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연못 마을에는 안개가 짙게 끼었다. 여름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깔끔했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눅눅하고 습하게 변했다.
원래 여기에서도 이런 여름을 보냈던가. 일어나자마자 에어컨을 켠다. 오늘은 마을 회관에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 그런 게 아니었어도 틀어야만 하는 날씨였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잠이 없다.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잠들어 있는 집이 없고, 할 일도 없으면서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닌다. 간밤에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인사를 나누며 무슨 자극적인 이야기 하나라도 들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다닌다.
물론 도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딜 가나 자극적인 이야기 하나 물어서 여기저기 나르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그런 행동을 질색하는 척하면서 귀를 세우고 듣는 사람도 있다.
카페 운영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동안 이어온 회사 생활만 생각해도, 저들의 행동이 시골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미윤은 막 냉장고를 열었을 때 느껴지는 싸한 바람을 느끼고, 얼마나 청소를 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는 먼지 냄새를 맡는다.
서울 여자들이 돌아간 이후, 이장의 집에선 때때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조용한 마을에서 덥석 잡아 물고 늘어질 법한 이야기지만, 아직까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들의 싸움이 연못 마을의 미래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 건지, 오늘 만나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다들 아침잠 없는 거 티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도대체 새벽 여섯 시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자신 또한 아침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른 시간부터 남의 얼굴을 마주 봐야 하는 현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하필 마을 회관에서 모인다는 걸까. 그렇게 좋다는 연못 앞에서 모이시지. 억지라는 걸 알아도 드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마을 회관에서 잠시 신세를 지고 있는 건 나면서, 지낸 지 며칠이나 됐다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내 돗자리를 빼앗아가는 듯해서 기분 나쁘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하면서 눌린 머리에 물기를 묻혀 대충 문지른다. 밖으로 나와 화장실 불을 끄자마자 회관 문이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아이고!”
“이것 좀 열어봐.”
목소리를 들어보니 현은이다. 아직 다섯 시 오십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찾아와서 사람 놀라게 만들고 있다.
놀란 가슴을 달래며 잠금장치를 풀었다. 살짝 열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얼굴엔 이미 짜증이 한가득이다.
“어우, 뭘 그렇게 숨길 게 있다고 문을 잠그고 있어?”
“아, 제가 씻느라고...”
“씻는 것도 씻는 건데, 뭐 이렇게 냄새가 나니? 창문부터 좀 열어라.”
들어오자마자 소파로 직행하면서 입으로만 떠들고 있다니. 당장 당신이 앉은 소파 뒤에도 창문이 있다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래봤자 내 손해라는 걸 안다. 안 그래도 현은은 단도직입적으로 집을 팔 생각이냐고 물었으니까.
착한 척한다고 먹히지 않을 걸 알지만 긁어서 부스럼 만들 필욘 없다. 창문을 여는 동안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의 정연과 눈이 퉁퉁 부어서 표정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영연이 들어온다.
저 여자도 참 유난 떤다. 결국 자기 좋은 일이고,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첫째 아들을 위한 일인데 칭얼거리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그런 영연이 아니꼬운 듯 현은의 눈이 가늘어진다.
“왜 그래? 어제부터 계속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하더니?”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자기가 여기 떠나고 싶어 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토박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어쩌면 이렇게까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지. 아니, 애들 생각은 안 해? 자기네 고향은 이미 다 팔렸다며. 자기네 애들도 고향 없이 살았으면 하는 거야, 뭐야.”
“아휴, 그러지 마세요. 안 그래도 남편이랑 싸웠다는데, 속이 얼마나 말이 아니겠어요.”
정연은 달래보겠다고 나섰지만 웃음은 어색했고 손짓은 시끄러웠다. 당연히 그런 어설픈 행동으로 현은의 마음이 풀릴 리가 없다.
“얘, 미윤아. 너는 내가 창문을 열라고 했으면 일단 에어컨을 끄고 열어야지. 너는 여기서 잠깐 머물다가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돈 내고 살아야 돼. 이거, 에어컨 돌리는 것도 다 돈이라고, 돈.”
불똥은 나에게 튄다. 이른 새벽부터 뭘 잘못 잡수셨나. 왜 저래. 하지만 미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한다.
“죄송해요. 오늘따라 날씨가 더운 거 같아서 잠깐 환기만 시키고 만다는 게 전기세 낭비하게 만들었네.”
“너는 알 만한 애가 왜 그러니?”
“조금만 봐주세요, 저 요즘 정신없잖아요. 회사 다니다가 관둔 거 말씀드렸나요? 카페 차렸거든요. 그런데 사람 참 간사한 게, 회사 관두고 나니까 또 그 안정감이 그립더라고요. 그런 거 아시죠? 뭘 하더라도 내가 든든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느낌 말이에요.”
“그건 나도 알지.”
알긴 뭘 안다고. 직장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부모가 남겨준 재산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주제에.
남긴 거라곤 썩은 집 한 채 달랑인 내 상황에서 보면 현은처럼 배부른 사람이 없다. 저거 다 하나씩 살펴보면 자기가 이룬 게 아니라 자기 부모가 이룬 걸 그저 가지기만 한 것 아닌가?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나 또한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았을 거다. 가질 거 다 가지고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사는 주제에 나이 들어서 짜증만 늘었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앞에 있는 정연과 영연은 애써 웃어보지만, 턱이 딱딱하게 굳은 사람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현은이 하는 이야기는 혹시 내가 시간을 뒤로 돌아갔나? 착각할 정도로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랑 똑같다. 버튼 누르면 같은 소리만 내는 인형처럼 이 얘기도 지겹게 반복되었구나.
게다가 말하고 있는 현은도 그 사실을 아는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딱 봐도 자기가 하는 말을 듣지 않는 정연과 영연에게 또 짜증을 부렸을 거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느라 바쁜 현은을 두고 마을 회관 안 공기를 적당하게 환기시킨다. 껐다 켜는 게 귀찮아서 에어컨은 그대로 둔다.
역시나 습한 공기가 순식간에 회관 안을 눅눅하게 만든다. 얼른 창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니,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다 모여 있다. 길고 긴 현은의 자기 이야기가 끝나면 시작될 마을 회의는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