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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Apr 03. 2024
내 것은 없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찰나의 아름다움만 즐긴다.
시골집에 온 지도 만으로 2년이 넘었다. 나는 그동안 우리 집 앞화단에 수선화, 백합, 튤립구근, 천리향, 목단, 황매화 등등 많은 것들을 심어왔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아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시골 이 집으로 온 것은 순전히 남편의 치병 때문이었다. 공기 좋은 이곳에서 그의 병이 치유되기를 바랐던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나의 소망과 다르게 그의 병세가 확연히 달라지지 않았고, 아이는 시골학교에서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저학년이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특히나, 방학이 되면 아이의 학교는 문을 닫는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백방으로 아이가 방학 동안 활동할 수 있는 학원 프로그램들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그것도 시골이라 여의치가 않다. 무엇보다도 도시에서처럼 적절한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되지 못해 아이가 무료해하는 것이 참 미안하다. 그래서 또다시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 시골집이 나가야 우리가 이사를 나갈 수 있지만, 난 벌써부터 이 집이 아쉬워졌다. 내가 곳곳에 심어놓은 구근과 나무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니 참 슬픈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심어놓은 벚나무, 개나리 나무들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그 녀석들을 우리 집 뒷산에 심으면서 그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내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워지길 기대했다. 내 머릿속에는 장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커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도 전에 내가 이렇게 떠나야 한다니 참 아쉽다. 아직 집도 나가지 않았는데 주책스럽게 그런 감정이 든다.
하지만 내가 심어놓은 그 아이들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없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할 뿐... 나는 잠시 이곳에 머물렀다 떠나야 하는 나그네일 뿐.. 자연을 바라보자. 이들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도, 결코 거기에, 그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벚꽃도 비 오는 이 순간 우수수 꽃잎을 떨어트리고 있다. 그 절정의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에 순응할 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머무르는 동안 이곳을 좀 더 아름답고 깨끗한 곳으로 만들었다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설령 그 아름다움을 내가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노력으로 그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걸로 된 거지.. 애써 나를 위로한다.
비단 집뿐일까?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 회사에서 나를 어여삐 여긴 상사가 어떤 포지션을 제시하며 그 자리는 분명 내가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자리를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난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보직이 아무리 꿀보직이라고 하더라도, 회사의 사정으로 이 보직을 놓아줘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글로벌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서 나가는 내 동료들을 바라보며 그걸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건 내 의지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상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이 자리에 집착하려는, 결코 내려 놓지 않으리라 무조건 움켜쥐리라 하는 그 마음을 놓아줘야 한다.
나는 그냥 내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하고 조절하면서 주어진 그 모든 상황에 적응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게 당장 좋게 보이든 아니든 말이다. '그런가'하면서 말이다.
본디 내 것이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물건에도, 장소에도, 사람에도 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 내가 가진 이 많은 번뇌들은 사라지게 되고,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큰 두려움들도 줄어들 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좀 더 평온해질 수 있을 거 같다. 지금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온전히 지금 속에서 살아 있음을 기뻐하게 될 꺼란 말이다.
그래도 아쉬운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ㅎㅎㅎ
여하튼 그 어떤 순간도,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