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있는 사건 현장을 발견하는 묘사가 있습니다. 상황과 사건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다음 편에 나올 예정입니다), 읽을 때 미리 주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다음부터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집으로 갔고, 그 다음은 너무 추웠다는 생각만 들었다. 분명 날씨가 좋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겨울이었단 사실을 알았다.
사실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는 것도 나중의 일이었다. 그날의 일은 계절마저 헷갈릴 정도로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버린 일이 된 거다.
옷을 두툼하게 차려입었나? 아니면 누군가 다가와서 두툼한 옷을 줬나? 번쩍거리는 경찰차 경광등을 보며 눈이 아프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난다.
차가운 돌바닥에 앉으면 여자한테 좋지 않다며 푹신한 방석을 깔아준 게 마을 사람인지 경찰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숙이면 내 발 크기에 전혀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안으로 숭숭 바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발가락을 최대한 말았던 걸로 기억한다.
집 앞엔 폴리스 라인이 붙어 있고, 처음엔 입고 있던 옷 위로 간단하게 점퍼만 걸치고 나왔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곧 모자를 쓰고 귀마개를 하는 등 옷가지를 든든하게 챙겨입고, 다시 우리 집 앞으로 모였다.
턱이 각지고, 덩치가 크고, 투박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는 조심스럽게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그래도 되는 건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그랬을 거다. 부모의 시신을 직접 발견한 자식에게 대체 뭘 어떻게 물어볼 수 있겠는가.
그가 머뭇거리고 있자, 빼빼 말랐지만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남자가 다가와 덩치 큰 남자를 툭툭 쳤다. 신입 형사인가? 덩치 큰 남자는 자신을 툭툭 치는 사람을 확인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마른 남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저기 가서 다른 일을 보라고 했다. 덩치 큰 남자는 우물쭈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른 남자는 내가 앉은 자리 옆에 대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내가 봤던 그대로 말해보라고 했다. 힘들겠지만 본 다음 바로 이야기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형사의 얼굴엔 큰 결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람이 둘이나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경찰이 찾아온 시간쯤이면 아마 시내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알았을 거다. 연못 마을에서 사람이 둘이나 죽었는데, 그 집 애가 부모를 발견했다는 사실.
나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볼까봐.
안 그래도 우리 집은 돈이 많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의 재산은 전부 내 것이다. 몰래 마을로 와서 두 사람을 죽인 다음, 모르는 척 서울로 돌아왔다가 지금 와서 발견한 척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그런 상황임을 알면서도 솔직하게 내가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 한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사람이라도 그런 행동이 어리석다는 건 알 거다.
미윤을 바라보고 있는 형사는 닦달하고 싶어 안달 난 표정이었다. 끽해야 술 마시고 시비 붙어서 싸우는 걸 말리기만 하다가, 사람이 죽은 사건이 발생했으니 얼마나 흥분되겠는가.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발이 시렸다. 누가 가져다준 신발인지, 나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걸로 보였다. 너는 여기에 맞지 않으니 당장 나가라고 등 떠미는 듯 보이기도 했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 둥둥 떠 있어서 그걸 제대로 설명하는 게 힘들다고. 그러자 형사는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미간에 갓난아이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만큼의 깊은 주름이 생겼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아요.” 높낮이가 거의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형사는 본격적으로 집요하게 캐묻겠다는 듯 내가 앉은 방향을 향해 자세를 고쳤다. 무릎을 굽힌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빼고 그 위에 자신의 팔꿈치를 얹었다. 고개는 삐딱하게 돌아갔다.
그는 아마도 너 경찰서 가고 싶냐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얇고 마른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믹스커피와 담배에 찌든 누런 이가 드러났다. 경찰서까지 말하는데 갑자기 앞집 아저씨가 후다닥 달려왔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지 부모 죽은 거 발견하고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진 애를 데리고 취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거기 그쪽이 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나본데, 원래 최초 발견자의 얘기를 들어야...”
“그것도 상황을 보고 하는 거지! 애 놀란 거 안 보여요?”
“그래도...”
“아이, 됐으니까 나랑 얘기합시다. 발견은 얘가 했지만, 신고하기 전에 내가 가서 확인했으니까 나랑 얘기하자고요. 경찰이라는 양반이 말이야, 사람 상태를 봐가면서 대화를 하려고 해야지, 애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때 어땠는지 알아요?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르고 말도 못합디다. 그냥 자기 집만 가리키는데, 무작정 최초 발견자... 아니, 당신이 그런 일 당한 거, 당신 자식이 발견해도 그런 식으로 할거요?!”
형사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만한 게 우리 집 앞에 사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일을 절차대로 따르고, 분쟁이 있어도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미윤이 보기엔 저러다가 사기 당하기 딱 좋은 타입인데, 이런 상황에서 고마워진다는 게 웃겼다.
앞집 아저씨가 부모님의 시신을 발견한 나에게 뭐라도 말해보라고 닦달했던 형사에게 불같이 화내는 동안, 앞집 아줌마는 따뜻하게 끓인 보리차를 내주며 형사를 노려보았다.
평소 조용하고 싹싹하게 잘 웃던 부부가 먼저 화내자, 마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애가 하면 뭘 했겠냐, 제대로 기억나는 게 있겠냐, 수사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컵을 손에 꼭 쥐었다. 감사하긴 했다. 자연스럽게 입 다물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까.
형사는 마을 사람들 등쌀에 떠밀려 옆집 아저씨와 함께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게 또렷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늘이 맑고 날씨가 좋았다면 분명 골목까지 다 퍼졌을 테지만, 연못 마을은 콧물이 흘러내리면 곧바로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그래서 밖에 사람이 없었다. 항상 누군가 찾아오면 들어와도 된다는 뜻으로 열려 있던 현관문도, 창문도 꽁꽁 닫아놓고 살았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종종걸음으로 마을 회관에 찾아가 메모를 남겨두었다. 메모가 쌓이면 이장 부부가 확인하고 농사지을 때 쓰는 트럭으로 시내를 다녀왔다. 그대로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각 집에서 필요하다는 물건을 배달한 이장 부부가 집으로 들어가면, 겨울의 연못 마을엔 침묵이 흘렀다.
대문이 잠기지 않은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하지만, 그게 얼어버리면 닫힌 대문이 안 열리는 경우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도둑이 들지도 모르는데 참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땐 그랬다. 아니 그땐 그랬다기보다 주변에서 다 그렇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마당엔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 안 치운 게 아니라 꽤 오래 방치한 듯했다.
현관문까지 가려면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 있는데, 올라가기 위해 발을 내리자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거기서 이상함을 느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요청대로 일하러 나가지 않는 대신, 마당을 알뜰살뜰하게 가꿨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곁에 함께하고 싶어했다.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굴었다. 집착이 심하고, 항상 무얼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했다.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마을 사람들과 술자리조차 편하게 가지지 못하는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둔 곳은 마당이었다.
마당이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에 어머니가 서서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계속 마당으로 나간 이유는 아마 아버지 나름대로 숨통을 틔우겠단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눈이 오면 얼마나 잘 치우는지, 마당에 얼음 한 조각 떨어지지 않은 곳은 우리 집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기우뚱했지만 크게 연연하진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서울에도 기록적인 한파와 눈보라가 지속되던 중이었단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치우고 뒤돌아서면 치운 만큼의 눈이 쌓여 있었을 거다.
이상하다는 감은 있는데, 머릿속에서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마당을 아낀다고 해도 봄은 꽃이 피고, 여름은 푸릇푸릇한 나무가 있고, 가을엔 단풍이 물드는데 겨울은 볼 게 눈밖에 없었다.
물론 아버지는 눈 치우는 일이나 눈사람을 만드는 일도 즐기셨지만, 날씨가 이렇게 되면 마냥 즐기기만 하는 것도 어렵겠지.
현관문 손잡이가 차가웠다. 아무 생각 없이 잡았다가 화들짝 놀라서 다시 손을 떼낼 정도였다. 짧은 시간에 바로 빨갛게 얼어버린 손. 짜증내며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안에선 아무런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