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이었다. 어느 눈이 내리는 날에 나는 전시회를 갔다.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본 전시였는데, 살면서 가장 반짝거렸던 순간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당시 나는 A군과 연애 중이었다. 그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모처럼 만나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심통이 난 사람처럼 연신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 내 모습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근처에 앤디 워홀 전시회 하는데 보러 갈까?”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 작가의 이름도 잘 모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의 시선을 이끌었다. 그의 대표작인 ‘캠벨 수프 캔’부터 ‘코카콜라 병’, ‘마릴린 먼로‘까지. 예술의 [예] 자도 몰랐던 내가 처음으로 예술인을 동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상을 어떻게 새로운 가치로 만들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 단순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현대 사회와 대중매체, 유명인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비판 의식이 맘에 들었다. 예술은 정치적 작품이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 최고라고 여겼던 그의 예술관을 보면서 불현듯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떠올랐던 이유는 왜일까.
그 당시에 나는 포기가 많았다. 대학을 진학했지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포기했고, 새로운 공부를 해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또다시 그만두고, 첫사랑치곤 오래갔지만 그만큼 싱겁고 텁텁했으며 모든 대상에게 쉽게 싫증을 냈다. 졸업을 하고 어른이 되면 모든 잘할 수 있을 거라던 나의 믿음과 열정이 사그라든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을 무렵에 A군과 헤어졌다. 처음 겪었던 이별이었다.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시절이 나의 가장 꽃 같은 나날이었음을. 금방이라도 복숭아 털에 재채기할 듯 위태로웠던 젊음의 하이라이트. 사랑을 알기에는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이별을 몰라 술과 사람에게 기대는 게 전부였던 청춘의 그림자. 그런 피 끓는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게 지금은 퍽 우습고도 서글프다는 것이다.
그림, andy warhol, ske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