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산고를 겪어야 한다.
창조하는 자 스스로가 새로 태어날 아이가 되려면, 그 자신이 산부가 되어 그 산고를 겪으려 해야 한다.
from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벽, 남편의 녹즙을 갈고, 국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출근 준비를 했다. 남편은 통증으로 잠을 설친 탓에 늘어져 있다. 나는 그에게 진통제 처방을 받고, 혈액검사를 통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자고 말했지만, 남편은 '지쳤다'며 또 거부했다.
20년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남편에게는 '지혜'가 없다.
그는 고정관념과 자기만의 틀에 갇혀 해결책을 보지 못한다. 그 틀과 벽을 깨야 한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그 알 속에 갇혀있다. 또 다시, 치유되지 않은 마음이 무겁다. 여전히 나는 이 갈등 속에 머물고 있다.
오늘 아침, 창밖은 붉은 여명으로 물들었다. 어젯밤 비가 남긴 수증기가 하늘을 감쌌다. 하늘은 붉은 해로 물들어 있었다. 그 붉은 기운이 너무도 강렬해 나는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시나 무지개가 떠 있을까. 하늘을 뒤지듯 쳐다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붉은 기운이 나를 감쌌다. 참 신비한 경험이었다.
개를 산책시키다며 하늘을 보니, 흐릿하게나마 무지개가 보였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해는 이미 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통과 분노에 갇혀, 이미 곁에 있는 빛을 놓치고 있었다.
니체는 말했다. 지혜를 얻으려면 산고를 겪어야 한다. 내 분노와 남편의 고통은 어쩌면 새로운 나를 낳기 위한 산고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타인의 아픔을 돌보며 자신의 상처를 억누른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무지개는 뜬다. 나 역시 남편의 통증을 보듬으려 새벽마다 녹즙을 갈고, 그의 신음 속에서 내 분노를 삼긴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보라"고 했다. 고통 속에서도 나는 자연의 바람을 느끼고, 글을 쓰며 나를 돌본다. 치유는 더디지만, 이 작은 순간들이 무지개처럼 내 안에서 빛나며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한다.
해는 이미 떴다. 고통은 수증기 같고, 무지개는 곧 보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산고를 견디며 나 자신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