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목요일에 올라옵니다. / 추가 완료.

by 이홍

우물우물 밥 씹던 걸 멈추고 부엌으로 사라진 그를 보았다. 자신이 말하고도 너무 속 보인다고 생각했나?

솔직하게 말해서, 영연이 미윤에게 밥을 챙겨줄 이유는 없다. 자기 나름대로 신경 쓰여서 왔다고 했을 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반찬과 밥만 들고 왔다면 그 말을 믿었을 거다. 낮은 밥상까지 챙겨서 온 걸 보면 의도가 있단 뜻인데, 대놓고 말하기는 민망하고, 적당히 돌려 말하는 법은 모르겠고.

그러니까 그는 나름대로 나에 대해 먼저 질문하려고 서울 집값 같은 걸 물어봤을 거다. 요즘 스마트폰만 있으면 다 아는 정보를 일부러 물어볼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서울 어디? 서울이 연못 마을처럼 집 몇 개, 사람 몇 명 사는 곳도 아니고, 눈 돌리면 아파트이고 오피스텔인데.

물을 주르륵 따르는 소리가 난다. 곧 따른 물을 급하게 마시고, 다시 따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씹다 멈춘 턱을 움직였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침에 고인 밥은 죽이 된 상태였다. 그냥 꿀꺽 먹고, 청국장을 한 숟가락 먹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대충 이런 시세라고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친절을 베풀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을 거고, 내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물은 것도 아니고, 말한다고 해도 한 귀로 흘릴 거다.

마을 이장과 결혼한 영연은 항상 이웃들에게 깍듯하게 대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를 타고나길 남을 잘 대하고 착한 성격이라고 했지만, 세상에 그런 성격이 어디 있는가. 다 만들어지는 거지.

자리는 사람의 태도를 만든다. 마을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만 하는 이장의 아내로서 답답함이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고충을 티낸 적이 없다. 이유야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털어놓을 친구가 없거나, 자리가 만든 태도 때문에 소문에 대한 겁이 많아졌거나.

미윤이 대답하지 않으니, 영연은 머쓱해진 표정으로 다가와 아까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먹으라고 만들어서 가져다준 밥상에 손대기가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자꾸만 시선이 힐끔거리며 밥상 위를 오고 갔다.

뒤늦게 함께 먹자는 예의상의 말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밥그릇은 이미 절반 이상이 비어버린 상태였다. 허겁지겁 먹어버린 것에 대한 민망함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다.

“아니, 나는 우리 아들이 서울에 집을 구하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영연은 총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안 예쁜 자식이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더 예뻐하는 자식은 있기 마련이다.

듣기로는 이장의 엄마, 그러니까 영연의 시어머니가 그렇게 아들 타령을 했다고 한다. 첫째로 아들을 낳아야 그 다음에도 아들을 낳는다거나, 첫째로 아들이 있어야 집안이 든든해진다거나.

영연의 시어머니는 이장 하나를 낳기 위해 수많은 딸을 낳았다. 분명 애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애는 안 보였다는 소문은 미윤이 어릴 때부터 마을을 떠도는 소문 중 하나였다.

처음 임신하고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들었을까. 아들 이야기에 환호하면서 딸 이야기는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이 당시 이장보다도 열 살 넘게 어렸던 영연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 미윤은 직접 겪은 적이 없으니, 상상만 해볼 뿐이다.

이장네 첫째 아들은 많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실수를 해도 칭찬 받고 살았으니 커서도 분명 제멋대로, 제 고집대로만 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의외로 멀쩡하게 자랐다. 겉만. 눈치가 빤해서 자기 다리 뻗고 누울 자리는 기가 막히게 찾았다.

서울에 집을 구하겠다고 말했다는 건 부모에게 돈 좀 보태달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슬쩍 스치는 말만 해도 자신의 말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를 멍청이는 아니다.

보상금 얘기를 들었겠지. 뻔하다. 액수가 상당하다는 사실도 알 거다. 당장이라도 연못 마을로 내려와서 빨리 집을 팔고 떠나자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많이 생긴다.

집을 파는 것까진 좋다. 그럼 이장 부부는 어디서 산단 말인가? 다섯 명의 자식 중 하나가 모셔야 할 거고, 그 일은 높은 확률로 첫째에게 짐이 될 거다. 아마 지금쯤이면 남은 네 명도 어떻게 해서든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서 돈만 얻어갈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거다.

영연은 미윤이 연못 마을에 온 이유를 정확하게 알았다. 의도를 가진 밥상을 받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만 보면 서울 집값이 장난 아니라는 거야. 어휴, 나도 돈이 있으면 보태주고 싶지. 서울 살아야 애들 교육에도 좋다는데.”

애들 교육 같은 소리하네. 그 집 애들이 교육 좋다는 곳 따져가며 집을 옮길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다 대학 들어가거나 취직했을 텐데, 교육은 무슨.

미윤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기도 했지만, 내심 연못 마을에 보상금을 얻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맞긴 한데 너무 속마음을 활짝 드러내 보인 듯하다고 할까. 너무 속물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지만 사람은 다 속물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행동이라도 취하는 게 맞다.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은 거라는 말도 있는데. 게다가 지금은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언제까지나 늘어나는 빚을 끌어안고 있을 순 없다.

거기까지 얘기한 영연은 슬쩍 미윤의 눈치를 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회관 바닥에 검지로 끊임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웅얼거렸다.

“솔직히 우리 아저씨가 좀 고지식하잖어.”

“......”

“말이 안 통한다니까. 우리 아들이 괜히 부모한테 짐 짊어지게 하겠다고 없는 소리 하는 애는 아니니까. 걔 입장에선 얼마나 답답했으면 말이라도 한 번 꺼내봤겠냐고. 그런데 이 양반은 듣는 시늉도 안해요.”

“이장님이요?”

“그래. 그렇게 물고 빨고 좋아했으면서 돈 얘기만 나오면 정색하더라니까. 찬바람 쌩쌩 불어가지고. 그런 거 보고 우리 아들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네...”

하마터면 코웃음을 칠 뻔했다. 내 반응에 마치 화들짝 정신을 차린 척하지만, 어색한 연기는 바로 티가 난다. 늘 하고 싶었던 말을 해놓고, 주책스럽게 이런 걸 어린 너에게 말하고 있다며, 자기도 늙었다고 애한테 할 말 못 할 말 구분도 못한다고 자책한다.

미윤은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그 문제로 마을이 좀 시끄럽겠어요.”

바닥에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중얼거리던 영연은 “그렇지, 뭐...” 말하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혼잣말 하듯 말한다. 마치 이 말은 어느 특정한 누구에게 건넨 게 아니기 때문에, 들어도 듣는 사람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라는 듯.

“난리도 아니야. 복잡해 죽겠다니까... 지금은 조용해보이지, 둘 셋만 모여도 싸움나고 그래. 나는 이 마을에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이렇게 이웃들끼리 합 맞지 않는 건 처음 봤다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후식처럼 두툼한 오이고추를 된장에 찍어 와삭 씹었다. 하늘은 역시 내 편인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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