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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Mar 04. 2020

카미유 클로델 , 그 자체로 빛나는 이름

카미유 클로델을 생각하며

지옥의 문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다. 로댕의‘생각하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 미술책에서 배웠던 이 작품은 사실 ‘지옥의 문’이다. 오귀스트 로댕은 마흔 살 무렵부터 죽기 전까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서 단테의 ‘신곡’을 읽고 또 읽으며 지옥을 상상했다. 죄를 범한 인간이 지옥에서 받게 되는 형벌은 처참하고 공포스럽다. 아마도 지옥의 문 위에서 지켜보는 단테는 탐욕으로부터 너무 쉽게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피할 수 없는 굴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불륜을 저질렀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지옥의 형벌을 앞두고 했던 마지막 키스는 신성하기까지 하다. 이들의 사랑은 어떻기 받아들여야 할까?


카미유 클로델

작품을 만드는 일에 숨은 조력자가 있다. 로뎅의 제자였고,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이다. 그들의 사랑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사랑과 닮아있다. 열여덟 살의 카미유 클로델은 마흔두 살의 로뎅의 제자로 들어오게 된다. 카미유 클로델의 재능을 알아본 로댕이 그녀와 함께 여러 작업에 참여하며 친해지게 되고, 나중에는 연인관계가 된다. 하지만 로댕에게는 이미 오랜 동거녀 로즈 뵈레가 있었다. 로댕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온전히 주지 않았다. 이런 그의 태도에 지친 카미유 클로델은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카미유 클로델은 독립적으로 살고자 했다.  다른 사랑을 다시 시작했지만 그에게도 오랜 동거녀가 있었다. 사랑 따위는 포기하고 예술에 전념했지만 여성 예술가로 먹고살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 늘 자신을 응원해 주었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정신마저도 무너졌다. 결국 다른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30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쓸쓸히 죽었다.


그녀의 삶을 단 몇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졌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를 로뎅이라는 남자의 프레임에 가둬버렸다. 로댕의 연인이라는 그늘에 가려 그녀는 빛을 보지 못했다. 여성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시기를 살았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이후 반평생을 보낸 그녀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있지 않다. 그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아름다운 곡선 위에서 절절한 사랑이 흘러내렸다. 농밀했던 사랑은 인성과 신성 사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은 순식간에 변하여 마치 뜨겁게 달궈진 사랑이란 이름의 검이 차갑게 식어 결국 자신들의 심장을 겨눈다.  그녀의 이야기에 슬프고, 그녀가 못다 한 이야기에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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