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참혹한 기억을 회상했다. 아주 멀고도 깊은 곳에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찾았다. 한 번 꽂히면 늘어지는 카세프 테이프처럼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2학기가 다 끝나갈 무렵에 우연히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큰 트럭 한 대가 구멍가게 한 곳을 덮친 현장이었다.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119 구급대와 소방차, 경찰차까지 사방이 엠뷸런스 소리로 가득했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의 현장이었다. 얼른 그 자리를 피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에 사고 현장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A야”
순간 고개를 돌려 다시 사고 현장을 보았을 때, 당시 절친이었던 A가 그곳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A를 보자마자 A의 이름을 불렀지만 A는 아무런 대답도 표정도 없었다. 그저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에 몸을 실을 뿐이었다. 뒤이어 하얀 천이 덮여 있는 시신 한 구가 나왔다. 시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려져있었으므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할머니의 통화를 우연히 들었다. “윗동네 이 씨의 딸 셋이 그 가게에 있었는디 그중 큰딸이 가게로 돌진하는 트럭에 변을 당했다는 구먼“
그때 죽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사람이 죽어 사라진다는 것. 영혼이라는 건 유리의 파편처럼 부서지는 게 죽음일까. 최근에 나는 한 소설의 구절을 읽으면서 인간의 영혼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그날 그 사고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트럭운전사의 과실로 일어났다. 한동안 어른들은 그곳을 피해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인솔했다. 나 역시 이사를 하기 전까지 사고 현장을 피해 다녔다. 겨울의 시작과 끝이 참혹했던 폐허 위에는 눈들이 쌓여 있었다.
검은색 단발머리에 키가 컸고 늘 조용했던 언니, A와 밤늦게까지 놀던 날에 나와 A에게 화를 냈던 언니, 곧 있으면 수능을 보고 학교를 졸업했을 그 언니가 한순간에 나비가 날아가듯 사라졌다. 그렇게 자욱한 안개처럼, 금방 꺼지는 연기처럼, 한 사람이라는 불빛의 명멸이 나를 긴장시켰다.
*한강 작가님, 소설 <소년이 온다>
사진, 우에다 쇼지, ‘눈의 표면’,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