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엄마는 그 시절의 신여성이었다. 시댁과의 파이팅도 자주 했었고 경제권도 엄마가 쥐고 있었기에 항상 의견 표현에 거침이 없었으며 때론 아니 자주 도가 지나쳐 친척들과의 마찰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화려했다. 엄마는 자주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샀고 그걸 과시하기도 했다.
자라면서 엄마와 닮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친할머니와 친가 친척들이 너희 엄마는 어떠하다 이러면서 나에게 꼭 한 마디씩 훈계했기 때문이다. 나는 외형적으로 엄마를 많이 닮았기에, 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고 특히 친할머니로부터 그런 지적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와 서먹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그녀와 나.
물론 엄마와 나는 여느 친정 엄마와 딸 관계가 아니다. 엄마는 나에게 손주를 돌봐줄 체력이 안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도 그다지 엄마에게 기대하는 게 없긴 하다. 어제는 내가 엄마에게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라고 짜증을 냈다. 그래도 만만한 게 엄마다. 우리 엄만 '네가 복이 없어서 그런 신랑 데리고 왔지' 하며 반박했다. 그래 이게 우리 엄마와 나다. 그래서 웃었다. 그 말이 맞기 때문이고, 엄마의 이런 반응 역시 기대했던 바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의 신상 옷과 장신구는 그녀가 그 시절 외벌이로 생의 무게를 버티기 위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빠를 만나 자식은 둘이야, 거기에 고리타분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시어머니, 그런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다 보니 너무 헛헛한 거였다. 그래서 그녀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사 들였는지도 몰겠다. 예전에는 엄마가 그렇게 돈을 써대니깐 노후자금이 없지 하고 쏘아댔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쩌면다들 그들 입장에서 그 방식이최선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인생을 보며,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기로 했던 나, 착한 며느리// 부인이 되고 싶어 한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 나름의 탈출구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착하지도 않은 내가 너무 착한 척, 참고, 너무 좋은 사람인척하다 배려하다가 망가진 내 몸과 내 마음을 발견한 지금.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고, 좀 더 내 행복에 대해 책임질까 싶다. 차라리 우리 엄마처럼 큰소리치고,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그 모든 것에 선을 그어버리고, 무대포식으로 나가보는 거 말이다. 물론 우리 엄마는 자기의 젊은 날을 후회하며 나에게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라고 잔소리하시긴 한다.
그런데 나는 일단 나를 돌보고 싶다. 누가 머라고 해도, 소중한 내 인생이요, 내 젊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더 살뜰히 살피고 나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 딸인데 ㅋㅋㅋ
그 무엇이 되었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난 내 행복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래야 지금처럼 헛헛해진 내 마음에 대해 그리고 남편에 대한 원망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상대를 바라보며 바뀌길 기대할 수 없다. 남편이 건강해지고, 좀 더 우리 가족과 나를 생각해 주길, 그리고 시댁 식구들이 좀 더 성숙해지고 상식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그런 마음은 어쩌면 이번 생에 내가 기대할 수 없는 또는 가질 수 없는 그 무엇인가 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나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내 인생의 행복과 삶에 대한 고삐를 스스로 쥐고 좀 더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게 나다운 일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