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척하며 힘주지 말기
아이의 심리검사를 하다가 나도 덩달아하게 되었다. 나의 심리검사결과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나는 오랜 기간 우울함과 공허함으로 내면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나는 그냥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누르며 참고 버티고 있었다. 그냥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상담전문가는 어머니, 상담을 좀 받아보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애써 외면했지만, 나는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
암이라는 큰 불행이 한 가족에게 닥치면, 당사자도 엄청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배우자 역시 그 마음을 오롯이 다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특성상, 여성에게 가중된 돌봄에 대한 압박은 남성이 느끼는 것보다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성 자신이 암이 걸렸을 때 더 힘들다고 한다. 병과 싸우면서도 육아라는 짐도 같이 오롯이 환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은지 알았다. 그래도 나는 건강하니깐, 내가 힘든 거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꾸만 누루고 있었다.
21년부터 내가 주위 어른들에게 들어온 이야기들은 죄다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네가 무너지면 안돼이었다. 그 어떤 누구도 '에휴 네가 참 많이 힘들겠다'라는 말을 쉽사리 하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 역시, 사위걱정이 딸이 겪는 심리적 부담과 상처보다 중요했기에 항상 나에게 남편을 챙기라고 말하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그 어떤 누구에게도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밝히면 안 되기에 나는 이 짐을 꽁꽁 싸서 내 마음 깊은 곳에 내던져버렸다.
누구보다도 나는 강해져야 하니깐 말이다.
심리검사를 듣고 나니, 아 내가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확인받고 나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남편은 환자이기에, 모든 것을 그를 위해 맞춰줘야 한다. 아이도 어리기에 내가 모든 것을 처리해야 했고 내가 느끼는 감정적 불편함과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 놓지 못했다. 남편이 그걸 원하지 않았고, 엄마 역시 나에게 그 누구에게도 니 치부를 드러내선 안된다는 조언을 하며 내 감정을 통제해라고 했다.
그래 강해져야 한다. 버텨야 한다.
이런 부담과 ~해야 한다는 압박. 넌 강해져야 해, 넌 버텨야해...이런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론가 훌훌 털어내고 떠나고 싶었다. 그게 설령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말이다.
며칠 눈물을 흘리고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고 나서 조금씩 기분이 괜찮아지는 걸 느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
남에게 치부가 드러나도 괜찮다.
그냥 그게 사람 사는 거다. 그리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닌 거다.
맹렬히 버티고 있는 나에게 나는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싶다. 잠시 긴장을 풀어도 된다. 힘을 빼고 다시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후 다시 더 높이 점프하며 뛰어오를 거다. 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