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이 험하다.
12월로 들어서면서 내겐 갑작스럽게 치통이 찾아왔는데 단순한 잇몸 통증인 줄 알고 약국에서 소염진통제를 샀다. 그날은 약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휴대폰을 켜보니 세상은 전과 후로 나뉘여 있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 선포’
한 포털 사이트에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꿈인 줄 알았다. 한 달 전에 읽었던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화되는 순간과 동시에 어제보다 부어오른 잇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입속에 있는 염증과 세균처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경멸과 수치로 가득한 것 같았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말한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부러 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44년이 지나도 총과 칼과 장갑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지시로 인한 학살과 살육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의 존엄성이란 저런 무기 따위로 굴복을 강요하고 함부로 폭력을 일삼는 것인가. 자유라는 건 대체 더 얼마큼의 피와 희생이 이 땅에 묻혀야지 생겨나는 것인가.
“내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라디오에서 계속적으로 흘러나오는 단어가 양쪽 귀를 때린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여러 생각을 읊었다. 손톱달이 유난히 뾰족한 밤이었다. 입안에 매복 사랑니를 발치한 곳에서 씁쓸한 피맛이 느껴지는 것. 이번 겨울은 길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