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에는 유독 많은 눈이 내렸어.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가 지구를 온통 뒤덮인 거야. 봄에 살랑살랑 날개를 흔들던 나비가 겨울 눈에 박제된 모습처럼 사람의 죽음 또한 두 눈에 다다라서야 분명해지는 것이 있지.
있잖아, 한 번은 제 멋대로 상상해 봤어. 그렇다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에는 얼마나 많은 신원 미상의 시신이 묻혀있을까. 얼음의 땅, 설산의 봉우리들이 눈을 가리는 이국의 땅. 네팔어의 이름으로 그 산을 “사가르마타(하늘의 이마)”라고 부른다는데,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읊조리듯 그 이름을 말하였어.
사람의 마음 안에도 에베레스트산처럼 거대한 산이 제각기 존재한다고 믿어.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지. 세상 전부라고 부를 만큼 크고 거룩해서 마음속 깊숙이 높게 솟아 있는 산. 오랜 시간 녹지 않고 쌓여있는 만년설처럼 영원 같았던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강아지 초파를 차가운 눈 속에 묻었던 날.
그러니까 그해 겨울에는 나에게도 하늘의 이마 같았던 큰 산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던 거야. 그 이후로 겨울이 오면 가보지 않은 이국의 산을 떠올리며 그해 산산이 부서진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
그러다 일기 예보에 첫눈이 올 거라는 소식이 들려오면 설야를 달리는 후지이 이츠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화 속의 장면처럼 잊혀진 당신에게 편지를 써보지만 당신은 영영 이 편지를 읽을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