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화요일에 내용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 추가 완료.

by 이홍

한 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앞으로 더 바빠질 거라는 말을 오늘 점심은 뭐 먹냐는 말보다 많이 들을 때. 미윤은 원한다면 연못 마을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거리가 멀다는 핑계를 댈 필요 없이, 부모님은 내가 찾아오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마지막 연락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가깝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미 나의 존재를 잊고 살지도 모르겠다. 오지랖 넓은 마을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요즘 딸내미는 잘 지내냐는 말이나 한 번씩 들었을 때, ‘아, 맞다. 나에겐 딸이 있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전화해서 안부를 묻거나, 요즘 먼저 연락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일이 있는 거냐고 투정 부리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은 서운함을 불러온다기보단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고향에 큰 애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로지 벗어나고 싶단 생각만 계속 들게 만들었던 공간에서 더 이상 나라는 존재가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대학가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날이 기억난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부터 달랐다. 억양 강한 사투리 대신 부드럽게 조르륵 흘러내릴 듯한 서울 말씨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차도 엄청 많고, 사람도 엄청 많았다.

연못 마을을 나와 시내에서 놀 때면, 여긴 이렇게 놀거리가 많은데 왜 시내에서 안 살고, 구석 마을에서 살까. 미윤은 입 밖으로 낸 적 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와보니 고작 시내 따위는 비교할 게 되지 못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게 처음이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얼굴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대학교 앞이라서 주변엔 당연하게도 대학생이 많았는데, 그들은 정말로 완벽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무 살이 갓 넘은 어린 애들인데, 그땐 쉽게 다가갈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의 어른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도 곧 저렇게 될 거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부풀어 올라서 늦은 밤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연못 마을을 떠나면서 다신 이 마을에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을에 사는 부모와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적응하느라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대학에 가보니까 고등학교 때 하던 공부와 차원이 달랐다. 수업받는 방식도 다르고, 공부하는 방식도 다르고, 시험 치르는 방식도 달랐다.

정해진 분량만큼 문제집을 풀면 그만이었던 학교 숙제와 다르게, 대학에서 받는 과제는 직접 생각하고 써야 하는 글이 많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시험을 끝내고 나니 몇몇 동기들이 함께 자격증 공부하자고 말했다. 어차피 졸업 시즌에 따야 하는 건데, 미리 해두면 좋지 않겠냐, 만약 이번에 따지 못하더라도 공부를 미리 해두면 시험 볼 때 좋을 거다...

나에게 말을 건 동기는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자기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는 산동네에 별장 짓고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여름에 흔히 보이는 모기 한 마리 못 잡으면서 산동네 별장 같은 소리 하네.

미윤은 그 애가 부러웠다. 서울 출신이라는 점도 부러웠지만, 자기 집이 있다는 게 제일 부러웠다. 기숙사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서울에 살고, 집이 학교와 가까웠기 때문이 아니라 애가 예민하니까 차라리 혼자 살아보라며 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줬다고, 그래서 기숙사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는 그 애.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연락 끊어진 지 오래됐지만, 그 애를 참 많이 부러워했던 내 심정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연못 마을에서 우리 집은 못 사는 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가족 중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어도 먹고 죽을 만큼 돈이 넘쳐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모든 재산이 자신에게 올 거고, 그땐 지금보다 돈이 더 많을 테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보니 우리 집은 잘 사는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부동산이니 뭐니 그런 건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아는 건 부모님이 내 집을 사주는 대신 기숙사를 보냈다는 것, 하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다니던 당시 나에게 집을 얻어줄 만한 돈이 없는 게 아니었다. 서울에 집 하나 살 수 있는 정도는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몇 채를 사서 세를 주고 돈을 벌었단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집 하나 내줄 생각 못 할 정도로 부모님은 내게 관심 없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기 위해 그 애의 집에 모였지만, 사실 거의 노는 거나 다름없었다. 기껏 산 문제집은 앞에 몇 장만 넘겨보고 거의 새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 애의 집에 동기들이 모이면 책이 세 장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매번 술 마시고, 놀러 나가기만 했다. 한 번도 펜을 든 적 없는 날도 있었다. 원래 그렇게 노는 건 줄 알았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그렇게 놀았다고 한다.

함께 놀면서 가끔 부모님의 전화를 받거나 부모님께 전화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내 부모님을 크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생각이 있다가도 기숙사로 돌아가면 금방 머릿속에서 휘발되었다. 나에게 부모님의 존재란 딱 그 정도였다.


그럼에도 연못 마을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너 요즘 너무 술만 마시고 사는 거 같단 말을 한 선배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선배에게 호감이 있다거나, 마음에 들고 싶은 건 전혀 아니었다. 다만 그 한 마디는 꼭 날카로운 창과 같았다. 최근 들어 숙취에 찌든 건 사실이었다. 안 마시려고 해도 약속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단 핑계는 학기가 지날수록 대기 힘들었다.

만나기만 하면 술 한 잔씩 하자던 동기들도 하나씩 자기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하고 싶은 것을 찾기도 하고, 이 과와 맞지 않는 듯하다며 전과를 준비하는 애들도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딱 한 잔만 더 마시자며 아침에 뜨는 해를 보고 헤어지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미윤도 그런 부분을 잘 알았다. 매일 아침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가 찾아오면 더 이상 이러고 살지 말아야겠단 다짐도 함께 찾아왔다.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얄팍한지, 어느 정도 해장 되면 귀신같이 술 생각이 났다.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뒤적거리며 여기저기 전화하다가 선배 한 명에게 들은 말.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날아온 그것은 내 가슴을 꿰뚫었다. 안 그래도 내내 하는 시늉만 했던 걱정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부추긴 거다.

하지만 서울은 술의 천국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불이 켜져 있는 가게가 거리에 즐비했다. 보이는 테이블마다 술이 깔려있고, 모든 음식은 식사가 아닌 안주로 보였다.

이건 주변에 문제가 있다. 그날도 결국 생맥주 한 잔 마시고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가장 커다란 가방 안에 짐을 꾸렸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관둔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라서 개강하기까진 시간이 있다.

집으로, 연못 마을로 가야 했다. 술 한 번 마시려면 온 마을 어른들의 눈치를 봐야 해서 차라리 마시지 않는 게 속 편해지는 장소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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