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어머니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 사이로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따라오고 있었다. 나 또한 맞은편에서 걷고 있었고, 11월에 내리쬐는 햇살이 왠지 모르게 따스했던 것 같다.
산책, 그들이 공원으로 나온 이윤 단지 강아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와 그네를 타면서 이야기를 하는 듯했고 그의 어머니는 자주 일어나서 공원 주변을 강아지와 뛰기도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한참 동안 보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걷는 게 귀찮았다. 어떤 날엔 몹시 피곤해서 집까지 택시를 타기도 했고 갑자기 비가 오는 날엔 마을버스를 타고 집 앞에서 내리기도 했다. 걷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주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무신경해졌다.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의 경계선에서. 늑장을 피우는 아침에 나의 게으름이 일어나면 경직된 근육들이 팔다리에서 움찔거린다—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밖으로 나가서 걸어야지—집 근처 공원으로 가는 길.
불현듯 ‘앞으로 더 잘할게’ 기약 없이 꺼낸 말이 떠올랐다. 다신 그런 말을 안 하겠다고 해놓고서 엊그제였을까. 거리가 가까울수록 말실수가 잦아져 갔다. 가끔은 헷갈린다. 또다시 대책 없는 약속을 하게 될까 봐.
그러다 한 번쯤은 내게도 기회가 올까 싶어 공원을 걷다가 찬바람에 멈추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림, 박서보 ‘묘법(Ecriture 描琺)’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