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나로 살아가야 한다.
가끔 엄마 생각을 한다.
나의 엄마는 그 시절의 신여성이었다.
시댁과도 자주 맞서 싸웠고,
경제권을 쥐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즐기며, 때론 과하게 주변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어릴 적 나는 그런 엄마를 닮지 않으려 애썼다.
친가 식구들의 끝없는 훈계 속에서
엄마는 늘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 화살은 자연스레 나에게도 꽂혔다.
그래서 우리는 어색하고, 서먹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엄마와 나.
우리는 여느 엄마와 딸처럼 가깝지 않다.
엄마는 손주를 봐줄 체력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나도 이제 엄마에게 기대할 게 없다.
어제도 나는 엄마에게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어."
엄마는 기대한 대로 받아쳤다.
"네가 복이 없어서 그런 신랑 데리고 온 거지."
웃음이 나왔다.
이게 우리 엄마와 나니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엄마의 화려함은
그녀가 짊어진 생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탈출구였을지 모른다.
무능력한 남편,
가부장적 시댁,
두 자식을 책임져야 했던 삶.
그 속에서 엄마는
아름다운 옷과 반짝이는 장식구로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엔 엄마의 소비를 비난했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 그 방식이 엄마에겐 최선이었다는 걸.
나는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다.
착한 며느리, 착한 부인이 되려 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참고, 배려하고, 착한 척하다가
내 마음과 몸이 망가졌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내 행복에 책임지는 삶을 살기로.
엄마처럼,
필요하다면 큰소리도 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엔 선을 긋고,
조금은 무대포처럼 나를 지켜내기로 했다.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라 잔소리하지만,
나는 이제 나를 먼저 돌볼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인생은 내 젊음이고, 내 행복이니까
남편이 변하길,
시댁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건
어쩌면 이번 생에 불가능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나를 바라보며 살 것이다.
내 인생의 고삐를 내가 쥐고,
내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당신의 내적 평화를 해치지 않게 하라.
-달라이 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