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추가 완료.
버스 시간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까이 가니 불쌍한 인생을 가진 사람이 하나 더 보인다.
딱 봐도 집 하나 없어 보이는 남자가 된장보다 더 쿰쿰하고 구질구질한 냄새를 풍기며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다. 멍한 눈으로 한참 바닥을 바라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택시 정류장으로 향한다.
저 행색으로 택시 탈 돈이 있다고? 택시 기사들은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르는 척한다. 누군가는 대놓고 코를 막으며 사라지고, 인상을 찡그리며 멀리 물러난다. 자신의 택시에 타려고 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거라는 표정으로 멀리 떨어져 위협적인 눈빛을 보내는 기사도 있다.
그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남자의 목표는 택시 정류장 근처에 떨어진 담배꽁초다. 거의 땅바닥에 엎드릴 기세로 허리를 굽히고 불씨가 다 꺼지지 않은 꽁초를 들여다 본다. 그러더니 그 중 가장 긴 것을 골라 입에 무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려다가 고개를 돌린다.
더러운 꼴은 다 보고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저런 건 또 처음이다. 서울엔 노숙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들은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다. 높게 세워진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앞에 머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경비원이 나와 그들을 치운다. 경찰을 이용해 치우기도 한다. 마치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그래서 남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입에 무는 더러운 행동을 볼 일이 거의 없다. 기분이 더욱 바닥 친다. 짜증이 끝도 없이 치솟아 오른다.
치를 떨며 버스 정류장으로 가까이 가는데 덥고 습한 공기는 남자가 남긴 냄새를 붙잡아 두고 있다. 연못 마을에서도 덥고 습했지만, 그나마 거기는 시원한 편이라고 느끼게 하는 날씨. 똑같이 시골 오지인데 참 희한한 일이다.
절대 가까이 가기 싫지만, 버스 시간을 보려면 어쩔 수 없다. 시골에서 시골을 오가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크고 제멋대로인데 스마트폰으로 찾아봐도 시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남자가 앉았다가 일어난 자리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얼룩이 있다. 설마 배변 보고 제대로 닦지 않아서 남은 자국은 아니겠지? 냄새로 느끼자면 아예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미윤은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아보지만, 살갗까지 가게의 된장 냄새가 파고든 듯 코 끝에 맴도는 쿰쿰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음 버스 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에야 자리를 떠난다. 다시 버스 정류장에 가야 하는 시간까지 제발 냄새가 사라졌으면 좋겠단 바람을 가지고.
다음 목적지는 편의점이다. 말이 편의점이지, 유명 브랜드 이름과 상표를 비슷하게 베낀 구멍가게다. 시골이라서 이런 식으로 저작권 침해해도 신고당하지 않는다.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있어야 신고도 하는 거지.
나름대로 편의점처럼 꾸민 구멍가게 문을 밀어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 밀기엔 문 자체가 무겁다. 미윤은 어깨를 이용해 끙끙거리며 문을 연다. 카운터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아르바이트생은 들어오는 손님을 힐끔 쳐다보고 인사도 없다.
서울에서 저런 식으로 굴었으면 하루도 일하지 못하고 잘린다. 일단 손님이 문 열기를 힘들어 하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은 내려두고 카운터 밖으로 달려 나와서 도와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태도나 생김새나 보아하니 공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직업조차 구하지 못했을 게 뻔하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놀고 있는 걸 보다 못한 저 애의 아버지가 제발 사람처럼 살라면서 지인들에게 빌고 빌어서 아르바이트라도 시킨 게 분명하다.
그렇게 마련해 준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저 애 부모가 불쌍하지. 다른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할 시간에 스마트폰이나 두드리고 있는 한심한 모습이라니.
세상엔 참 불쌍한 사람이 많다. 물론 나도 불쌍하지만. 카운터 앞에 서도 고개 들어서 쳐다보지도 않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미윤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래도 나에겐 팔아버릴 수 있는 집이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구멍, 돈 나올 구멍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내 나오는 목적이었던 담배까지 사고 나니 더 이상 할 게 없다. 적당히 시간 보낼 곳도 없다. 서울이었다면 널린 게 카페일 텐데, 여긴 그마저도 없다. 터미널 안에 있었나?
도착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터미널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밖은 산책하기 좋은 날씨도 아니다. 선선한 가을이나 해가 따뜻한 봄이었다면 한적한 환경을 즐겨보고자 하는 생각이라도 했을 텐데, 이건 무슨 덥고 습하고 어쩌다 부는 바람도 미적지근하다.
터미널 안은 그나마 시원하다. 사람이라곤 터미널에 앉아서 표를 파는 직원뿐이다. 그조차도 한 명인데, 구멍가게 아르바이트생처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히죽거리면서 웃는 모습을 보면 일할 생각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서울이었다면 당장이라도 민원을 넣었을 텐데. 저러고도 남의 돈을 받는다니. 양심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터미널 안엔 나름대로 여러 가게가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건 없다. 간판 불이 꺼진 분식집엔 ‘임대 문의’와 함께 전화번호가 가게 유리에 크게 적혀 있다. 뭘 파는지 모르겠는 포장마차는 빛바랜 주황색 덮개에 쌓여 있고, 그 옆에 자리한 자판기는 불이 다 꺼져 있다.
미윤의 발걸음은 문 닫힌 카페로 향한다. 개인 사정으로 하루만 문을 닫겠다는 종이는 너덜너덜하고 금방이라도 바닥에 떨어질 듯 낡아 있다.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해서 안을 살핀다. 불은 꺼져 있지만, 터미널 안에 켜진 불로 테이블에 앉은 먼지가 찐득찐득하게 뭉쳐있는 게 보인다.
하루 닫는다는 안내를 써서 붙였을 땐, 정말로 하루만 쉴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하루 사이에 다시 카페를 열지 못할 일이라도 생긴 걸까?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갑자기 죽었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하루 쉬던 날 확인한 로또 번호가 일 등 당첨이라서 그대로 가게를 열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나처럼 빚에 허덕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카페 주인은 돈을 심하게 많이 빌리는 바람에 야반도주라도 해야 할 만한 사정이 생긴 거지. 운영하고 있던 카페도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다면 돈을 얼마나 많이 빌려야 하는 걸까?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으나 닫은 카페 주인의 안부를 짐작하다 보니 물 한 모금도 마시고 싶지 않아졌다.
차라리 서울로 돌아갈까? 여기 있으면 뭐하나. 타야 할 버스를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이 시골 구석에서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마음만 먹으면 이대로 버스표를 끊어 서울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얻는 건 뭘까? 아무것도 없다. 연못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 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적지만,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나 악착같다. 여기서 나 하나 빠지면, 현은의 기세에 밀려 결국 집을 팔지 말자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그럴 순 없다. 여기서 확실하게 정해야만 한다. 집을 팔아서 내 손에 돈이 떨어질 건지 아닌지 알아야만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아니 손에 돈이 들어와야만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돈이 들어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내 유일한 재산인 연못 마을 집을 팔아야 한다.
미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사람처럼 의자에 철푸덕 앉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정작 할 수 있는 건 없다. 싸움판이라도 제대로 열리면 미친 사람인 척하고 달려들었을 텐데, 의견은 엇갈리는데 싫은 소리 하긴 싫어서 눈치나 보고 있는 상황이니.
차라리 연못이 홀라당 말라버리면 좋겠다. 임순희 어르신 말대로 마을에 병이라도 돌아야 집 팔아서 병원비 마련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