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누군지 모를 남자의 짧은 등장 때문인지, 생전 꿔본 적 없는 부모님에 대한 꿈 때문인지.
그래도 자보겠다고 눈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차라리 욕실을 들어가기 전, 잠에서 깨어나서 다행인 걸까.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까? 모를 일이다. 한 번 꿈꾸긴 했지만,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꿨던 꿈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어둠은 그저 어둠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잘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까지 고생하면서 도착하자마자 들은 게 보상금을 올려준다는 말인데. 내내 묵직하게 나를 누르고 있던 짐덩이가 여름 햇살에 얼음 녹듯 싹 사라진 상태였다.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이리저리 뒤척이고, 덮고 있기 딱 좋은 냉감이불을 괜히 옆으로 밀어봤다가 다시 끌어왔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시간은 새벽 네 시 반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 연못 마을엔 농사짓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는 어르신들은 직접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나이가 들었고, 그들의 자식은 대부분 농사를 물려 받는 대신, 농사 짓던 땅을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식으로 처분하고, 큰 도시에 살면서 부모에게 돈 붙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니 전부 그렇다고 하는 게 맞겠다. 자식이 붙여주는 돈으로 생활하면서도 어르신들은 오랜 시간 몸에 익힌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지금쯤이면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했을 거다.
미윤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절반 정도 남은 담배가 손에 잡혔다. 처음부터 오래 머물 생각으로 내려온 게 아니기 때문에 새로 사오지 않았는데, 터미널 근처에 있을 때 하나 살 걸 그랬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성인이 담배를 태우는 건 자기 선택이지만 장소가 연못 마을이라면 말이 다르다. 억척스럽고 앞뒤가 꽉꽉 막힌 노인네만 줄줄 사는데, 내가 갓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본 사람들이 가만히 넘어갈 리가 없다.
잔소리만 하고 끝나면 다행이지, 딱 삼 분만 지나면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나를 찾아와 담배가 왜 몸에 안 좋은지,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지에 대해 같은 말을 할 거다. 그것도 자기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사람이 많이 움직이는 시간이 되기 전에 안 보이는 곳에 가서 피우고 오는 게 좋다.
가방을 다시 잠그고, 밖으로 나섰다. 주변은 아직 어두웠다. 다른 때였다면 혼자 나오는 일이 살짝 부담스러웠겠지만, 우습게도 여기도 고향이라고 그렇게까지 두렵진 않았다.
마을 회관 옆으로 가면 연못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가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하나고, 그 주변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억센 풀로 어둡고 벌레가 많다.
거기에 조명이 깨진 작은 터널이 있다. 터널의 끝이 막다른 길이라는 건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아주 예전에, 이 마을에도 학생이 있었을 때 어른들 몰래 담배를 피우겠다고 나무젓가락을 들고 모이긴 했지만, 지금은 학생은커녕 나이가 삼십 대인 사람도 없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라이터를 켰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학교 다닐 때도 안 하던 짓을 왜 나이 먹고 해야 하는지. 기분이 영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담배 한 모금 마셨더니 조금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거나 미윤의 목적은 돈이다. 그리고 지금 잘만 하면 그 돈이 거대하게 굴러와 품에 안기게 생겼다. 다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빚을 갚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만 생각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마을에 자리한 집과 땅을 팔아버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거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는 거다.
아, 아니지. 서울로 돌아갈 때면 이 마을은 없어지겠지.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연못 마을이 없어지는 건 내가 알 바 아니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땅이 돈으로 굴러온다는 건 아주 기쁜 일이다.
아직 뱉어내지 않은 연기가 드러낸 이 사이로 하얗게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이 정해졌으니 이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연못인데... 말이라는 걸 알아듣기 시작한 시절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연못 마을의 전설이 있다. 임순희 어르신이 직접 겪었다는 그것. 연못이 마르면 마을에 전염병이 돈다는 소문.
그러니까 누군가는 그것을 전설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소문이라고 말하고, 내 또래들은 그것을 노망이라고 불렀다. 나이를 너무 먹어서 진실이 무엇인지 구분 못 하는 거라고. 분명 어릴 적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 같은 건데, 나이 드니까 그걸 들은 건지 직접 겪은 건지 몰라서 착각하는 거라고.
그럴 만도 한 게 지금까지 연못이 마른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이 하는 말은 틀린 게 없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믿었지만, 내 또래는 달랐다. 아마 봐도 안 믿었을 거다.
그렇지만 마을이 없어지네 마네 하는 지금, 연못에 대한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이 마을 사람이긴 하네.
믿는 건 아니었다. 임순희 어르신 나이가 얼마인데. 그때는 감기도 죽을병이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싹 나아 버리는 병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건강한 사람이 약국가서 약 하나 사 먹으면 다음 날 멀쩡해지는 일이 훨씬 많지 않은가.
주사 하나, 약 하나 없어서 죽은 아이들이 만약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미윤이 아는 한 그랬다.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 중에 감기 걸려서 죽었다는 사람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설사 어르신 말대로 연못이 마른 다음부터 전염병이 돌았다고 해도 그건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시절이면 사람들이 얼마나 꼬질꼬질했겠는가. 물 아깝다고 매일 씻지도 못하고, 명절이나 되면 시내로 나가서 목욕탕 가는 거에 감지덕지하고, 배고프면 누구 입에 들어갔던 수저인지 생각 안하고 그걸로 밥 먹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음식 만들고.
그런 걸 꼭 봐야 아나? 뻔했다. 이웃끼리 살갑게 지내겠다는 이유로 지금은 위생상 좋지 않다고 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을 거다. 그러니까 병이 나지.
담배를 필터 끝까지 다 태운 미윤은 쯧쯧 혀를 찼다. 바닥에 벅벅 지져서 불씨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쪼그려 앉은 게 얼마 되지도 않는데 다리가 저릿거렸다.
아직도 임순희 어르신의 말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어제 본 꼴을 생각하면 아예 없다곤 하지 못하겠다.
한 명씩 만나서 물어봐야 할까?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마을을 없애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당연히 안 된다고 하실 임순희 어르신 한 분을 제외하면, 그들의 속을 정확하게 모르겠다.
몇 명은 은근히 속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거금 때문인지, 원래부터 마을을 팔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지, 회관에 모여 있었던 짧은 시간으론 알 수 없었다.
알아보려면 한 명씩 말 걸고 슬쩍 떠봐야 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먼저 우물 판다고, 어차피 없어질 마을이고 다 흩어질 사람들인데 조금씩 찔러본다고 달라질 게 있겠어?
터널을 나오자 저 먼 산 끝자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천천히 어둠이 물러가고 있는 하늘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나마 농사 짓던 사람들이 있었던 시절, 새벽마다 바깥에서 들리는 분주한 소리에 일어나면 시계를 확인하고 그렇게 짜증이 났었다. 더 잘 수 있는데 왜 자꾸만 눈을 뜨는 걸까.
집안엔 불이 꺼져 있고, 부모님도 잠들어 계신 시간. 나는 학교 가기 전 일 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만약 그때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봤다면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었을까?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오로지 산과 나무에 둘러싸여 떠오르는 해를 본 게 얼마 만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라져야 내게 이득이 오는 마을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감탄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