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는 여전히 한산하다. 이장은 나를 터미널 앞에 버리듯 놔두고 트럭을 끌고 사라져 버린다. 가는 길이 같으니 볼 일이 끝나면 같이 가자고 말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네.
미윤은 트럭이 떠나는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타고 갈 생각도 없었지만, 막상 저런 모습을 보니 빈정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장이 저러고 있으니 더 그렇다.
지금 느끼는 기분이 어떤지에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을 배려하고 챙겨야 하는 게 이장 아닌가? 아니면 저 사람도 지금 나를 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솔직히 연못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을 사람 범주 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막상 대놓고 아닌 취급을 받으니까 기분 나빠진다. 어쨌거나 지금 머물러야 하는 공간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무의식 중이라도 내가 스스로 이 마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이유도 모른 채 잔뜩 빈정만 상한다. 배가 고파오기 때문에 더 그런 듯하다. 내 처지에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을 순 없는 노릇이기에, 시내에 나오면 가장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으려고 했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몇 푼 아낀다고 내 생활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집은 이미 팔리고,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서 지난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맞다. 그런데 현실은 엉망이다. 제대로 풀리는 것도 하나 없고, 이 나이 들어서 어린 취급을 받으며 노인네들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짜증스럽다.
미윤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찌개 가게를 보고 길을 건넌다. 흰 줄이 몇 개 그어진 횡단보도. 어차피 오고 가는 차도 없는데 신호등은 뭐하러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콧속으로 쿰쿰한 청국장 냄새가 들이친다. 머리 위에 달린 종이 거세게 딸랑거리면서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사람 많은 서울이라면 실수인 척 인파에 섞여 사라질 수 있겠지만, 지나다니는 건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시골 바닥에서 그러긴 힘들다.
강한 냄새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사이, 가게 주인이 먼저 인사한다.
“문 닫고 들어와 주세요.”
가게 안은 시원하다. 에어컨을 켰으니 쓸데없이 바람 나가게 하지 말아라, 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나갈 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내주는 주인은 적힌 찌개 몇 개를 툭툭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지금 가리킨 건 안 됩니다. 주방 아줌마가 하기 싫다고 메뉴에서 빼라고 노래를 불러서 그 아줌마 자르고 다른 아줌마 구하는 중이라서.”
별로 궁금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리고 말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얼른 주문하지 않으면 이 사람의 입에서 불만과 짜증이 장마철 빗줄기처럼 쏟아질 거란 사실을.
“된장찌개 주세요.”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 입을 열었던 주인은 우물쭈물 입을 닫으며 메뉴판을 들고 사라진다.
나오는 밑반찬은 만든 지 오래 지났다는 걸 티내지 못해 안달난 듯 바싹 말라 있다. 있던 입맛도 떨어지게 생긴 것들을 보니 젓가락을 꺼내는 일조차 하기 싫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두 팔을 벌려도 안아들 수 없게 생긴 두툼한 티브이에선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만 나온다. 대부분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기에 도움 되는 내용은 거의 없다.
원래 다 그렇다. 뉴스에서 지방에 대해 다루는 법은 거의 없다. 자연재해가 크게 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사건이나 터져야 조금 들여다보는 척이라도 한다. 그것도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나 그렇다.
이런 시골은 사람이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러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인건비가 비싸서 농사 지을 때 한국 사람을 쓰지 못한다.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고용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택한다. 그런 사람들이 버티기 힘든 강도의 노동에 지나치게 시달리다가 죽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런 거 하나씩 다 따지면 이 땅에서 누가 농사 짓고 살겠는가.
서울에서 사는 돈 많은 노인이 죽으면 그를 위해 울어주고, 주목하는 사람이 제법 생기지만 시골에서 돈 없는 노인이 죽으면 그건 그냥 죽은 거다. 관심 같은 건 가져주지 않는다. 시골의 죽음엔 ‘사람은 당연히 죽는 존재’란 말이 따라 붙는다.
그러니까 사람은 수도권에 가서 살아야 하는 법이야. 이런 촌구석에서 살면 죽는 일조차도 귀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니까.
미윤은 집에서 죽은 부모를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죽었던 장소가 연못 마을이 아닌 강남 한복판이었다면 전 국민이 알게 될 정도로 크게 주목을 받았을 거다. 자살한 남편 옆에서 아사한 아내의 이야기는 앞뒤 사정 모르는 사람들에겐 꽤 로맨틱하게 들릴 수 있다.
예상컨대 안타깝게 죽은 부부 사이에 남은 유일한 자식인 나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을 수도 있다. 만약 언론에 주목받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까? 흥. 코웃음을 친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뭐하나, 이미 지난 일이고, 그들의 죽음은 고작 연못 마을과 그 근처에만 퍼졌을 뿐인데.
부엌에서 조리를 시작하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된장 냄새가 강해진다. 아직 한 입도 먹지 않았는데, 온몸에서 된장 냄새가 진동할 듯하다. 이거 옷을 빨면 냄새가 빠지긴 할까? 가게 문이라도 열고 싶지만, 가게 주인이 곧바로 문 닫으라고 할 거다.
게다가 덜덜거리면서 겨우 찬바람을 흘려 보내는 에어컨에서도 된장 냄새가 진동하겠지. 찢어진 벽지 틈새까지 냄새가 베어 있는 듯하다. 고작 문 하나 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때 주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 수저통 비었으면 뒤에 있는 통에서 꺼내시면 됩니다.”
아직 젓가락을 꺼내지 않은 미윤이 신경 쓰였는지, 아는 척을 한다. 음식을 만들러 갔으면 거기에 집중할 것이지, 밖은 왜 살피고 있는 거야?
가게를 잘못 찾아왔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기분 나쁜 적은 없다. 그것이 온전히 가게 주인의 태도와 가게 청결 상태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나를 트럭에서 치워버리듯 내려놓고 사라진 이장의 심술 맞은 태도에 감정이 옮았을 거다.
하지만 점점 구겨지는 표정을 펴기 힘들다. 미윤은 대답 없이 앉은 테이블 위에 있는 수저통을 연다. 수저와 젓가락은 깨끗하게 닦여 있지만 오래 사용하면서 남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곧 나온 음식은 전체적으로 짜다. 혀가 써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몇 번이나 물을 부어도 도저히 먹을 맛이 나지 않는 된장찌개, 덜 익어서 부슬거리는 밥과 말라비틀어진 반찬을 젓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먹기를 포기한다.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주문 받았을 주인의 눈에 나온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는 손님이 예뻐 보일 리 없다.
미윤이 이 근처에서 살지 않는다는 걸 한눈에 알아본 주인은 나가는 미윤의 등 뒤에서 중얼거린다.
“아휴, 하나도 안 먹었네. 외지 사람들은 음식 아까운 줄 몰라요. 이걸 어쩐다, 죄다 버려야 하는데. 이렇게 먹지도 않을 거면 음식을 시키기는 왜 시켜?”
따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소금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음식을 팔면서 그나마 찾아온 손님에게 투덜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어쩌다 저런 삶을 살게 됐을까? 가지고 있는 거라곤 자신한테 친근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나 칭찬 받았을, 엉망인 음식 솜씨 뿐인데, 듣기 좋은 말에 홀랑 넘어가는 바람에 장사에 어울리지도 않는 깜냥을 가지고 가게를 차렸으니.
건물 주인이 아닌 이상 이 가게는 오래 가지 못할 거란 생각이 너무 커진 나머지 찌개 맛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 또한 싹 사라진다. 불쌍한 인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