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요히 쌓이고

겨울 폭설

by 이효진

지난 폭설에 나는 집이었다. 첫눈이 올 거라는 일기 예보에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서둘러 퇴근을 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달이 유난히 크고 밝았다. 눈소식이 이상할 만큼 노을도 짙었고 모든 게 거짓이라고 믿어질 만큼 세상이 고요하고 잠잠했다. 하지만 가장 조용한 순간에 일이 발생한다. 길가 가로등이 하나둘 점멸하고 순식간에 어둠을 직시하는 순간 뜨거운 입가에 멀건 눈송이가 떨어졌다.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흰 도화지 같은 길 위에서 세상은 무의미한 존재 같다. “그건 미친 소리지. 그럼, 미친 소리야.” 그런 혼잣말을 쏟아내도 세상은 하얗고 고요하고 누구의 빈자리도 흔적 없이 채우는 눈이다. 그런 마음이면 겨울이라는 계절이 역설적으로 ‘돌아와 주세요’라고 말하는 과거로의 회귀 같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다 설원을 배경으로 마음을 쌓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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