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드센 지혜는 고독한 산 위에서 잉태되었다
몇 년 새 내게 생긴 변화는 바로 조용해졌다는 점이다. 내가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어색한 침묵을 싫어하여 쓸데없는 말들을 침을 튀어가며 이야기하던 E타입의 인간이었던 거 같은데, 결혼 후 계속된 고난과 불행은 나를 다소 차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지난주 친정에 갔었을 때 엄마는 예전에는 참 성격이 좋았는데, 김서방 그렇게 되고 성격이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있어 내성적인 성향은 성격이 안 좋은 것으로 분류되어 있기에, 그녀의 이런 판단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도 내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뀐 것인지 아니면 무기력해진 것인지는 아직 판단을 내리진 못하겠다. 하지만, 더 이상 웃고 떠드는 게 되려 부자연스러워지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꼭 웃기려고 하지 않는다. 불행과 고난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때론, 그 불행과 고난이 사라지지 않을 때 사람을 굉장히 시니컬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성숙은 아닌 거 같고, 약간은 시니컬한 단계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시니컬함이 성숙함으로 넘어갈 때 나는 좀 더 인생의 굴곡을 덜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출산/육아 그리고 집안의 병고.... 이 모든 일들을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가 아닌 도시들에서 그 힘든 과정을 보내고, 일을 하다 보니 혼자서 삭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사무치토록 그리웠던 날들, 또 무척이나 외롭고 슬픈 날들도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는 좀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홀로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 감정을 정화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매사 서두르지 않고, 좀 더 감정을 순화시켜 보는 것. 그리고 내가 아팠던 거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겠거니,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가끔은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들도 한 번씩 넘어가는가 보는 것, 꼭 분별하여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혹은 여유. 굳이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 말을 할때 좀 더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는 것등등
그런 것들이 모이다 보면 난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여물어 있는 사람이 되겠지.
무튼, 사주를 보니, 내 운세가 올해 말부터 아니면 내년부터는 좋아진다고 한다. 드디어! 부디 이 고난의 구간을 살얼음 위를 걷듯 그냥 조심조심하며 무사히 잘 지나가 보자. 분명 나는 한여름 장마를 지난 대나무처럼 한마디 훌쩍 자라나 있을 것이다.
"나의 드센 지혜는 고독한 산 위에서 잉태되었다."
from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