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 사정이 있을 거예요
아이는 정말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미친 마감 시즌이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는 야근을 하다 늦게 집에 들어갔다. 아픈 남편은 아들에게 티브이를 틀어주고 잠이 들었고 나는 부랴부랴 집으로 갔더니 10시가 훌쩍 넘은 늦은 밤, 아이는 홀로 티브이 앞에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 이렇게 앙탈을 부렸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들 엄마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라고 다독였다. 그랬더니 아이는 너무 이쁘게 '괜찮아 그래도 엄마가 왔으니 됐어, 밥 줘.' 이러는 거 아닌가 너무 이쁜 녀석이다.
다음날 남편은 어젯밤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이 몸이 좋지 않아 아이에게 '너희 엄마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하고 짜증을 냈는데 아이가 '아빠, 엄마한테도 사정이 있겠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 어쩜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니? 내가 안 본 사이에 아이는 이렇게 많이 커버렸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는 말은 사실 내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 사용한 말이다. 어떤 학부모가 지정 정차장소가 아닌 곳에서 차를 정차하여 아이를 차에서 내리게 해서 그로 인해 많은 차들이 기다렸다. 그때 내가 바로 짜증을 내기보다 '아 여기서 정차하면 안 되는데, 사정이 있나 보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가 맞아하고 대꾸를 했는데, 기특하게 아이가 그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이런 걸 볼 때마다 내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정말 우리 아이의 모습은 내 행동의 리트머스지같다. 내가 아이 앞에서 욕한 날은 아이가 욕을 더 많이 하고, 아이 앞에서 고함을 지른 날은 아이도 같이 고함을 지른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좀 더 바른말을 쓰고, 좀 더 다정한 말을 해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아직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여여(如如)한 사람이 되리라. 일상에서 겪는 모든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그 마음의 불편함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걸러내고, 좀 더 '그 사람들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하고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고수의 자세를 그리고 내 삶의 외부 조건에 대해서도 그냥 있는 그대로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에그하르트 톨레가 말한 내 안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평화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아이에게도 그 평온함과 여유가 전달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평온함을 남겨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