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by 이홍

시신있는 사건 현장을 발견하는 묘사가 있습니다. 읽을 때 미리 주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하다. 잠자고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들 잘 시간에 자는 것도 그래야 하기 때문에 자는 거였다.

혹시 밖으로 나갔나? 그럴 리는 없다. 미윤은 지금까지 부모님이 함께 외출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한 사람이 나가면 다른 사람은 집에 있었다. 명절 때 다른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나가는 일 빼곤 거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마당에 남은 발자국은 오로지 나 하나의 것이었다.

집열쇠를 가져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집에 누군가 있을 거고, 설마 하나뿐인 딸인데 내쫓기야 하겠나. 사실은 집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렸다. 연못 마을에 갈 일도 없고, 갈 생각도 없었으니까.

점점 추워졌다.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다. 서울도 추웠지만, 연못 마을은 더 추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진 않았다. 별로 반갑지도 않으면서 반가운 척을 하거나 관심 표현 하겠다고 귀찮은 소리나 잔뜩 들을 게 뻔하니까.

어머니는 여분의 열쇠를 항상 현관문 옆 화분 아래에 두셨다. 눈이 쌓여서 화분은커녕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문을 부술 수는 없으니...

일단 쌓인 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발을 이용해 치울 수 있는 만큼 밀어내고, 화분이 보이기 시작하자 손으로 그 근처를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가만히 잘 서 있던 화분이 옆으로 툭 떨어졌다. 그 밑에 가지런히 놓인 열쇠. 얼음이 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화분이 빈 것도 다행이었다. 흙이 차면 얼마나 무거운지 화분을 조금 들어 올리는 일조차 어렵다.

깔린 열쇠는 잡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지만, 얼진 않았다. 거기서부터 이상함을 느껴야 했을까.

걸쇠가 돌아가는 소리는 무겁게 들렸다.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무거웠다. 오랜 시간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듯했다. 다른 열쇠를 돌릴 때보다 힘을 강하게 주어야 겨우 돌아갔다. 안에서 녹 쓸었나?

문을 열었던 그 순간, 따뜻하게 밀려오던 공기를 잊지 못한다. 아니 그 순간엔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머릿속을 더듬어야만 떠오르는 일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따끈따끈했다. 전부터 추위를 잘 타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겨울이면 얇은 옷을 입고 난방을 강하게 틀었다. 그나마 내가 있을 땐 적당히 틀었는데.

발딛기 힘들 정도로 바닥이 뜨거웠다. 사우나처럼 절절 끓기 때문이 아니라, 밖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춥기 때문이었다.

얼어있던 코가 녹으니 이상한 냄새가 났다. 미윤은 아직까지도 그 냄새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이 시체가 썩어가면서 나는 냄새였기 때문에 말문이 막히는 게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맡았고 그 다음엔 맡을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설명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다른 것보다도 벌레가 정말 많았다. 살아서 날아다니고 기어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서 바닥에 그대로 쌓인 것도 많았다.

신발을 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발을 신은 채 발끝을 세워 쌓인 벌레를 옆으로 밀고 또 밀었다. 하지만 바닥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아직 살아있는 것들은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의 발을 피하려고 애썼다.

만약 다른 상황에서 이런 꼴을 마주했다면,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징그럽다고 울었을 것이다.

여기는 밖이 아니라 집 안이었다. 그것도 사방에 창문이 꽉꽉 닫혀있는. 출입구라면 방금 내가 열고 들어온 현관문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밖으로 뛰어나가야 정상적인 반응이었을까? 나에게 다가와 최초 발견자이기 때문에 무슨 말이든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형사는 결국 신고를 도와준 앞집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갔지만, 그는 끝까지 나를 의심했다. 벌레와 악취로 엉망이 된 집을 보고도 소리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반응인진 모르겠지만, 나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나가고 싶긴 했지만, 안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맡기만 해도 구역질 날 듯한 냄새를 막기 위해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 밑에서 자꾸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잔뜩 배를 채운 다음, 만족하며 삶을 마감한 벌레 덩어리들이 퍽퍽 밟히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신발 하나 새로 사려고 했는데. 집 구석구석에서 줄줄 쏟아져 내리는 벌레를 보며 그런 생각이나 했다고 말하면, 앞집 아저씨에게 혼난 형사는 나를 더 집요하게 긁었을 거다.

바닥은 대부분 검은색이었지만, 벽지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구더기는 흰색이었다. 멀리서 보면 더운 날 아스팔트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투명하게 울렁거렸다. 만약 장갑을 끼고 왔다면 가까이 가서 구더기를 만져봤을 거다. 도대체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이번엔 확실하게 음식 썩는 냄새가 났다. 식탁이며 싱크대며 온통 새까맸다. 썩어가는 음식이 무엇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파리가 득실거렸다. 갓 태어난 구더기는 식탁 아래로 내려오거나, 이미 바닥에 내려와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운동화 위로 기어 올라왔다.

이런 날씨라면 따뜻한 찌개를 준비했을까? 싱크대에 가까이 다가가진 않았지만, 아마 다가갔어도 음식물이 다 뭉개지고 썩어서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다만 확실한 건 아무도 이 음식에 손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꼭 아버지가 드실 음식을 차린 다음, 그가 한 입 먹는 걸 보고 음식 만들 때 꺼낸 재료를 치웠다.

미윤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저건 아무리 봐도 치우지 않은 식재료가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자연스럽게 이 식탁은 차려진 그대로 벌레에게 넘어갔다는 뜻이 된다.

이젠 정말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귀 근처에서 자꾸만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소용 없었다. 얼쩡거리던 파리 한 마리가 날아가면 곧바로 다섯 마리가 나타나 귓가를 맴돌았다.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곳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눈앞에 보였다. 집 구조상 현관문을 열면 왼쪽엔 거실이, 오른쪽엔 방 하나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방 바로 옆에 부엌이 나온다. 현관문 맞은편엔 욕실이 있었다.

누가 봐도 확실했다. 욕실 문 뒤에 무언가 있었다. 거대한 벌레 덩어리라거나 벌레의 집이라거나... 벌레가 나올만한 상황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앞으로 걸어가는데 자꾸만 발밑에서 자근자근 터지는 벌레의 느낌이 다르게 느껴졌다. 소름 끼쳤다. 당연히 뒤로 물러나야 맞는 건데, 흘러가는 방향을 억지로 거슬러서 반대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닫힌 욕실 문에 가까워질수록 부엌에서 나는 썩은 음식 냄새는 비할 게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야 한단 마음은 먹었지만, 걸음은 자꾸 주춤거렸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 대신 덜컹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미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부러 잠근 마을 회관 문을 누군가 당기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연못 마을은 늦은 시간에 가로등을 껐지만, 지금은 켜져 있다. 시간이 별로 늦지 않았나? 덜컹거리는 문 위에 달린 시계는 벌써 세 시를 가리키고 있다. 가로등이 켜질 세 시라면 아마도 새벽이겠지.

문에 비추는 그림자로 키 작은 남자라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몇 번이나 문고리를 강하게 당기다가 걸음을 돌린다. 한숨도 쉬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오랜 시간 마을을 떠나지 않았었다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나저나 참 이상한 꿈이다. 한참 잊고 살았는데 항상 머릿속에 기억하고 살았던 사람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니.

문밖에 서 있던 남자가 사라지고, 회관 전체가 고요해진 뒤에도 한참 앉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웃긴 건 이런 상황인데 놀라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혼자 잠든 공간에 누군가 침입하려고 했다는 점도 아무렇지 않고, 내가 부모님의 시체를 발견한 날이 바로 어제인듯 생생한 꿈을 꾸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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