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날씨는 아니었다. 하늘도 맑고 공기도 좋아서 참 외출하기 좋은 날씨라고 기억한다. 버스는 계속 달렸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연못 마을 근처 시내로 내려오는 버스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 내려서 갈아 타야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자, 차라리 기숙사에 틀어박히기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미윤은 한 번 들인 습관을 고치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무슨 버스비가 이렇게 비싸? 서울에서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탔기 때문에 연못 마을로 갈 때도 버스를 이용했다.
배차 간격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일이지만, 당시 터미널 근처에 있던 모든 가게의 음식은 서울의 가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주 먹었던 분식집으로 갈까? 연못 마을로 가는 버스가 시내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가서 부모님과 마주 앉아 식사할 생각이 없었다.
분식집 근처에 가니, 거기에 있던 추억의 가게는 사라지고 백반집이 생긴 상태였다. 그래, 기왕 먹는 거 밥을 먹는 게 나을 거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손님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사장님은 깜짝 놀라며 달려왔다.
내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 사람은 분식집 사장이었다. 최근 근처에 저렴하고 유명한 분식 프랜차이즈가 하나 들어왔는데, 요즘 애들은 다 거기로 간다고 했다. 마침 오래 전부터 하던 백반집 할머니가 더 이상 장사 못하겠다고 문을 닫아서 바로 백반집을 차렸다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기본 반찬을 세팅해주기 시작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때 미윤이 너와 함께 다니던 친구들은 잘 지내냐, 애들이 학교 졸업한 이후로 여기선 만나기가 어렵다...
당연히 그럴 거다. 당시 분식집을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연못 마을을 떠날 거라는 공통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기에 살던 날들이 지긋지긋했고, 각자 미친 듯이 공부해서 수도권 내로 떠났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연락하는 일이 없어졌다. 누군가는 공부하느라 바쁘고, 누군가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정신없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나더라도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다.
점심 장사가 그렇게 잘 된다고 했다. 저녁 해가 지기 전에 문 닫을 수 있어서 너무 편하다고.
그럴 만도 했다. 근처에 기사식당이 있긴 하지만, 기사식당 음식은 아무리 못해도 평균은 간다는 말에 전혀 부합하지 않을 맛이었다. 지금까지 망하지 않은 건 그 건물 주인이 가게 사장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요리해서 벌어 먹고 사는 게 꿈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며 차라리 가게 세를 주고 그 돈으로 먹고 사는 게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이라며 수군거렸다. 어쩌겠는가. 본인이 그러고 싶지 않다는데.
뼈해장국 가게나 칼국수, 각종 찌개만 다루는 가게도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은 메뉴를 먹으면 질리는 법이다.
전 분식점 사장님은 머리를 썼다. 메뉴는 백반 하나인데, 매일 반찬을 다르게 내준다고 했다. 백반집은 당연하게도 사람이 몰렸다.
매일 반찬 고민하는 건 힘든데, 그래도 사람이 몰려서 좋다며 은근히 어깨를 으쓱거리는 사장님을 보며 그저 웃었다. 좋으시겠어요 아니면 장사 잘 된다고 하니까 다행이에요 같은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미윤에게 연못 마을 근처 시내라는 건 지금처럼 주변 상황 자체를 바꿔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더 이상 올 곳이 아니었고, 그땐 당연히 졸업하고 취직하면 많은 게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 학생일 땐 공부하느라 힘들다고 하지만, 취직하면 돈만 벌면 될 일인데. 게다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일이다. 부모님은 원래 돈이 많으니까 알아서 할 거고.
애초에 결혼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남들은 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고, 영원히 옆에 있으면 좋겠고, 자신과 배우자를 닮은 자식을 낳고 싶다는데, 미윤에게 그런 건 다 다른 세계의 말과 같았다.
드라마에서 죽고 못 사는 연인을 보면 저게 무슨 감정이길래 저렇게 타인에게 매달리게 만들까? 궁금하고, 손끝이라도 닿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보면 희한하단 생각만 들었다.
도대체 왜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드라마나 영화는 드라마나 영화이기 때문에 허용 가능한 장면이 있지 않은가? 나는 티브이나 스크린에서 나오는 장면을 딱 그 정도로 생각했다.
문제는 주위였다. 아주 난리를 쳤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와 결혼해야 된다는 게 이 세상에 정해진 법인 듯 굴었다. 아직 좋은 짝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는 소리를 천 번은 넘게 듣고 나니 지긋지긋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내 입으로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요즘엔 남들이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알아서 말한다. “영 마음에 차는 사람이 없네요.”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그것도 젊을 때나 하는 이야기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순 없다, 나중에 나이 더 들면 자식 없는 거 후회한다 등등 귀찮은 소리만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나마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직급이 되자 은근슬쩍 사생활을 묻는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건 아직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먼 일이었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애호박 고추장찌개를 내주는 사장은 역시나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학점 맞추느라 과제하기도 바빠서 아직 없다고 말했다. 알코올 중독이 되기 전에 정신 차리려고 왔다는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다신 오지 않을 생각이니까.
사장님의 수다를 들으며 꾸역꾸역 식사를 이어갔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목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말이 많았다. 제발 입 좀 다물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행히 내가 그 말을 꺼내기 전에 택시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드디어 점심시간 시작이구나. 남은 밥을 마구 욱여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은 무슨 학생한테 돈을 받냐, 다음에 또 오면 그때 주라며 손을 휘적거렸다.
나야 돈 굳었으니 좋은 셈이다. 못 이기는 척 후다닥 가게를 나와 버스 시간을 살폈다. 정확하게 십 분 후 버스는 정류장에 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은 나 하나였다. 버스 안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장바구니를 들고 탄 아주머니와 담배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할아버지 두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핏 흘려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누군가를 향한 노골적인 욕설이었는데,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깊게 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당시 꽂혀있던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또 한 번 다짐했다. 다시는 여기 오지 말아야지. 이번에 부모님 얼굴 보러 가는 김에(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좋게 포장하기로 했다.) 확실하게 말해둘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하고 힘드니까 이제 나에게 볼 일이 있다면 서울로 올라오라고.
당시 집엔 연못 마을에서 보기 드문 차가 있었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내려오는 고생에 비하면 차 타고 한 번에 올라오는 게 훨씬 나았다.
그리고 솔직히 부모님이 나를 찾을 일은 없을 듯했다. 지금도 내가 서울에서 빛나는 술집을 외면하리라 마음먹지 않았다면 여기 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면 결국 연이 끊어진 채 살 수도 있다는 뜻일까?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무심결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미윤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사람처럼 고개를 돌렸다. 버스에 있던 세 명의 사람은 언제였을까, 이미 내린 다음이었다. 마침 버스가 방지턱을 지나갔다.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