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아이와 영화관에 갔다. 아이에게 문화생활이란 걸 체험시켜 주어야 좋겠지 하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시내로 나갔다. 마침 디즈니 영화'엘리멘탈'이 상영 중이었고, 사악한 영화가격 덕분에 우리는 거의 상영 직전에 영화관에 도착했지만, 여유 있게 자리를 부킹 했고 팝콘까지 들고 영화관에 입장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영화를 봐서 좋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아이는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는 영화보다 팝콘이었고, 엄마의 팝콘 먹는 속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디즈니 영화를 보면서도 훌쩍였는데, 이 아이는 결말이 다 와 가는 시점에서 너무 많이 마셔버린 콜라 덕분에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나를 졸라댔다. 좀 참으라고 했지만, 아이는 못 참겠다고 했고, 나는 매우 죄송하게 상영관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직행했다. 다시 상영관에 들어갔지만 이미 엔딩 크레디트만 올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결말을 보지 못한 찜찜한 기분... 기분이 상했다.
내 기대와 다른 영화관람이었지만, 영화관에서 내려와 맛있는 점심을 사 먹으려 했다. 너무 오랜만에 백화점에 간 탓인지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몰랐고 사람 젤 많은 샤부샤부를 골랐다. 하지만, 샤부샤부는 아이 취향이 아니었는지 별로 먹지 않았다. 휴우~아이가 밥을 잘 먹어주면 좋을 텐데... 에휴 그것도 맘에 걸렸다.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집으로 오는 길, 아이는 사고를 쳤고 그 순간 나는 또 폭발했다. 아이가 안전에 관련된 사고를 쳤긴 하지만 나는 온갖 짜증을 담아 더 크게 신경질을 내고 말았다.
내 맘 같지 않은 휴일이다. 내가 아이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밥을 사주고 어떻게 하는 건 다 내 맘이지만, 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이 상황에 대해 나는 관대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어떤 완벽한 엄마가 돼주어야 한다. 아빠가 저러고 있으니 나라도 아이에게 충분히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되려 아이에게 큰 부담과 혼란으로 다가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강하게 아이를 훈육하려고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툭,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완벽하게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완벽하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나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하고 좋은 밥을 해 먹여야 한다. 아이에게 어떤 교육환경/ 놀이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심지어 엄마들 커뮤니티를 만들어 아이 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등등...'제길슨 뭣이 중헌데'.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살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서 스스로의 삶을 힘들게 하는 걸까?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거다.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거다.
남이 뭐라고 하건, 지가 내 밥 해줄 거 아니면 혹은 내 새끼 지가 키워줄 거 아니면 그냥 흘려듣고 좀 부족해 보이고 좀 엉성해도 그냥저냥 대충대충 살면 되는데, 나는 그놈의 완벽한 육아, 삶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완벽한 육아, 완벽한 어떤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삶에 대한 허상
현재 내 인생에서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너무 완벽하게도 노말 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이고 이벤트들이다. 밥 먹고 똥 싸는 것만큼이나 정상적이지만 나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비정상적인 궤도에 떨어진 냥 내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강박적으로 나를 그리고 아이를 '어떤 허상'으로 몰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허리가 더 아프고, 신경질이 더 많이 나고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냉동식품 그것 좀 먹이면 어때? 아이가 티브이 좀 보면 어때? 키즈카페? 안 가면 어때? 아파트에서 안 놀면 어때? 학원 안보내면 어때? 여자 혼자 아이 데리고 놀러 다니면 어때?
지금 모든 현상이 노말이다. 툭 내려놓자.
늘어진 내 뱃살을 사랑하고, 얼굴 위 늘어난 주름과 주근깨를 더 껴안으리라. 똥손이라 요리도 못하고 살림도 젬병이다. 기가 세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가 많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완벽하지 않은 내가 좋다.
와일드하고 학교에서 전화 자주 오는 우리 아들이지만 난 이 아이가 너무 좋다. 심지어 발냄새마저 사랑한다. 더러운 성격은 그래 나 닮은 거 인정한다. 완벽하게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한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냥저냥 사는 거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간다. 오래 살다 보면 또 좋은 일도 있다. 좋은 일 궂은일 이게 다 그냥 part of life 인생의 한 부분이다. 영화 그까짓 것 엔딩 못 봐도 어차피 OTT로 나오는데, 휴우 관대해지자. 되는대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