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 때 눈송이처럼 흰 백구 한 마리를 키웠었다. 잠깐동안이었지만 가끔씩 녀석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첫’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 같다. 처음 백구를 보자마자 나는 이름도 따로 짓지 않고 녀석의 털을 연신 쓰다듬었다. 눈가루처럼 곱고 쌀알처럼 아담한 백구의 몸을 더듬고 있으면 나보다 더 귀한 존재가 곁에 있음에 감사했다.
처음으로 느꼈던 백구의 보드라운 촉감과 냄새, 그리고 숨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와 다른 생물의 존재를 가까이서 감각하는 것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우주를 감싸 안는 것과 같다. 고작해야 130cm 겨우 넘기는 키에 백구를 껴안고 킁킁거리며 털냄새를 맡고 있으면 할머니는 내 옷이 더러워진다며 매번 혼을 내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그러다 백구가 집에 온 지 닷새가 지났을까. 하루는 백구가 밖이 무서운지 아님 누군가를 찾는 것인지 밤새 울어댔다. 그날은 온 식구가 백구의 낑낑거리는 소리에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얼마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백구를 찾았다. 하지만 백구는 안 보이고 빈 밥그릇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간밤에 하도 울길래 지 어미가 있는 곳으로 다시 보냈어”
할아버지께서는 백구를 원래 집으로 보냈다고 하셨다. 자기 엄마가 있는 곳으로. 백구의 형제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나는 소리 없이 주저앉아 울었다. 그리움과 동시에 어떤 안도를 느끼며 녀석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다. 때 이른 추위에 유독 새벽이 길었던 초겨울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줄곧 겨울이 오면 흰 눈이 백구인 줄 알고 눈을 기다렸다. 그해 첫눈을.
이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어
서로 얼마나 깊이 믿고 있든
이렇게 살을 맞대고 싶은 건 외롭기 때문이야.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기억이나 느낌은 영원히 가질 수 있어.
박자울&황동진, <개의 입장: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림, 책 <개의 입장:내 이야기를 들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