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홋카이도나 아이슬란드 같은 설국으로 가서 눈의 냄새를 맡는다고 했다.
첫눈이 오던 날 서울은 117년 만에 폭설이었다.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것처럼 수만 개의 얼음의 결정이 쏟아져 내렸다. 검은색 패딩 소매에는 흰 꽃무늬가 이루었고 나는 그의 시를 떠올렸다.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붙들고 서서
함께 허물어지려고 붙들고 있다
두 사람 신발 등이 눈물에 젖고 있다
두 사람이 껴안고 서 있는 자리에
열과 공기가 닿은 것처럼
두 사람을 제외한 곳만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차가 다니지 못하는 눈 길을 걸으면서 나를 제외한 눈의 둘레에 대해 가늠해 보았다. 사방으로 퍼지고 뿔뿔이 흩어지면 뭉칠 수 없는 눈처럼 겨울은 눈의 존재로 결실을 본다. 그래서일까. 유독 겨울에는 ‘사랑’이 그윽한 눈길 같다. 서로가 닿고 껴안아야만 온몸의 체온과 전율이 느껴지는 것.
그가 쓴 시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서 사랑은 아주 소박하고도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특별한 감정보다 어느 순간, 나의 일상 속에 한 사람의 자리가 들어와 있는 것. 의도치 않았지만 우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면서 눈의 흔적이 남겨진 옷소매의 얼룩처럼 사랑은 저절로 스며드는 것.
반대편 교차로를 건너다가 젊은 아빠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눈 위를 걷는다. 아주 작디작은 두 손과 투명한 눈동자로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자신의 생에서 얼마 안 되는 눈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첫눈이라 하기에는 많은 양의 눈이었다. 때마침 대설주의보로 인한 고된 출근길에 무미건조했던 아침이었다.
사람에게도 빙정이란 게 있을까.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람 둘이서 꼭 붙으면 커지는 눈들의 형태가 바로 사랑일까. 순간 가슴 안에서 눈꽃송이가 몽글대는 것이다.
*이병률 시인, ‘폭설’,
사진, 영화 ’윤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