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과 떡국을 가지고 다투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준비를 하다 남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슬쩍 어떤 것이 먹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떡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나름 특별 레시피로 표고버섯을 우리고 겨울초를 넣고 그 외 야채를 넣어서 열심히 끓여 남편 앞에 대령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의 성의는 아랑곳하고 왜 떡국에 표고버섯을 넣었냐며 이 겨울초는 또 무엇이냐며 짜증을 냈다. 자신은 단지 떡국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굳이 이런 걸 넣어야 하냐? 암환자는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냐며 짜증 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아들과 함께 저녁 동네 산책을 하며 화를 풀었다. 다음날 남편은 나에게 사과했다. 나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어제는 본인 컨디션도 별로였고 식단 관리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랬다며 근데 너무 과하게 요리하지 말아달라 한다. 그래, 환자도 힘들지만, 보호자도 참 힘들다. 마음 같아서는 몸에 좋다는 모든 것을 갈아서 억지로 입에 넣고 싶지만, 타인의 입에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마음과 같이 따라와 주지 않을 때는 더욱 속이 타고 애가 탄다. 하지만 어찌하리... 내려놓기로 하자.
남편이 힘들게 할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최근에 애플 TV에서 나오는 '파친코'라는 작품을 작년에 읽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장면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그 장면과 나의 아버지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소설 속에 팔자가 무지하게 센 선자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 주인공의 아버지는 언청이지만 어렵게 낳은 딸 선자를 너무나도 애지중지하며 사랑으로 키웠다. 그리고 선자는 살면서 그때 부모님, 특히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그녀의 억세고 거친 삶을 버티며 살아냈다.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을 감히 선자가 겪은 고통과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그 소설 속 선자처럼 나 역시 '아버지'가 많이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그만큼 사랑해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지금 이 힘든 상황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이 운명에 감히 맞서 보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아들에게도 내가 받은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소중하게 아껴둔 사탕마냥 힘들 때마다 꺼내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He took pleasure in just watching her walk, talk, and do simple sums in her head. Now that he was gone, Sunja held on to her father's warmth and kind words like polished gems. No one should expect praise, and certainly not a woman, but as a little girl, she'd been treasured, nothing less. She's been her father's delight.
선자 아버지는 어린 선자가 그냥 걷고, 말하고 간단한 계산을 하는 것에도 기쁨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더 이상 선자 곁에 안 계시에, 선자는 아버지의 그 따뜻함과 상냥했던 말씀을 보석을 꺼내 닦듯이 그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봄이 왔다. 오지 않을 거 같던 봄이 왔다. 남편은 마지막 항암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 산에 있는 절로 갔다. 출근하기 전에 기도를 드리고 가야 지하고 올라갔지만, 실은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 간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봄이다. 산을 오르면서 이 아름다운 계절에 이 아름다운 곳에서 등산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계속 감사하다고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게 우리를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닥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리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