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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Feb 26. 2024

다정할 수 있다면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주말에 방생법회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 부산하게 오빠까지 대동해서 부산 해동용궁사 방생법회에 참여했다. 그 추운 날씨에 외국인 관광객과 신도들이 모여들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대웅전 안에는 허리케인의 눈처럼 고요하고도 경건했다. 많은 신도들이 주지 스님의 염불에 맞춰 각자의 염원을 담아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오빠는 '나는 누구, 나는 여기 왜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고, 나는 아 이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염원으로 이렇게나 많이들 왔구나, 그 염원의 에너지는 얼마나 강력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홀린 듯 나는 거금을 들여 다른 기도까지 신청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지장경 독송을 하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토록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발버둥 치는 거 같은데 왜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지 하고 말이다. 오열을 했다. 옆에서 자던 아이는 깨어나 엄마 '왜 울어'한다. 나는 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다시 아이를 재웠다. 


그래 왜 달라지지 않는 것인가?

남편은 여전히 아프고 살은 빠지고 있다. 직장에서는 파콰드는 나갔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아이의 교육문제 등등


그런데 원래 산다는 건 문제의 연속이다. 

이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옮겨갈 뿐, 문제의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이지 문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어쩌면 신이 내 옆에, 우리 가족 곁에 계셨을지도 모른다. 흉수가 가득 차 숨을 쉬지 못했던 남편은 아직 내 옆에 살아 있다. 그의 몸속에 암이 자라기도 하고, 살이 빠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살아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 나를 죽도록 괴롭히던 파콰드는 사라졌다. 그거 하나만이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아들 교육은 아마도 그 아이가 자립할 때까지 내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야 할까?


다정해지자.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브런치가 되었건 아니면 친구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되었건 우리 각자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다정해져도 되지 않을까? 


일단 올해 신년계획 중 하나가 나에게 가장 다정한 나가 되는 것이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다정하게 토닥여주고 쓰담해 주고 이쁜 말을 해줄 작정이다. '아 아름다운 아침이다. 감사합니다. 살림하랴 일하랴 아픈 남편 케어하고 아들 케어하고 이제는 우리 막둥이까지 산책시켜야 하고 힘들지 근데, 잘하고 있어. 하루 하루 이 다정함을 연습하다보면, 그걸 남에게도 나눠줄 수 있겠지. 내가 머 대단한 자선가가 되진 못하겠지만 다정한 한마디, 눈빛, 쌀 한톨은 나눠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 쌀을 뿌려놨다. 그 마음을 아는지 비둘기와 직박구리가 와서 먹고 가네, 그래 이게 내 다정함의 시작이다. 


그렇게 다정하게 살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왔는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음에, 그리고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있음에 그리고 일용할 양식과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집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니, 절망의 순간에도, 잠들기 전 그 어둠의 시간에도 기억하자. 상황은 바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미 얼마나 많은 축복과 혜택을 받고 있는지를 말이다. 


곧 있음 벚꽃 시즌이다. 우리 집 텃밭 주인공들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 다정한 세상에게 다정한 내가 되어 이들을 두 팔 벌려 이 봄을 맞이해야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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