐야 하거든요.”

어영부영 무릎을 짚고 일어나는 척하다가 “그래?” 중얼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는 정연의 말이 빈말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어르신이 떡하니 앉아 계시는데 외부인한테 식사를 하고 가라는 말한다? 이건 들리는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볼 일 끝났으면 얼른 가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마을 회관 앞에 서 있는 작은 차에 여자 둘이 탔다. 소형차의 꼭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다음에야 남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미윤에게 향했다. 현은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박수를 짝 소리가 나도록 쳤다.

“어머, 미윤아. 저 사람들한테 시내까지 태워달라고 할 걸 그랬다. 여기 버스도 잘 안 들어오고 택시도 잘 안 들어와서 터미널까지 가기가 힘들 텐데...”

들리는 말은 다정한데, 말투 사이 사이에 날 선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이 마을을 아끼다 못해 아주 사랑한다. 태어난 곳이 여기이기 때문에, 죽어서도 나는 여기 아니면 묻히지 않을 거라며 틈만 나면 노래 부르던 사람이다.

얼핏 걱정하는 식으로 말하면서 언제 여기서 나갈 거냐고 묻는 거였다. 질릴대로 질렸던 그때의 순간과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만 먹었을 뿐이지, 하는 행동은 어쩌면 이렇게 다 똑같은지.

하지만 미윤의 마음 속은 이미 평화로웠다. 연못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태도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당연히 눈치를 보게 되는 법이고, 각기 다른 이들의 특징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야 하는 엿같은 상황도 종종, 아니 매일 일어난다.

비유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도 “보상금을 더 얹어주겠다”는 말에 홀려 정신이 어질어질해 보이는 몇 명이 눈에 보였다.

이거 잘하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겠는데? 직접 와서 확인해보자고 생각한 자신에게 칭찬하고 싶었다. 연못 마을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만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누군가는 진작 집이랑 땅을 팔아버리고 이곳을 떠나고 싶은 눈치였다.

똘똘 뭉쳐있으면 틈을 파고 들기 어렵다. 그러나 겉으로만 똘똘 뭉친 척을 하는 경우엔 말이 다르다. 날카로운 것으로 한 번 푹 찌르면 많은 것이 허물어진다.

똘똘 뭉친 척하는 저 얇은 장막 아래로 얼마나 많은 틈이 있을까. 미윤이 할 일은 정해졌다. 어디에나 보이는 빈틈을 한 번 찔러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더 할 것도 없이 이미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빠르게 번져가는 법이다.

“갈 생각 없었어요. 여기서 잠시 지낼 생각으로 왔거든요.”

“여기서? 하지만...”

너는 여기에 집이 없잖아. 말하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현은은 입을 다물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임순희 어르신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셨다.

내내 헛기침만 하다가 일어난 어르신은 지팡이를 짚으며 회관을 나간다. 어르신을 모셔야 하는 현정은 생각이 깊은지 노인네가 겨우 겨우 걷고 있는데도 부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난 이 마을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안다. 어르신은 마을에 자리 잡은 우물과 다를 게 없다. 사실 없어도 상관없지만, 아니 오히려 이 마을에 자리한 집과 땅을 빨리 팔아버릴 수 있어서 좋지만, 있으면 꾸준히 신경 써야 하는 것. 그렇게 지낸 세월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해내곤 하지만, 여전히 귀찮은 것.

누군가는 정신 차리고 어르신 뒤를 따라가기만 하는 현정에게 지금 제대로 모시지 않고 뭐하는 거냐고 소리쳤겠으나, 서울에서 온 여자들이 떠났는데도 다들 머릿속은 복잡해 보였다.

그 사이에서 현은은 꾸준하게 미윤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이 마을을 떠난지도 오래 지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듯 굴더니 너도 결국 이 마을 팔아먹으려고 온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은 티가 팍팍 났다.

하지만 그는 있는 사회성, 없는 사회성 박박 끌어모아 미소 지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부졌던 각진 턱에 어색한 주름이 진다.

“아휴, 아니다. 내가 괜한 말을 꺼냈네. 그냥 우리 집으로 와서 자.”

퍽이나. 코웃음 치고 싶은 심정이다. 퍽이나 나를 데려가겠다. 아침 저녁으로 은근하게 들볶아서 이 마을에 있는 집을 팔 생각을 없애려는 모양인데 그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때 띠링 하고 문자가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리기 전, 통화했던 상담원에게 점수를 매겨달라는 문자였다. 미윤은 전원 버튼을 짧게 눌러 액정이 검게 변하는 걸 확인한 후 웃었다. 나름대로 어색하지 않게 웃는다고 했는데,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는 여기서 잠시 지내려고요.”

“여기? 회관에서? 사람들 막 들락날락하는데 불편하지 않겠어?”

“괜찮아요. 시내에 방 잡아도 되는데, 그럼 여기까지 오는 게 힘들기도 하고, 저는 지낼 집도 없으니까요.”

“그러게, 우리 집으로 오라니까.”

“괜찮아요.”

속에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자니 귀찮았는지, 현은은 “어머, 그러니?” 말하고 말았다. 다른 주민들은 자기 집에 오라는 소리도 안 한다.

어르신이 회관 밖으로 나가고 나니 다들 눈치를 보다가 하나 둘 일어나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윤에게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는데, 특히 눈빛을 주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으로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이 마을을 팔아버리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쉬운 척하며 나가는 현은을 마지막으로 회관엔 미윤 혼자만 남았다. 옷가지가 든 가방을 그대로 팽개치고, 어르신이 앉아 있던 소파에 몸을 길게 뉘었다.

주변이 조용해지니 자연스럽게 올려주겠다는 보상금 액수가 머릿속을 떠돌았다. 영이 몇 개나 붙었는지 손가락으로 세봐야 할 정도였다. 세상에, 통이 크기도 하지. 그런 큰돈을 준다고?

이젠 망한 가게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 돈이면 지금까지 쌓인 빚을 갚고도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뭐? 시내에서 방 잡을 생각을 해?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당장 여기까지 내려온 것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도로공사 하는 회사를 찾아가기 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온 거다.

챙긴 옷가지에 속옷이 몇 개 없다는 점이 찜찜했지만, 그까짓거 빨아서 입으면 그만이다. 미윤은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 껐을 때와 그대로 상담원에게 점수를 달라는 문자가 떴다.

별 한 개를 남기고 급하게 버스표를 찾았다. 그리고 미리 예약했던 버스표를 취소했다. 오늘 늦은 밤에 출발하는 버스였는데, 다행히 아직 수수료를 떼지 않아도 될 상태라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띠롱. 통장에 취소한 버스 예매표 값이 들어오는 소리. 기분이 너무 좋았다. 미윤은 입을 벌리고 큰 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이쯤이면 마을 사람들 전부가 회관에서 멀어졌을 테니까.


이전 07화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