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어떤 곳일까? 얼마나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번의 밤을 보내야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아주 꼬맹이었을 때 아빠가 수화기 너머로 말씀하셨다. “엄마 미국 갔어” 그날 이후로 매일매일 미국이라는 나라만 생각했던 것 같다. 티브이에 우연히라도 미국에 대한 소식이 나오면 당장 내일이라도 미국으로 갈 사람처럼 기대로 가슴을 부풀렸다.
하루는 이역만리 먼 곳으로 떠난 당신이 보고 싶어서 아빠에게 그곳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하지만 아빠는 무엇 때문인지 대답이 없으셨고 한동안 아빠의 전화도 뜸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母 단어를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어서, 혼자서 쓰는 일기조차 당신의 이름을 적은 적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랑이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폭력처럼 정신적,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여 인간을 무력화시키고, 사랑이라는 강제력을 이용해 관계를 굴복하여 인간을 처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어떤 존재보다 당신의 사랑이 그러했으므로, 여태까지 모성애가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그것은 추측 가능한 어떠한 필연적인 사랑일 것이다. 또한 돌이켜 생각건대 멀고 먼 이국의 땅은 나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에게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났냐는 말대신, 여자의 입장으로서 한 여자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과 같겠다. 그러므로, 당신을 향한 증오 대신 이전보다 마음의 간극이 좁혀졌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나는 착륙이 불가능한 비행을 하고, 하늘에 비행운을 만들면서 서로의 흔적을 남기겠지.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한들인가, 벌써 잎 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 결국,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발음해야만 한다‘. (1984)
최승자 시인,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사진, 해럴드 파인스타인(Harold F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