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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할 수 있다면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by 따뜻한 불꽃 소예

삶은 끝없는 문제의 연속이다. 사랑하는 이의 병, 직장의 갈등, 아이를 키우는 책임.


지난밤, 지장경을 읽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왜 이렇게 애써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 걸까?" 잠결에 깬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울어?" 나는 "아니야"라며 아이를 다시 재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남편은 여전히 아프지만 곁에 살아 있고,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던 상사는 떠났다. 아이는 매일 조금씩 자란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지만, 모양은 분명 바뀌고 있었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우리는 사건을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대화록)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태도뿐이다.


주말, 해동용궁사 방생법회에서 신도들의 간절한 염불 소리를 들었다. 매서운 추위 속 고요한 대웅전에서, 타인의 염원과 내 아픔이 하나로 얽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삶의 무게는 피할 수 없지만, 다정함을 선택하면 그 무게를 견딜 힘이 생길 것이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듯,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사건이 아니라 그 반응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정함을 선택했다.


살림과 일, 아픈 남편과 아이, 강아지까지 돌보는 매일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힘들지" 그런데도 참 잘하고 있어. 나를 다정히 대할 때, 그 다정함은 언젠가 세상으로 흘러간다. 집 마당에 쌀을 뿌려두자 비둘기와 직박구리가 조용히 먹으러 왔다. 어쩌면 이 작은 다정함이 나와 세상을 연결할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도,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도 기억하자.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는 다정함을 연습하며 이미 주어진 축복을 알아갈 것이다.


곧 벚꽃이 핀다. 우리 집 텃밭에도 꽃이 피어날 것이다.

꽃이 피듯, 내 안의 다정도 피어나기를.

그리고 세상이 내게 조금 더 다정해지기를.


사랑하는 내 인생아,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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